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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44

사투리가 날 울려요 (1)


BY 프리즘 2001-04-08


(글시작하면서 이 글에 나오는 특정지역분들께 이해를 구합니다.
이야기의 시대적배경이 70~80년대인 것을 감안해주시길.......
그치만 눈꼽만큼의 뻥도없는 실화입니다. ㅠ.ㅠ)




제 고향은 대구입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순토박이 경상도보리문디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투리를 안씁니다.

이 무슨 거지발싸개같은 망발이냐고 하시겠지만 사실인걸요.

울엄만 서울분이십니다.

6.25전쟁통에 어찌어찌 강원도로 건너와 살게되고 거기서 복무하던

울아빨 만나 결혼하고 대구로 내려오셨죠.

쩝...결혼생활이 별로 재미가 없었을겁니다. 당연히.

능력없고 승질더러운 시댁식구에 질려빠진 엄만 모든걸 경상도에 대한

반감으로 화풀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덕분에..우리 삼남매는 사투리쓰다 들킨날이 제삿날이었습니다.





사실, 쪼그말때는 어드밴티지가 있었습니다.

동물새끼치고 안이쁜게 잘없지만 저 어릴적엔 인형같이 생긴게 ^^;;;

서울말 통통쓰고 댕기면 동네어른들이 뽈따구에 발라주는 침만해도

하루에 한바가지였습니다. (우헤헤헤 ^0^)

하지만 머리 쇠똥벗겨지고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턴 얘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지요.

선생님이 "프리즘!"하고 출석을 부르면 다른 애들은 "에~"하고

대답했지만 저혼자 "네!"라며 손드는게 어린 나이에 무척이나

쪽팔리고 저혼자 병신된거 같았습니다.

아직도 엄마는 모르고 계시지만 우리 3남매끼리 모종의 반역을

계획했더랬습니다.

저녁먹은후 아랫목에 배깔고 엎드려 무지 심각한 회의를 했지요.

남들이 들으면 별것도 아닌걸로 쑈한다고 하겠지만 그당시 우리들로썬

정말 심각한 회의였습니다.





"언니, 애들이 자꾸 놀려. 서울래기다마네기라구..."

"나두그래. 우리반 애들은 내가 말할때마다 따라하면서 웃어대구,
나랑 도시락도 같이 안먹어"

"누나~ 난 오늘 골목에서 애들한테 맞았어"




요즘말로 왕따였습니다.

지금처럼 그리 영악스럽지 않아 험한 꼴은 안당했지만 동물원의

원숭이 노릇이 정말 싫었고, 남동생은 데미지가 더 컸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 비밀리에 사투리 연습을 했습니다.

엄마가 가게나가시면 서바이벌영어교습처럼 되도않은 사투리로

지껄이다 엄마들어오는 눈치가 보이면 낼름! 시치미떼었지요.

피터지는 노력끝에 우리 남매는 그럭저럭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치만 내가 무슨 이중국적자도 아니고 그 짓이 물흐르듯이 쉽게

되진 않았지요.

평소땐 별탈없어도 어쩌다 엄마가 학교에라도 오는 날이면 나는

눈에 안띨려고 도망다니기 일쑤였습니다.

엄마손에 잡히는 날엔 어쩔수 없이 아주 기분안좋은 척하며 입을

꾹다물었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는건 절대!!! 안했지요.

반친구들 사이에선 플즘네 엄마가 계모라서 내가 싫어한다고 개뿔

말도안되는 소문까지 나돌았더랬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별것아니지만 가슴에 못박힌 사건이 있습니다.

중2때까지 친구들한테 깜쪽같이 연기하고 살던 어느날,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고 학교로 연락이 와서 쉬는시간에 친구들이랑 같이

교내 공중전화에서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놀란가슴에 경황이 없어서 아무 생각없이 엄마랑 허겁지겁 통화하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뒤에있던 친구들이 조용~ 한겁니다.




"응 엄마. 그래서? 어느 병원에 계셔? 지금갈까? 알았어"

딸깍!

"너거 머하노? 퍼뜩가자!"

" ㅇ.ㅇ??? 니 서울래기가?"

"아....하하.....^^;;;;; 아이다. 문디가시나 머라캐싼노"

"니 검방 너거 엄마한테 서울말해짜나 가시나야"

"내가 은제? 귀꾸마리 잘몬댄는가 병언가바라"





한창 감정민감할때 (아, 한마디로 사춘기때군요 -_-) 친구들이 날

바라보는 그 의아한 표정들이 얼마나 가슴에 못이되었는지요.

아직도 가끔씩 꿈속에 나타납니다.

그렇게 초-충-고교생활을 보냈더니 남는거라곤 서울말을 써도되는

친구그룹과, 쓰면 '니먼데?'하는 눈으로 보는 친구그룹..두개만이

남아 제 머리를 어지럽게 했습니다.

취업때문에 면접보러 가던날, 버스속에서 다짐에 다짐을 했습니다.

'편하게 사투리쓰자....그래....괜히 튀어서 좋을거 없자나...'

'넌 할수있어! 아니, 니는 할수이따! 댄나? 대따!'





긴장하면 나도모르게 서울말이 튀어나오는 버릇을 억누르려 다짐에

다짐을 하고 면접장으로 갔습니다.

'면접볼라꼬 왔는데 어데로 가믄대예?' 에서 '수고하이소~'까지

잘해냈습니다.

회장님이하 상무님까지 포진해있는 면접실에 들어가는 순간, 바싹

얼어버려 날아오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버렸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은 뭔지 말해보이소"

"네에. 언니랑 돌려읽은 로맨스소설이었는데요, 남들은 유치하댔
지만 저나름대론 감명깊었어요. 주인공이 어쩌고저쩌고.....헉!"

"고향이? 서울인교?"

"아...아니에요...어쩌다보니....아...저....어머니...음...."




니미럴!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회사에 붙어버려 다니게되었고 열댓개의

부서에 인사하며 고향과 매치안되는 주둥이의 사연을 수십번은

말해야했더랬습니다.

맡은 부서가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라 그후 5년동안 그회사에

다니는 내내 셀수도 없이 그 말도 안되는 사연을 말했습니다.






지금의 남편도 그 회사에서 만났습니다.

나이는 6살이나 많지만 같은 입사동기지요.

다음편에선 대구사투리 못지않은 안동사투리 학습내용을 꼬발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