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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총각 선생님 죽이기)


BY salala 2001-09-24


나는 계절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환절기를 특히 좋아한다.
그것도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 9월이 저무는 이 때
쯤이면 코스모스를 흔드는 바람에도
그 너머로 흑백사진처럼 색바랜 옛 추억들이 생각난다.
이제 딸애가 여고생이 된 지금,
문득 오래된 사진첩에서 발견한 빛바랜 한장의 사진,
여고시절!
70년대 중반 카톨릭 재단 학교에 다니던 나는 세라복을
나풀거리며 무서운 교장 수녀님의 눈을 피해가면서
교정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특히 금지구역인 교정 뒤의
사제관에도 기웃거리며 작은 흥미거리에도 까르르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던 발랄한 여고생이었다. 게다가 처음나온
퍼모스트 아이스크림은 너무나 달콤해서 지금도 생각하면
잊을 수 없다.
교련 검열이 있었던 시기여서 해마다 시행되었던 그해 가을
우리 학교는 응급처치 구급을 시범해야했다. 삼각붕대 등
붕대감는 걸 훈련하느라 틈만나면 서로 맞잡고 연습한 결과
몇초만에 붕대를 잘 감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 때 우리의 국사 선생님은 총각선생님으로 강의까지
명강의라서 주가는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유독 몸집이 뚱뚱하고 키가 작았다. 뿔테 안경너머 근엄한
눈빛으로 담력이 세다고 큰소리 치시던 총각 선생님!
그 날은 유난히 날씨가 바람이 불고 음산했었다.
우리는 선생님의 담력을 테스트하는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북방으로 앉은 우리 교실은 불을 켜지 않아도 컴컴했었다.
우린 전기스위치를 내려놓고 선생님을 기다렸다.
선생님의 필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커텐을 치고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필기를 제쳐두고 그 빛나던
붕대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사사사삭~몇초만에 교실의 반쯤은 미이라처럼 붕대감은이가
차지하자 숨죽인 고요함과 음산한 분위기가 흐르던 교실의
정적에 우리도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말없이 필기에 몰두하시던 선생님께 짓꿎은 붕대를 감은
얼굴, 팔, 삼각대를 맨 친구가 선생님 등뒤로 살그머니가서
어깨를 두번 두드린 순간이었다.
아!
평소에 위풍당당하시던 총각선생님, 뒤돌아 보는 순간
낯빛이 하얗게 질리시더니 그 자리에 쓰러지셨다.
당황한 우리들은 선생님을 깨우고, 몇명은 양호선생님을
부르러 교무실로 뛰어갔다. 한바탕 소동으로 우리는 그
아까운 총각 선생님을 죽일뻔 했던 것이다.
그 대가는 그 날 종일 치렀다.

어느덧 9월이 또 가고 있다.
세월은 흘러 어언 20년, 한 세대를 넘어 딸아이가 여고생이
되었지만 추억의 공간은 깊은 우물같아서 한정된 공간에서만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