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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온 몸부림스<19>-내 월급을 돌려다오.


BY eheng 2001-05-07

지난번 뉴스에 보니 주부의 한 달 임금을 80여 만원으로 산출해 놓았더라.
그건 파출부의 가사 노동비에 아이들 돌보는 보육비 정도임에 틀림없다.
우리 몸부림스, 그 임금에 협상하지 않는다. 절대 못한다. 가당치도 않다. 주부의 임금을 단지 청소와 빨래와 밥, 그리고 아이들 돌보는 정도로 알았다간... 다친다.
괜히 동네방네 몸부림치며 다녔겠는가? 중뿔나게 열불내며 발품 팔며 싸돌아 다녔겠는가?

우린 전문가다.
그렇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날밤 새며 몸부림치건만… 출퇴근도 없이 온 몸 바쳐 충성이건만 달랑 빨래, 청소, 아이 본 값만 계산하다니. 천인공로할 일이다.

청소면 청소: 대청소는 기본이요, 넓적한 스카치 테이프 손에 두르고 집안 구석구석 먼지 찍고 다니고, 이쑤시개에 락스 묻혀 마루 골진 데부터 구멍이란 구멍 죄 쑤시고 다니며, 집안 구석구석 훑고, 후벼 파고 박박 긁고 뿌리고 싹싹 씻는데 이골 난 도사다. 단 한 마리의 세균도 허용하지 않으며 먼지도 용서치 않는다. 이른바 틈새 청소라 한다. 봄 가을로는 문짝 칠까지 애프터 서비스로 봉사한다. 이 정도면 청소 용역 회사를 차려도 될 만하다.

빨래면 빨래: 큰 이불 빨래서부터 아이들 실내화에 이르기까지 비비고 두드리고 문질러 팍팍 삶아 비틀어 짜서 털털 털어 말리기까지. 두꺼운 청바지부터 실크 옷에 드라이 크리링하는 울 쉐타까지 통달을 하고도 남았다. 다림질은 기본이요, 풀 먹이고 작은 옷 늘리는 삯바느질까지 옵션으로 해준다. 세탁소를 차려도 열 개는 차렸다.

밥이면 밥: 이건 진짜 자신 있는 분야다. 식품영양학과 나온 영양사의 식단? 호텔 조리사의 휀시한 요리? 다 필요 없다. 매 끼마다, 철철마다 탄수화물, 단백질, 무기질에 비타민까지 골고루 조절하여 가족들의 영양을 책임진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유명한 요리사들의 요리, 헝! 좋고 비싼 재료로 그만큼 요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 없는 재료로도 훌륭한 밥을 짓는 법! 그 비법을 아는가? 신 김치 물에 헹궈 빨아 된장 넣고 푹 지지면 입 맛 없는 봄 날 약이 되고, 남들 버리고 가는 무청 줏어다가 시래기 만들어 새우젓 넣고 푹 지지면 무기질에 섬유질 풍부한 반찬이 된다. 짭잘한 짠지와 구수한 열무김치,… 인스턴트에 길들여지고 맛들이는 아이들로 키우지 않고 신토불이 토종으로 키우며 불가사의한 건강에 도전하는 우리는 미숫가루 타 먹지 않아도 신선같이 산다. 사찰 음식 따로 배우지 않아도 도 닦고 산다. 영양사에 조리사에 자격증 없이도 식당, 곧바로 차린다.

교육이면 교육: 비싼 영어 교재, 쪽집게 과외, 해외 연수, 현란한 율동과 억지소리 꾸미는 구연 동화 배우지 않아도 산 교육 매일 한다. 교육이 대체 뭐란 말인가? 제 앞가림하고 이웃들과 더불어 잘 살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 아니던가? 고구마라도 삶으면 한 접시 앞집과 나눠먹고, 친구에게 한 대 맞고 와도 툴툴 털고 맘 넓은 네가 참으라 한마디 하고, 학원에 갈 시간 줄여서 산과 강에 한 번 더 다니고, 억지로 두들겨 가며 피아노 가르칠 여력으로 좋은 음악회 한 번 가며, 악다구니하며 문제집 풀리지 말고 그 시간에 아이 눈을 쳐다보며 얘기하는 우리들… 정녕 최고의 교육자 아니던가! 조급해 하지 않으며 비교하지 않으며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며 조악한 급류에 휘몰아치지 않는 엉덩이만큼 무거운 우리의 주관. 학원을 차리면 그대로 대안 교육이며 시골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살아있는 풀뿌리 교육인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것 뿐이런가?
없는 옷 코디 해서 내 체형과 내 이미지에 가장 잘 맞는 옷을 입고 다니니 최고의 코디네이터요, 봄, 가을로 집안에 꽃꽂이라도 할라치면 영락없는 디스플레이어요, 없는 가구 이리저리 옮기며 집안을 가꾸면 인테리어 디자인이고, 아침마다 드라이 하며 헤어 디자이너요, 화장하니 메이크업 아티스트라. 입던 옷 소매 자르고 단 줄여 입히는 패션 디자이너다.
119구조대원도 할 수 없는 긴급한 상황의 문제 해결사로 행동하는 대원이고, 자잘한 질병은 병원에 가지 않고 혼자서 진료하고 처방하고 치료하는 가정의 상비된 의사요, 배 아프면 손으로 싹싹 문지르고, 열 나면 보리차에 냉 찜질, 발 저리면 침 발라 콧등에 바르고, 다래끼엔 속눈썹 하나 뽑아 돌멩이에 붙여 놓는 복채없는 주술사인 것이다. 이땐 무수리 속성 절로 발휘된다.
요즘은 라이프 플래너라고 보험 아줌마를 그리도 고상히 부르지만 우리 또한 만만찮은 인생 설계사요. 구성가다. 그 작은 쥐꼬리 월급 푼푼히 모아 살림하고, 집 장만하며, 푼푼히 쪼개서 가족의 대소사 다 치루니 어느 대기업 전문 경영가가 이 엄청난 일을 이다지도 잘 할 수 있겠는가? 우린 전문 경영가요, 어떤 스카우트 제의나 접대에도 사심 없이 움직이는 투명한 경영인인 것이다. 경영 장부 어느 때건 공개할 수 있다. 진짜 콩나물 오백원어치도 삥땅치지 않았다. 더운 여름날 길거리서 사 먹은 아이스크림 한 개도 다 적고 먹었다.
때론 개미 군단 되어 쌈짓돈 이리저리 풀어 주식 투자하고 반 토막 나서 위장병 걸리기 다반사여도 어찌 음모가 있으며, 속임수가 있겟는가? 다 반찬값이라도 벌어보려는 알뜰한 마음 뿐이였음을...

문화 예술을 주도하는 앞서가는 비평인으로서의 몫도 톡톡히 한다. 어찌 우리 같은 아지매가 없이 주말 드라마가 있을 것이며, 아침 프로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길 것인가? 그 많은 프로들의 시청률 팍팍 올려주며, 방송국들 먹고 살게 해주고, 아침부터 영화관에 진 치고 조조할인 봐 주며 한국영화 세계로 진출토록 애 써주고, 눈물 콧물 흘려가며 박장대소하며 몸사리지 않고 적재적소에 품평의 감동 날리니, 그 잘난 영화배우, 탤런트, 기타 등등 예술인 다 먹여 살린 꼴이다.
그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으면 피켓 들고 땡 볕에 나가 앉아 러브 호텔 거부한다. 으?X으?X~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가 항의하고 시위한다. 얻을 건 얻고, 버릴 건 버린다.

간뎅이 부운 남자들 회사 나가 큰 일한다고 거들먹거릴 때 작은 힘 모아 모아 달걀로 바위치기라도 해서 소중한 것들을 살리는 생명의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어디서 주부를 비전문가라 하는가?
전문가네 하는 사람들, 한가지밖에 모르는 답답이들이라. 우리 같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전문가가 어느 세상천지에 있을까보냐.
하지만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전문성은, 하버드 유학파도, 그 어떤 해외 유학파도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초능력에 있다.
바로 몸부림치는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인 것이다.
으스러지게 한 번 껴앉아 주는 엄마로서의 애정,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돌아가는 풀 죽은 남편의 기를 팍팍 살려주는 따끈한 해장국 한 그릇, 이웃과 같이 나눠먹는 떡 한 덩이, 며느리로, 아내로, 딸로, 이 땅의 아줌마로 사는 그 당당함에 있질 않는가?
자꾸 전문가 운운, N세대 운운, 능력 있고 유능한 운운… 하며 주부의 이 엄청난 에너지와 능력을 깎아 내리려 하는 그들의 음모는 또한 무엇인가?
도면 도, 레면 레, 뭐든지 할 수 있는 우리 몸부림스, 임금을 당장 올리도!!! 그동안 밀린 내 월급 돌리도!

이제부턴 고개 빳빳이 들고, 허리 쭉 펴고, 턱 앞으로 쭉 빼고 당당히 걷자.
세상에 둘도 없는 전문가니까!
우린 아름다운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