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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부치는 편지 중에서...


BY 인연 2001-08-25

..............................................................................................................내안에 부치는 편지 중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버린 정태를 품에 안고 지숙은 아크라를 떠나왔다.
고향에 도착한 정태는 아버지의 무덤 옆에서 고이 잠이 들었지만 서울로 상경한 지숙은
고향 땅에 묻힌 정태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의 말대로 정태를 고향에 묻고 온 것이 지숙은 몹시 후회가 되었다.
비록 머지않아 흙이 되어버릴 남편이지만 지숙의 가까운 곳에 두고 싶었다.
지숙은 정태와의 추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편지를 쓰며 그리움을 달랬지만 그것은 죽음보다
슬픈 고문이었다.

사랑하고 보고 싶은 자영 아빠!

당신의 육체는 이제 한줌의 재가되어 흙 속에 묻혀 버렸지만 당신의 영혼은 아직도 내
품속에서 꿈을 꾸고 있답니다.
나는 그런 당신의 온기를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 느끼고 있답니다.
세면을 끝낸 당신의 얼굴에서 상큼한 비누 향이 배어 나와 당신이 내 곁을 스쳐 갈 때마다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됩니다.
당신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 아침이 시작되어도 나의 마음속에서는 당신을 볼 수 있답니다.
퇴근을 하여 현관문을 들어서는 당신의 미소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그러나 잠이 깨면 그 날의 기억이 되살아나 몸서리를 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날은 당신이 내 곁에 있던 마지막 날이었기에 자꾸만 떠올리게 됩니다.
그 날의 기억이 고개를 쳐들 때마다 긴 호흡을 수 없이 삼키면서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진정 시킵니다.

[중략]

당신이 떠난 그날은 마흔 일곱 번째 당신의 생일이었지요.
당신은 생일날 아침에 늑장을 부리는 자영이를 꾸중하다 결국 자영이는 우리와 함께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예견을 하였나요? 당신의 그 꾸지람이 자영이를 살렸습니다.
만약 자영이까지 교민 체육대회에 동행을 하였다면 자영이도 당신과 함께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을 지켜주지 못하고 나 혼자만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당신과 함께 가지 못한 것이 이토록 아쉽고 미안하지만 당신의 마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와 자영이를 대신하여 목숨을 버렸습니다. 난 당신과의 인연을 결코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절망 때문에 아름답고 이별은 상처 때문에 망각되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당신의
영원한 인연, 지숙은 살아 갈 것입니다.

당신이 그립습니다. 병원에서 지숙이가.

열어 놓은 아파트 베란다를 넘어 들어오는 삼월의 상큼한 아침이 황토 빛 화분에서...[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