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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가 날 울려요 (2)


BY 프리즘 2001-04-11

핏덩이때 잠깐동안 서울에서 살았던거빼곤 잠잘때도 서울은 커녕

조치원쪽으로도 주둥이를 안두고 잤건만, 멀쩡한 대구가시나가

팔랑거리며 표준말쓰는걸 보면 첨만나는 사람 누구나 묻습니다.



"고향이 서울이신가봐요. 그쵸?"



그쵸는 개뿔이 그쵸입니까...

이젠 늙어선지 귀찮아 10고 말지만, 얼마전까지 그럴때면 대답해주던

매크로가 있었습니다.



"아니에요. 엄마가 서울분이시라 사투릴 못쓰게해요"



아~ 정말이지 그건 스트레스였습니다.

그 대답으로 끝내주면 좋겠지만 그외 부연설명이 10분쯤 더나와야

고개를 끄덕이기 때문이었지요.

허나, 여태까진 새발의 피였습니다.

결혼하고 시댁에서 살게 되었을때부턴 진짜 장난아니었습니다.




남편은 안동사람입니다.

경상도중에서도 북쪽지방의 사투리는 너무나 오묘해서 왠만큼 집중하고

들어도 무슨소린지 못알아듣습니다.

일찍부터 대구로 유학와서 시누이나 시동생은 좀 괜찮지만 늙으신

부모님들의 안동사투리는 [인간문화재]급입니다.

티비에 보면 시집간 새색시를 다정스럽게 "아가~"라고 불러주는

시부모님들이 나옵니다.

부푼 꿈에 저도 그런말을 들을거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이쪽 사람들은 그렇게 안불러줍니다.



"절므이....(젊은이)"



출신지역이 목포면 목포절므이고, 안성이면 안성절므이입니다.

첨에 그말을 들었을땐 진짜 기가 막혔습니다.

25살의 어여쁜 새색시에게 절므이가 뭡니까......젠장..

허나, 요즘은 차라리 그 호칭이 그립기도 합니다.



"아무개어마이........" 보단 낫거든요. ㅠ.ㅠ





청홍한복 곱게 차려입고 신새벽부터 앞치마두르고 밥을 합니다.

할줄아는건 넘치는 힘으로 뽀득뽀득 쌀씻는거 밖에 없지만, 그래도

잘해보겠다고 쿠당탕거리며 아침을 준비하는데 시엄니가 오셔서

퉁명스레 말씀하십니다.



"절므이 인났나? 어야 아직하그라. 밴밴두리쫌 도고"

"...........네.......-_-"



샤샤샥~ 방으로 들어가 디비자는 남편을 깨워 물어봅니다.

아직하라는데 괜히 일찍 시작했는지, 밴밴두리는 뭔지 자다일어난

남편한테 구박받아가며 설명듣고는 다시 샤샤샥~ 주방으로 튑니다.

해석하자면 이런 말이었습니다.




"아가 일어났니? 그래 아침밥 계속 만들거라.
큰 그릇 좀 건네주련?"




외국에 온 촌년처럼 말못알아 듣는다고 별별 쫑코다먹고, 하루죙일

발발거리다 보면 저녁시간입니다.

며느리 길들이려고 맘먹은 시엄니가 방으로 부르십니다.




"그래가이고시는, 너어가 맘마차가 잘할라캐도 니해내해 따지싸코
이핀네가 마카 한통소쿠리 돌리가매 쑥닥대뿌머 바까태 일하미
매미안나이가 (중간생략....) 그카이 그라는기다. 어이?"




어 무 이 !!!!

내는 우째살라고 이런 시련을 주능교? 어이?????

잘못한것도 없는데 꿇어앉은 다리에선 쥐가나고 뭔말인지 하나도

못알아듣는 구구절절 사연을 근 한시간넘어 듣고있다보면 머리에까지

쥐가 납니다.

신혼땐 문안인사드리고 방으로 들어와서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부모님딴엔 농담이라고 한마디 건네신게 내귀에는 너무너무너무!

환장하도록 섭섭한 소리로 들려 가슴속에 대못을 열댓개는 박아놓고

살기도 했고, 좀 풀어볼려고 남편한테 얘기하면 븅딱같이 이편도 저편도

못드는 인간때매 거품물고 넘어가기도 했지요.

10년의 세월동안 일어났던 일을 어찌 글로 풀어놓겠습니까.

하회마을로 유명한 안동지방의 남존여비 사상에 멍든 피해자로

자처하며 살다보니, 이젠 저도 좀 물들었습니다.

여자? 아무리 이쁘고 착하고 난테 잘해도 거들떠안봅니다.

남자? 추르릅....걍 남자믄 다 조아해줍니다. -___-;;





세월지나고보니 울엄마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것 같습니다.

저도 울아들래미가 가끔 안동사투리 쓰면 화들짝~ 놀라서 주변에 있는

고문도구를 찾습니다.

주로 빗자루나 장난감 야구방망이가 타겟이 되곤 하는데.....

급할땐 손바닥으로도 철썩~철썩! 잘 팹니다.

남자분들! 나중에 장가가서 마누라 가슴에 한맺히게 만들고,

자식들 궁뎅짝에 멍들게 하고싶지 않으면 지금부터라도 표준말

연습좀 합시다요.



(결말이.....말되능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