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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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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 보고싶었어!


BY 雪里 2001-09-20

친구들 만나러 가는길.

차창밖의 풍경은 그대로 수십호의 미술작품 이었다.
"풍요로운 계절" 이라고 제목을 붙여보니 좀 촌스러운것 같아서
이것 저것 궁리를 해보지만 내맘을 채워줄 마땅한 이름이 없다.

그냥 "가을!"
그래, 이거면 충분했다.
두음절의 간단한 단어지만, 이것만큼 마음을 채워주고, 부풀려주며,
설레게 해주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가을"이라는 제목을 단 작품을 사파리 동물원 구경하듯,
나는 어느새 관람객이 되어,
버스로 넓은 전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묵은 기와가 얹혀있는 넓은 기와집 옆에는 빨간열매를 잔뜩 매단 감나무가 있어서 허전한 공간을 채워주었고,
산자락의 새집에는, 잘 다듬은 향나무와 하얀색을한 지프승용차가
어울리게 그려져 있었다.
내가 지나가는 저만치 옆집은 마당을 온통 빨간색으로 칠해놓고는
할머니 뒷모습과 장난치는 강아지 두마리...

길을 따라가는 냇물이 가뭄으로 말라있다.
물을 그려넣고 혼자웃어보지만 엉성하면 어떠랴,
귀에 물소리만 들리면 되지.

버스는 계속 달려서 꼬불길을 지나더니 높은 건물들이 하나둘 보이고,
나는 이 멋진 전시장을 나오기위해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늦게 도착한 나를 친구들은 끌어안고 반가와한다.
야~~~! 보고싶었어!
갖가지 반찬으로 비빔밥을 준비해놓은 친구는 밥의양 조절을 물으며
넓은그릇에 밥을 담아 나를 쫓아 다니며 웃고...
모두들에게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염려와 걱정과 부러움까지, 모두를.
어렵게 시작한 재혼이 그동안 너무 힘들어, 만나고 싶어도 연락을 못했었다며 밥상옆에 바짝 다가앉는 친구가, 이젠 어느정도 안정을 찾은것 같아서 준비한 비빔밥이 더 맛있었다.


밥먹은 자리에서 상을 한쪽으로 밀며,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한 우리는 다시 하얀칼라의 여학생들이 되어 마냥 희희낙낙!
이제는 자식들이 우리의 그시절보다 커 버렸는데도...
누구와 그리 편하게, 그리 즐겁게 웃을 수 있을까?
친구들과 웃는 웃음은 소리나 빛깔이 다른곳에서의 웃음과는 틀리지 싶다. 마음까지 활짝 열고 웃으니까.

다음달에는 우리집에서 만나자며 헤어지는데,
며칠전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여행선물이라며 예쁜 파카볼펜을 준다.
마음까지 함께 받으며,"고마워!"

버스밖에서 흔들어주는 손이 안보일 때까지 나는,
고개와 몸을 완전히 돌리며 목을 빼고 친구를 보고 있었다.
열차표를 예약해 놓은 친구는, 나를 태운 버스가 코너를 돌아 달리기 시작하자, 기차역으로 가는게 보인다.

다른날보다 짧은시간의 하루가 접어지고 있었다.
차창밖의 전시장은 이미 문을 닫기 시작했고,
안전벨트로 무장한 나는 시트를 뒤로 뉘며 팔짱을 낀다.
가슴속의 풍만함을 누르고 크게 숨을 몰아 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