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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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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 이야기 2-콩밭에는 콩이.....>


BY 금빛 누리 2001-06-10

" 부인이 대단한 미인이군요."
이런말을 주위 사람들로 부터 들을 때마다 그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아내가 미인이라는 말이 듣기 싫을 남편이 새상에 어디 있으랴!
기실 그의 아내는 알맞은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쌍가풀진 둥근 눈과 알맞을 정도의 오똑한 콧날이 갸름한 얼굴과 잘 조화를 이루어
누가 보아도 예쁜 여자였다. 그는 아내와 중매로 만났다.
전문대를 졸업한 후 직장 생활을하며 틈틈이 신부 수업을 했다는 여자.
그는 첫눈에 아내가 마음에 들었다.
반년여의 순조로운 항해 끝에 그들은 결혼이라는 항구에 닻을 내렸다.
신혼 2개월이 채 안되어 그는 아내가 임신했음을 알았다.
결혼전 속도 위반을 한것이다. 번갯불에 라면 튀겨 먹었다는
주위의 짖궂은 농담속에서 아내의 배는 불러갔다.
그는 아내에게 곧잘 이렇게 말했다.
" 아기는 말야 당신을 닮아야돼.구획정리 안된 날 닮으면 안되지.
더구나 딸 아이라면 더더욱 당신을 닮아야지. 안그래?"
그럴 때마다 아내는 피시식 웃었다.어찌보면 김빠져 보이는 웃음이었으나
그는 아내가 마냥 수줍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딸 아이를 출산했다. 그는 딸 아이가 누구를 닮았을까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아기의 생김새를 요모조모로 뜯어 보았다.
조금도 아내를 닮은것 같지 않았다.그렇다고해서 그 자신을 닮은것도 아니었다.
딸 아이의 돐 잔치에 초대된 그의 친구들과 친지들은 한결 같이
딸 아이가 누굴 닮은거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반면 아내의 친구들은 " 아유~~~ 붕어빵이네."라며 킬킬거렸다.
그의 장모도 혼잣말처럼 " 콩밭에 콩나지 팥나겠나...."하고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재서 딸 아이의 들창코와 아내의 오독한 코가 닮았단 말인가?
이상하게도 아내에겐 어릴적 사진은 물론 고교 때 사진 한장도 없었다.
그 흔한 카메라 사진 조차도....
" 당신 어째 학교 때 사진이 한 장도없어?"
"사진 찍길 싫어해서 별루 찍질 않았어요. 몇장 찍긴 찍었는데
어쩌다보니 스적스적 없어져 버리구요."
그는 조금 의아스러웠다. 사진 촬영을 싫어해 여학생 때 사진은 한 장도 없으면서
처녀 시절의 사진은 왜 그리도 많은가?
딸 아이가 자람에 따라 그는 때때로 < 염상섭>의 단편 < 발가락이 닮았다.>를
떠올렸다.그러한 생각을 하게된것은 아내가 결혼전에 사귀던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되고 부터였다.
한번은 술 한 잔 한김에 아내에게 그 사실에대해 물었다.
" 아, 그 사람요? 친구가 소개해줘서 당신 만나기전 한 두어달 쯤 교재하다 말았어요."라며 별걸 다 물어본다는듯 가볍게 눈을 홀겼다.
딸 아이는 자랄 수록 부모 아무도 닮지 않았다.
어찌보면 오래전에 작고했다는 사진속의 장인을 좀 닮은듯도 했지만
그것도 분명치 않았다.
그는 집안에서 조물거리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기도하고
아이의 손이나 발을 찬찬히 살펴보기도하면서 어딘가 자신이나 아내를
닮은곳이없나 살펴보곤했다. 통통하고 몽땅한 아이의 손발이 아내를 닮은듯도하여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가 또 아이의 들창코와 작고 꼬리가 약간 올라간 눈에
생각이 미치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이다.
그는 아내의 출산일과 그들이 혼전 속도 위반을 했던 날자를 곰곰 따져보기도했다.
의심이란 굴리면 굴릴 수록 커지는 눈덩이같은 것이다.
그는 혼자서 끙끙거리며 모래성을 쌓았다 헐었다했다.

일요일.아내는 딸 아이를데리고 동창 모임이있다며 외출했다.
아내가 집을 비운 봄날의 일요일은 참 따분했다.
티비를보다가 그것도 지겨워진 그는 가물가물 낮잠속으로 빠져들다
문득 섬광처럼 스쳐가는 생각에 벌덕 몸을 일으켰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아내의 비밀 상자~~~~~~~~.
친구녀석이 그랬다 어느날 우연히 발견한 아내의 비밀 상자엔 비자금 통장과
결혼전 남자에게 받았던 연애 편지와 사진이 들어 있었노라고.
좀 치사하단 생각도 들었지만 그는 장롱속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를 뒤져보았다.
경대 서랍도 침대 아래도 다 살펴 보았고
주방 찬장속도 거실 장식장속도 다 살펴보았지만 아내의 비밀 상자는 찾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작은방의 불박이장에 생각이 미쳤다.
불박이장엔 아이의 장난감부터 온각 잡동사니가 그득했는데 마침내 그는
누렇게 변색된 백양 메리야스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상자속엔 일기장인듯한 오래된 노트 몇권이들어 있었다.
노트 갈피속에서 무심히 떨어져나온 사진 한 장.
단발 머리에 교복 차림인 낯선 얼굴의 여학생이었다.
작은 눈과 콧구멍이 빼꼼이 들여다 보이는 낮은 들창코.
아무리 후하게 보아도 못생긴 얼굴이었는데 어찌보면 낯 익은 얼굴 같기도했다.
누굴까? 설마?.........................
그가 상상해온 아내의 여학생 때 모습은 청조하게 어여쁜 소녀였다.

오후가 기울어갈 무렵 아내가 외출에서 돌어왔다.
그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외출복도 채 벗지 않은 아내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 이 사진 누구야? 당신이야?"
아내는 일순 당황한 표정이었으나 곧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 나 눈이랑 코랑 고교 졸업하구 성형했어요.당신 그렇게두 눈치가 없어요?
그런데 이 사진은 어떻게 찾아낸 거예욧?"
째려보는 아내의 눈길을 슬며시 외면하며 그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실소와 더불어 일말의 안도감이 그를 어이없게했다.
발가락이나 손가락이 아니라 아주 확실히 딸 아이는 아내를 닮은것이다.
" 콩밭에 콩나지 팥나랴?"
( 맞아, 맞아!!!) 그는 흐흐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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