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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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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스<7>-전 재산을 너에게 준다.


BY eheng 2001-03-05


우린 기억한다.
은수, 현정, 희선. 얘네들은 우리과 3대 불가사리다. 남들 놀 때 안 놀고 시험 범위 정해지기가 무섭게 책을 판다. 시험 안 봐도 공부하는 별종들이다. 새벽에 도서관 자리 잡고 불 끄고 수위 아저씨 호루라기 불때까지 공부한 애들이다. 노는 애, 공부하는 애라는 위화감을 조성하며 학점 올리기에 안간힘을 다 쏟던 애들이다.
졸업 정원제였던 그 당시 학제를 생각하면 남의 살 파먹고 그것도 모자라 종류를 불문하고 먹어 치워서 자기 살 찌우는 불가사리처럼 지네 학점 높이느라 다른 친구 짤리는 거 무시한 얘들이다. 우리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동병상련의 아픔을 같이 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내가 공부하면 다른 친구 졸업 못 할까 봐 겁나서 공부도 못했다. 혼자 놀면 외로와 할까 봐 꼭 껴서 같이 놀았다. 졸업을 앞두고는 또 월매나 가슴 쫄였던가? 졸정제에 걸려 졸업 못하는 줄 알고... 그때 삶의 어두운 나락을 체험했던 우리들에게 그녀들은 불가사리였다.
하지만!!!
그녀들 없이 우리가 어찌 졸업인들 했겠는가? 솔직히 말해보라! 시험 볼 때 은수, 현정이, 희선이 노트 복사해서 안 돌려본 X 있으면 나와 봐라. 시험 때면 언제나 그녀들의 복사노트가 암암리에 돌려졌고 나중엔 그 글씨가 내 글씨보다 더 익숙해서 내가 쓴 노트는 못 알아볼 지경이었다. 그래도 얼굴 한 번 안 찌푸리고 선선히 노트를 빌려주던 그녀들... 그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몸부림스 그나마 알량한 졸업장이라도 있다. 특히 돌멩이만 던지던 연주, 얼마나 급했으면 내 노트를 복사했을까? 불쌍해 죽겠다.
그때 노트 안 빌려주려고 용쓰던 애들, 다 기억하고 있다. 그녀들은 조개다. 톡 건드리면 뚜껑 닫고 절대로 안 나오는 진주 없는 조개다.

현정이는 정말 공부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한만큼 잘했다. 그래서 더 많이 공부하러 미국에 갔다고 한다. 가서 재희보다 조금 더 많이 고생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가냘픈 몸이 더더욱 가냘파져서 서있지도 못했다고 한다. 미국 라면(1불에 5개 들었다.) 한 개로 세 번 나눠서 하루를 살았다고 한다. 이런 말 들으면 경옥이 반성해야 한다. 너무 많이 먹는 거 그것도 죄악이다. 그렇게 날로 몸이 쇠약해져서 결국 하던 공부 못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몸이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옥자에게서 연락 받고 만나보니 진짜 해골 바가지더라. 하얗긴 왜 그리 하얀지...
억지로 끌고 병원에 갔더니 난소에 종양이 있다더라.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가 있다더라. 그래서 수술을 해야만 했다. 입원을 하고 수술을 했다.
그 수술비 옥자가 다 냈다. 옥자가 부자냐고? 천만에다. 옥자가 석사 마치고 땡땡이 놀며 백수시절을 보내다가 배고파서 일을 시작했는데 서울 변두리에 있는 무슨 학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취직해서 두서너 달 월급 받아 적금을 부었는데 그거 깨서 수술비 했다. 내가 놀라자, 더 놀라운 얘기를 했다. 옥자가 졸업하고 하릴없이 있을 때, 진짜 땡전 한 푼 없어서 끼니도 굶고, 가스가 끊겨 자취방이 꽁꽁 얼 지경인데 현정이가 놀러 와서 그 꼬락서니를 보고 밥 사주고 가스 놔주고 했단다. 그리고 가면서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자기 차비 천원 빼고 남은 재산 만 이천 원을 몽땅 주고 갔단다. 현정이는 전 재산을 나에게 줬는데 돈이야 또 벌면 되는 거지 하면서 옥자는 태어나 처음으로 부었던 적금을 여지없이 깬 거다.

성경 말씀에도 있다.(난 왜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성경이 떠오르는 것인가? 하던 도둑질 안 할 수는 없는 걸까?) 부자의 금돈 백 냥 보다 가난한 과부의 은전 한 닢이 더 귀하다고. 한가지 더 생각난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자기의 전 재산을 줄 수 있겠는가? 그것이 얼마든 간에!

몸부림스였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우리 몸부림스는 악다구니가 뻗히면 온 몸을 불사하고 마구 던진다. 화약쥐고 불구덩이에 뛰어들며, 맨 땅에 헤딩하길 밥 먹듯 한다. 그 힘은 아무도 못 말린다. 왜? 자신의 전부를 걸기 때문이다.
건강이 회복된 현정이, 깔끔한 성격으로 아르바이트해서 그 돈 다 갚았다. 옥자 성격에 이자까지 쳐서 받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참 창피했다. 한마디로 쪽 팔렸다. 적금은 없었지만 결혼반지도 있었고, 카드도 있었는데...
현정이는 지금 영어과외를 한다. 엄청 잘 가르친다. 전교에서 꼴찌 하는 아이 전교 일등으로 만들었다. 중학생 이상 받는다. 연락해라. 선착순이다. 몸이 안 좋아서 많이도 못한다. 소수정예만 받는다. 공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도 같이 가르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과외다.
현정이도 옥자처럼 남자가 필요하다. 힘들 때 업어서 집에 데려다 줄 수 있으며 착한 남자였음 좋겠다. 그런 남자 있음 연락 바란다.(현정이 가벼워서 가능하다.) 참고로 옥자는 밥을 잘 사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옥자는 밥순이다. 하루 걸러 한번씩 삼겹살 안 사주면 신경질 낸다. 배고프면 포악해진다. 하지만 밥만 멕여 놓으면 만사 오케이다. 아직도 짝을 못 만난 몸부림스들 또 있는가? 너무 걱정 마라. 짝 있어도 몸부림치기는 매일반이다. 아니, 오히려 따블로 몸부림치니까 더 힘들다. 혼자서 몸부림치는 것이 걸리적 거리지 않아 좀 났다.

전 재산 털어 남 줄 때 남의 재산까지 털어 자기 것 만든 몸부림스도 있었으니 바로...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