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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우울증을 앓는 20대 여성의 조력 자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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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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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이야기


BY 칵테일 2000-09-25





쓰고 싶은 이야기




쓰고 싶은 이야기

내 나이 8살, 이맘때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암으로 시한부인생을 사시던 분이셨다.

하지만 내 어머니께선 언제 닥칠 당신의 죽음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몹시도 간절히 당신의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하셨다.
어머니의 그 바램을 아신 아버지께서는 안방과 건넌방을 아예 터버리셨다.

그래서 우린 운동장만큼 넓어진 큰방에서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잠을 잤다.
안방과 건넌방의 아궁이가 달라, 그때 우리집에서 일해주던 가정부는 그걸 몹시 투덜거리곤 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 어머니의 그 소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
어느 날, 소리죽여 흐느끼시는 아버지의 울음소리에 놀라 잠을 깬 나는,
아버지, 왜 울어?
하며 나지막히 물었다.
그때 내 아버지는 울컥 목메인 목소리로 "엄마가 죽었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내 어머니의 죽음은 소리없이 찾아왔던 것이다.

남의 손을 빌어 소복을 입는 것이 싫었던 내 어머니는, 잠들때면 언제나 정갈하게 소복을 직접 갈아입으시고 주무셨다.
그 날도 어김없이 어머니는 그렇게 잠드셨고, 새벽녘에 어머니 약을 드시게 하려던 아버지께서 맨 먼저 발견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어머니의 마지막을 볼 수 없었다.
단지 어머니가 죽어가는 순간에 우리 가족 모두가 한 방에 있었다는 것 뿐.

......
어머니의 장례식 날.
나는 우리집 마당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굴뚝뒤에 숨어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봤었다.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의 홍수속에서, 난 울음도 잊은채, 멍하니 사람들의 모습만을 꾸준히 보았다.

어머니는 유언대로 화장을 했다.
어머니는 아직 어린 우리들이 묘지를 찾아다니면 안된다고, 묘지를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예전부터 꼭꼭 되새기듯 말씀하셨다고 한다.

난 어머니의 장례식조차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그것도 어머니의 유언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어린 자식들의 가슴속에 언제까지고 남아있을 그 장례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어머니는 우리를 철저히 장례절차에서 배제해주기를 당부하셨었다고 한다.

그래서 난 마당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 남처럼 서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커다란 굴뚝 뒤에 숨어있던 8살 어린 내 마음에도 슬픔은 북받쳐, 입술을 앙다물아가며 난 끝없이 눈물을 참아야했다.
절대로 울지 말거라. 절대로 울지 말거라.
어미니의 목소리, 내 가슴에 일렁여 그 말씀을 따라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무심히 장례식 광경을 바라봐야 했던, 그 어린 나의 모습이 아직도 내 가슴에는 그렇게 비수처럼 날카롭게 꽂혀있다.

......
이제 며칠 있으면 내 어머니의 기일이 돌아온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모습도 이젠 내 가슴과 머리에조차 모두 잊혀져가고 있지만, 겁먹고 두려운 마음에 굴뚝 뒤에 숨어있던 그 어린 날의 내모습은 잊을 수가 없으리라.

절대로 잊혀질 수가 없으리라.
댓돌위에 놓인 내 빨간 고무신.
연두색 세로줄 무늬의 민소매원피스.
나에게 인형처럼 옷을 갈아입히시며 좋아하셨던 내 어머니의 모습.

그 어느 세월이라 다시 되돌려 그 시절을 맞이할 수 있으리.
내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래야 그렇게 고작 여덟해뿐인 것을.
그 어렸던 우리들을 두고 내 어머니는 어찌 눈을 감으셨을꼬.
나, 철이 없이 마지막까지도 내 어머니와 함께 하지 못했으니 이 애달픔이야!
무엇으로 그때의 내 슬픔을 형언할 수 있으리.
이토록 내가슴 미어져 벅차오르는 것을.

정녕... 꿈에서라도 한번만 내 어머니를 뵐 수 있다면......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