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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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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스<6>-재취 자리가 좋아!


BY eheng 2001-03-04


가을비는 여자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잠잠하던 몸부림스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창문에 부딪히며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빗물은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가을비만 오면...비만 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학생식당! 그 식당의 우동!!! 전날 팔던 튀김 꽝꽝 굳어서 아무짝에도 쓸데 없지만 그 넙적한 칼국수 국물에 말아 먹으면 진짜 별미다. 아마도 250원 이였지, 뜨끈한 국물에 고춧가루 팍팍 쳐서 먹으면 죽여줬다. 똥배 나온 주희, 앉은 자리에서 꼭 두 그릇 때린다. 너무나도 이쁜 주희, 그러나 식성은 생긴 거와는 또 별개다. 수업시간에 몰래 에이스과자 먹던 버릇 못 버리고 은행에 취직해서도 계속 먹었다. 과자중독증에 걸린 것이다. 안 먹으면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금단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은행에서 ?겨났지싶다. 지금은 무슨 학원을 한다던데... 혹시 제과 제빵 학원이 아닐까? 모를 일이다.
우리 몸부림스, 너무나 전공과 무관하게 산다. 교수들이 그리도 바라던 교양인은 고사하고 주위에서 대학 나왔다고 얘기하면 이상하게 쳐다본다. 진짜냐고 다시 묻는다. 이러지 말 일이다.
우리 몸부림스의 공통적인 식문화 또 한가지 있다. 임신했을 때 그 학생식당의 우동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분명 제적 학생이거나 중퇴생이다. 또 있다. 가을비가 내리면 학교 앞 싼 분식의 수제비가 떠오른다. 너무나 아련하게 둥둥 떠오른다. 물론 싼 분식의 떡라면도 좋았지만 그래도 비 오는 날엔 역시 수(水)제비다. 골목길에 있던 미미집 우동도 찐했다. 멸치국물 찐하게 우려서 얼큰한 국물, 계란 풀어 넣는다. 술 마신 다음날 해장하기 딱 좋다. 총각집 순두부도 별미였다. 동동 뜬 계란 한 개. 팍팍 풀어서 먹으면 성깔 괴팍한 거고 슬며시 밑에 깔아서 끝까지 익혀 먹으면 소심증이다. 어찌 그것뿐이겠는가! 4년 내내 몸과 마음을 살찌우던 식량들이...
비가 오면 한꺼번에 미치도록 생각난다.

그렇게 늦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날, 동숭동에서 옥자를 만났다. 학교 다닐 때 절대로 안 친했던 친구들이 졸업 후에 친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첫번째는 다단계 사업상 피라미드 쌓다 보면
두번째는 이유야 어찌?怜?살고 있는 집이 가까울 때
셋째는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외로와서다.
옥자와 나의 경우가 그 세번째인데 난 재희와 친했고, 옥자는 경옥이랑 친했는데 그 당시 재희는 파리에 가고 경옥이는 미국에 있어서 둘 다 짝 잃은 외기러기마냥 외로왔다. 그래서 심심풀이로 만났다. 더군다나 그때 뒤늦게 석사과정을 공부하던 노처녀 옥자는 공부하는 학생답지 않게 시간이 널널해 놀기가 딱 좋았다. 아니, 좀더 솔직히 말해서 공부하는 꼴을 못 봤다. 그래서 난 지금도 가끔씩 의심스럽다. 옥자의 학벌이! 그리고 어딘지 시골에서 막 상경한 것 같은 옥자의 인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신을 편안하게 한다. 더 이상 사람을 만날 때 갖는 긴장감이란 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옥자도 까질 만큼 까졌다. 발랑 까진 건 아니지만 홀라당 까졌다.
그날도 동숭동에서 년중행사로 연극을 한 편 보고(물론 공짜표다.) 나오는데 포장친 점 집이 눈에 띄었다.

"야, 우리 점 보자."
"그래."

골라잡아 아무데나 들어간 점 집엔 신수 좋게 생긴 아주매가 앉아 있었다. 출생일과 출생 시를 말하니까 고매한 척 한문이 빡빡이 적힌 책을 한참 뒤적이더니 사주를 풀더라. 내 사주는 너무나 평범해서 들어도 기억 나는 거 하나 없다. 그러나, 역시 옥자는 달랐다.
그 아주매 눈빛을 달리 하더니 첫 마디부터 예사롭지 않다.

"쯧쯧, 고독수야. 어릴 적에 부모와 헤어졌지?."
"에."(혀도 짧지 않건만 옥잔 항상 에.라고 대답한다.답답해서 미친다. )
"살이란 살은 다 꼈어. 도화살에(? 절대 믿기지 않는다.), 역마살까지... 일찍 결혼을 했으면 세 번 이혼할 수야. 결혼은 늦게 해야 편안해. 그리고..."

아주매 한참 머뭇거리더니 내침김에 말한다.

"...그리고 결혼은 재취자리가 좋아."

흐익~! 웬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하지만 옥자의 간절한 말 한 마디가 더 놀랍다.

"재취자리라도 있기만 하다면야..."

몸부림스여! 어디 괜찮은 홀에비 있음 알려다오. 몸부림스는 숫총각이건 홀 에비이건 가리지 않는다. 제비건 놈팽이건 차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리지 않는다고 모두 다 오케바리는 아니다. 우리도 보는 눈은 있다. 적어도 우리 몸부림을 받아줄 수 있는, 아니, 참아 줄 수 있는 정도의 아량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여지껏 살아보니 그 정도 남자들도 별로 없더라. 남자들은 모두 다 밴댕이 소갈딱지들이더라.
옥자 아직도 몸부림 받아 줄 남자 못 만나 아주 몸부림을 친다. 이따금씩 전위예술을 한다. 나 좀 살려다고. 어디 재취자리라도 빨리 알아 봐 다고. 옥자도 알고 보면 쓸만한 애다. 내가 보증 선다. 깡깡 말라 여자구실 못할 거 같지만 옥자 맨 몸 내가 봐서 안다. 그럭저럭 괜찮다. 가슴도 계란후라이 정도는 된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또 한명의 미혼녀, 현정이도 부탁한다. 미국서 박사 공부하던 중 귀국한 현정이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