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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


BY 임진희 2000-12-22

지금부터 십년쯤 전의 일이다.

겨울이면 항상 시부모님이 쌀을 한가마 보내셨다.

아파트라 배란다에 놓고 먹어도 봄이면 늘 쌀 벌레가 생겼는데

그 해는 유난히 많이 생겨서 밥을 할때마다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야

했다.

어떻게 할까 고심 하다가 주윗분들에게 물어 보았다.

떡집에 얘기 하면 싼값에 가져간다고 했지만 부모님이 주신 쌀을

그렇게 하기는 좀 마음에 걸렸다.

생각 끝에 떡을 했다. 남편과 의논끝에 은평구에 있는 모 처에

라면과 음료수를 사고 큰 사과 상자로 두상자쯤 되는 백설기를

차에 싣고 갔다.

어디서 오셨냐고 성함이라도 알려 달라는 것을 부끄럽다며 도망치듯

돌아 왔다.

벌레난 쌀로 떡을 해 가지고 간 주제에 무슨 좋은 일을 했다고

떠들겠는가.

올해도 퇴직해서 고향으로 들어가신 아주버님이 쌀을 사십키로씩

나누어 주셨다.

얼마전에 큰 시누님이 직접 농사는 지으시지 않지만 농토가 있어서

아들한테 부치는 길에 함께 부쳤다며 쌀을 반가마 보내 주셨다.

내가 결혼해서 신혼시절 부터 제일 마음을 많이 써 주신 분이다.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에게도 항상 잘 살펴 주신다.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살아 가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다.

밥을 먹을때마다 따뜻한 형제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편히 앉아서 이렇게 받아도 되는지 ...

쌀을 받고 보니 부끄러웠던 그때 일이 떠 올라 적어 보았다.

다음에 그런 기회가 있다면 깨끗한 쌀로 해야 할것이라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