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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눈 내가 쑤시기


BY 프리즘 2001-07-15

어릴적부터 심심하믄 어른들 웃겨볼라고 하던 소리가 있었지요.


"난 이다~암에 아기낳으믄 아들은 춘삼이, 딸은 춘자라고 할꺼다~"


그러믄 어른들은 한마디씩 하더군요.

"아유~ 귀여워"
"어머머, 어쩜 말도 차돌같이 잘할까"
"그래그래 아기낳으믄 너무 이쁘겠다"


-_- -_- -_- -_- -_-

물론....어릴적에 국한된 이야기라니깐요....

별뜻없이 이쁨받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내뱉었던 말이 나중에 씨가되어

나무로 자라, 그 나무로 만든 도끼자루에 발등을 찍힙니다.




내나이 25...그 꽃다운 나이에 늙어빠진 노총각에게 콱! 찍혀서 면사포

쓰던 날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치고 환장하고 짬푸치도록 후회스럽지만 그래도 그날은

생전 처음 해보는(?) 결혼식이라 가슴 들뜨고 행복했었답니다.

근데 그 결혼이란거시 웃겼던게, 오래전부터 중뿔나게 연애질하고 온 집안

시끄럽게 결혼시켜달라고 악을 바락바락 쓴것도 아니요 기냥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청첩장을 돌린 것이었으며,

지금은 결혼해 아이가 둘이나 되는 언니지만 그 당시에는 겨우 27살 밖에

안먹은 쌔끈한 츠자를 제치고서 동생이 먼저 결혼한 것이었죠.

네..한마디로 미쳤던거에요.

그리하야 식장에 축하해주러 오신 친척분들은 뭔가 뒷구녕구린 구석이

있다고 맘속으로만 짐작하고들 계셨나봐요.

신부측 하객석에서 이제나저제나 신부입장만을 기다리고 있던 친척분들이

일제히 이마를 탁~! 하고 치게된건 어눌한 목소리의 사회자가

"신부입자앙~~~"하고 구령을 내리자마자 딴짓하며 까불다가 화들짝놀라

치마걷어부치고 다다다다~ 달려오는 신부 즉, 이 프리즘이가 한복을

입고 있다는걸 보고나서였지요.




평소 한복을 좀 심하게 좋아하시던 울엄마는 쌍팔년 서울올림픽개막식때

선녀옷을 입고 부채춤을 추던 무희들의 한복에 뻑가버렸고, 눈은 티비에

박아두고 얼굴은 나를 향한채로 결연히 말씀하신 것이 있었어요.



"너 시집갈때!! 꼭! 기필코! 결단코! 저 한복을 입히리라" 불끈~!!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한국무용을 해왔던 우리 자매는 한복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었을 뿐더러, 울엄마가 그 말씀을 꼭 실천하고야 말 인품(?)

이라는 걸 알긴했지만 그것이 머언 미래의 일이며, 나와는 아무상관 없을

줄 알고 기냥 어리버리 고개를 끄덕거려버렸죠.

엄마의 그 결연한 의지와, 나의 무신경이 상승작용을 하여 정말로 아무

생각없이 맞춘 결혼예복 - 바로 한복 - 그것이 친척어른들께 두고두고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결과를 낳아버렸습니다. 젠장.....




머리가 좀 딸리는 분들을 위하야 친철하게 설명해드릴께요.


* 갑자기 청첩장 = 뭔가 급한 사연이 있다
* 신랑은 노총각 = 잡혀서 먹힌거다
* 언니도 제치고 = 뎁따 급하다
* 한복웨딩드레스 = 산달이 다됐다


거기다가 결혼전 예물이며 살림장만 등등에 스트레스를 받아 덕지덕지

살이 열근정도 쪄버려서 한복아니면 입을 수도 없었을거에요. --;

결혼식 비됴테입을 신혼여행 다녀와서 한번 보고는 서랍 제일안쪽에

처박아버리고 다시는 안꺼냈을 정도거든요.

설레는 맘으로 틀어본 테입에 온통 화면가득 신부얼굴만 보이니...

무슨 재미로 다시 보고 싶겠어요 ㅠ.ㅠ

여차저차, 모든 정황이 속도위반해서 산달이 다되어 급하게 결혼식을

치르는 걸로 결론내려졌지요.

뒤늦게 사태파악을 하신 울 엄니아부지의 표정은....

^_^; 와 -_-; 로 압축할 수 있었으며, 친척 어른들의 쯔쯧~ 혀차는 소리가

주례사 뒤로 배경음악이 되어 있더군요.




예식이 끝나고 난뒤 식당에서 점심대접을 하면서 울엄만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옮겨 다니며 해명하기에 바빴고, 아부지는 괜한 담배만 뻑뻑

피우시며 억지웃음을 짓고 계시대요.

신혼여행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온 새신랑신부는 식당의 어른들에게

다녀오겠노라 인사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무게잡고 앉아 계시는 연세

80의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서, 여행가방을 끌며 식당을 마악~ 나서던

참이었어요.

순간, 뒤통수에서 들리는 단 한 문장...

우리 할머니의 단호한 일갈에 식당안 모든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내

배언저리에 꽂히고, '그럼 그렇지...속에 들어있는게 아니라 밖에서

키우고 있었군' 하는 표정으로 신혼여행 떠나는 새빨간 프라이드 뒷좌석을

살피고 있더군요.

혹시나 젖먹이 하나가 응애거리며 타고있을까 하면서요.....

울 할머니가 집안에서 처음 결혼하는 손녀딸에게 하신 말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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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춘삼애미야! 잘 댕겨와라이~"






꼬랑지***올해로 결혼 10주년, 아들래미는 만8세 (계산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