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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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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산책


BY 느티나무 2001-10-02

추석 연휴라서 그래도 몸과 마음이 느긋하다.
계속 뒹굴 뒹굴하며 시간을 보내니 좀 심심하다.
아내가 점심식사 후에 뒷동산으로 산책을 가자고 한다.
산에 가면 가을을 느낄 수 있어 좋다면서...

뒷동산이 공원으로 지정되어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길 양 옆에는 예쁜 꽃들이 심어져 있어 손님들을
반긴다. 생각해 보니 봄에 진달래가 활짝 피어 온 산이
분홍색으로 물든 때 가고 같이 가지 못하였다.

집을 나서며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넉넉하고 밝다.
일상의 틀에 묶여 바삐 살다가 모처럼 연휴를 맞아서
가족과 함께 하니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들이다.

산길에 들어서니 동네 사람들이 정성들여 심어 놓은
배추며 호박이 우리를 맞는다. 이곳은 언제나 어릴적에
나랑 같이 자랐던 채소들이 있어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
든다.

조금 더 가니 졸졸졸 물이 흐르는 곳 옆에 토란이 있다.
한 여름에 나를 시원하게 반겨주던 토란이 통통한 줄기를
하고 있다. 일부는 수확을 해서 추석상에 올라 가족들의
입맛을 돋구었겠지.

산등성이 옆 소나무 밑에는 도라지가 가을을 맞아 잎은
누렇지만 보라색, 흰색 꽃 몇 송이가 쓸쓸하게 남아 있다.
여름에는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이 흐드러져 있었는데...

아내와 같이 한참을 걸으니 깊은 숲길이 나온다. 숲속에
많은 나무들이 우리 두 사람을 반겨준다. 이 답답한 도시에
이런 산책로를 가진 뒷동산이 있다는 것은 참 좋다. 공기가
상쾌하다. 호흡을 깊숙히 해본다. 가슴 속까지 시원하다.

봄에 피었던 연분홍 진달래 꽃 나무의 동글동글한 잎이
노랗게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이것이
진달래라고 하니 아내가 잎이 아닌것 같다고 이내 반박한다.
가벼운 말싸움이 일어 난다. 그러나 승부를 가려서 무엇하랴.
봄에 꽃이 피면 다시 와서 눈으로 확인시켜주면 될걸.

산길을 돌아서 좀 더 가니 산 속에 배드민턴장이 있다.
아내와 남편이 경쾌하게 라켓을 휘드르고 있다. 셔틀콕이
파란 하늘을 가르면서 난다. 나도 덩달아 몸이 가벼워진다.
엄마 아빠가 정답게 셔틀콕을 주고 받는 동안 두 아이들은
옆에서 소꿉장난을 하고 있다. 행복감이 물씬 풍겨 난다.

산 속 정자에 이르자 동네 할아버지 두 분이 바둑을 두고
있다. 한 분이 득의에 찬 돌을 놓자 다른 한 분은 낙심을
하면서 혀를 끌끌 찬다. 패가 잘 안 풀린단 뜻이겠지...
옆에서 구경하던 할아버지 역시 안타깝다는 표정을 한다.
세상사의 산전 수전 다 겪었을 두 할아버지가 아직도
전의가 살아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아직 청춘이지...

정자를 조금 내려오니 멀리 도봉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점에 이른다. 아내가 일 주에 한 번씩 교우들과 다니는
산이다. 아내는 자랑스러운 듯이 나에게 봉우리들을 설명
해준다. 산에 다니며 살을 뺀다고 열심히 다니지만 별로
빠진 것 같지 않다며 불만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미스
코리아 진은 되지 않아도 서울 지역 예선 출전은 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통통한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약혼기간에 내가 "통통하다."고 했다가
몇개월 동안 하루에 한끼만 먹고 지냈다는 것을 알고 아주
말조심(?)을 하고 있다.

비탈길을 조심 조심 걸어서 내려 오는데 어디서 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얼른 쳐다보니 몇 걸음 앞에 다람쥐 한
마리가 귀를 쫑긋 세우고 바라보고 있다. 주위에 상수리
나무가 많아 먹이를 구하러 나왔나보다. 알록 달록한
모습에 눈을 이리 저리 굴리는 것이 너무 귀엽다. 초등
학교 때 불렀던 노래가 떠오른다.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다람쥐가 오가는 상수리 나무 밑에서 할머니 한 분이
상수릴 줍고 있다. 나도 어려서 많이 주으러 다녔다.
동네 길 옆에 쭉 늘어선 상수리 나무를 메를 가지고
내려 치면 상수리가 머리를 때리며 우수수 떨어졌었다.
아내에게 "저 정도 주워다 뭐를 하려고 그러지?"하니
"어, 할머니들은 매일 주으러 올거야."라고 말한다.

산책길을 돌아 돌아 한참을 걸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동네가 가까워온다. 길 양 옆에는 코스모스가 하늘
하늘 피어있다. 봄에는 진달래가 산당화와 어울어져
봄의 정취를 물씬 풍겼었는데...

구절초도 가을냄새를 물씬 풍기고, 산들 산들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화려하고 커다란 국화도 보기 좋지만
산에 이름 없이 핀 들국화가 훨씬 정겹다. 누구라서
알아주거나 보아주지 않지만 그 향기 가~득 산야에
풍기리...

집에서 며칠을 보내니 가을이 얼마나 다가왔나 몰랐었는데
산길을 걸으니 바로 코 앞에 와서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매일 매일 일상에 묻혀서 지내다 보니 참으로 우리곁에
계절의 전령이 와 있음을 잊고 지냈다.

아내가 집으로 오는 길에 동네 슈퍼에 들려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먹으면서 집에 가잔다. 내가 슬쩍 딴지를 건다.
"이 나이에 무슨 아이스크림을 빨며 다니냐? 집에 가서 먹자."
아내가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이 애교있게 한 마디 한다.
"동네 사람이 우리의 다정한 모습을 보면 부러워 하라고!"
아니, 다른 사람에게 뭘 보여줄려고 다정하게 살고 있남?

집에 오니 우리의 예쁜 딸, 의젓한 아들이 엄마 아빠를 맞아준다.
딸은 연휴가 끝나고 수시 면접시험이 있고 아들은 2학기 중간고사가
있어 산책길에 동행을 못했다.

이 가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모두 건강하니 더 이상을
바란다면 욕심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