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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스<8>-보따리 장수


BY eheng 2001-03-05


또 경옥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훈! 우리과 51명이 모두 다 아는 남자 이름 훈! 대학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지겹게도 들어야 했던 외간남자 훈! 미국서 공부 빵빵하게 하고 와서 대학교수가 되었고 쭉쭉빵빵한 경옥이, 자동으로 싸모님이 되었는데... 그걸로도 성에 안 차 보따리 옷 장사를 시작했다.
이태원, 동대문, 그리고 출처를 비밀로 하는 모 회사의 상품들을 띠어다가 집에서 풀어놓고 파는 신종 유망 업종이다.
그치, 사낼, 보보리, 지아니메르사채, 후라다, 질샌느,... 보도듣도 못한 명품 짜가 옷을 가지고 다니면서 세일즈를 했다.

"나다. 내일 일산 뜬다. 신상품 팍 푼다. 알려라."

우리의 비지니스는 이렇게 시작됐다. 왜 우리냐구? 난 집을 제공하고 동네방네 아줌마들 불러모은 대가로 점 찍은 옷 한 벌이 공짜로 생기는 거다. 그 옷 한 벌 얻어 입으려고 하루 죙일 전화 돌려, 케익 구어, 커피 끓여 엄청 힘들었다. 종아리에 알 뱄다. 가래톳 섰다.
베란다에 있는 빨랫대 거실로 들고 와서 디스플레이 작업을 한다. 옷, 구두, 빽, 스카프, 악세사리... 주욱 늘어 놓고 손님을 맞는다. 분당 아줌마 표준 사이즈는 55라던데 일산은 왜 77일까? 사고 싶어도 안 맞아서 못사는 아줌마들, 그 허릿살이 너무 밉다. 살까말까 자꾸만 만지작거리는 손도 밉다. 아이들 델꼬 와서 옷에 과자 붙이는 아줌마, 정말 대책 없다. 두세개 사가는 옆집 수민 엄마 다음 주에 만나면 칼국수라도 살 일이다. 승호엄마 계속 빽만 만지다 그냥 간다. 손자국만 대따 묻혔다. 한수 엄마 위아래로 한 벌로 쫙~ 뽑고 간다. 역시 멋쟁이다. 숙경이도 왔다. 하얀 나불거리는 원피스 자기한테 어울린다고 철썩같이 믿고 한 벌 산다. 용의주도한 애자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며 안 산다. 흥! 자기가 스타일이 없는 거면서! 싸게 주는데도 꼭 5천원 깍고 가는 희원이, 얄밉다. 옥자는 언제나 꼭 껴서 여러 벌 챙긴다. 작은 사이즈는 다 제 꺼다. 외상으로 산다. 외상 값 안 갚아서 경옥이가 말했다.

"나는 모 땅 파서 장사하니!"
어디 선가 많이 들어 본 말인 것 같다. 내가 하는 장사도 아닌데 내가 다 힘들다. 목이 쉬고 등골에서 진땀이 난다. 온 방마다 들어가 옷을 갈아 입느라 난리다. 경옥이 가장 잘 나가는 미끼 상품 입고서 어설픈 모델걸음을 한다. 빽 들고 구두까지 신고 거실을 스태이지 삼아 자꾸만 알짱거린다. 뱅뱅 돈다. 현기증이 난다. 아줌마들이 입어 보라는 옷을 열 번도 더 바꿔 입는다. 그래도 기중 옷걸이가 젤 났다. 역시 옷 장사는 다르다. 다 가고 남은 옷 다시 싸는 일도 한참 걸린다. 그렇게 얼추 팔았다.

"많이 팔았니?"
"그냥, 모... 일산은 역시 일산이다. 소품만 나간다."
그날 나는 몇 년 만에 새 옷 한 벌 얻어 입고 밤새도록 행복했다. 어쨌든 공짜다.내가 생각컨데 경옥이 보따리 장사해서 남은 거 별로 없다. 원래 옷장사가 그렇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 아는 사람 원가로 주고, 친한 사람 그냥 주고, 팔다 남은 옷 재고로 쌓이고, 수금 안돼 자금 회전이 안되고, 반품에 외상 값마저 뜯긴다. 때론 원가 계산 잘못해서 띠어온 가격보다 싸게 판다....
알고 보면 미경이 뿐만 아니라 경옥이도 재벌이다. 근데 다들 진짜로 무섭다. 재벌이 더 무섭다. 그래서 이런 속담도 나왔다. 쓰는 놈 위에 버는 놈 있고, 버는 놈 위에 뺐는 놈 있다.
하지만 어찌 보따리 장사 돈 벌려고만 했겠는가? 짐작했겠거니와 밤이면 밤마다 달뜨는 몸부림스, 그 열불 못 꺼서 하는 것이다.
훈이씨에게 부탁한다. 쭉쭉빵빵한 부인, 부디 밤새도록 괴롭혀서 달밤에 체조하지 않도록 해주고, 허구헌날 두리둥실 같이 놀아 주어 새벽 녁에 브레이드 타는 일 없게 해주오. 우리는 이해하나 모르는 이 보면 이상 타 다시 보오. 야시장 돌아다니며 남은 정열 버리지 말고 그 힘 모아모아 대낮에 발산하게 외조 좀 해 주오.
잉어처럼 싱싱하고, 제비처럼 날렵하고, 고양이처럼 부드러운 몸부림스 대명사, 경옥이! 오늘도 그 남은 열정으로 소리 꽥꽥 지르며 분당 어딘가에서 쐬주 마시며 노래 부른다.
사랑 밖엔 나는 몰~라~~~

앗싸! 앗싸! 꽃무늬 홈 드레스 입고 돌아간다. 돌아간다. 남행열차타고 땡글땡글 숙경이 돌아간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