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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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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스<4>-이눔의 쉐뀌!


BY eheng 2001-03-04

경주가 가고 그 다음 해 여름엔 반가운 친구 재희가 파리에 간 지 4년 만에 다니러 왔다. 그 참에 우린 또 겸사겸사 동창회를 마련했다. 이번엔 분당으로 진출했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도 빛도 안 나는 멋을 내고 다니드만 결혼 후에 완전히 180도 변심하여 알뜰하다 못해 넌덜머리 나게 구두쇠가 되어 살림하는 미경이. 그녀의 집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 남편은 필리핀서 떼돈을 벌고 재희는 화장품 하나 사는 거 아까워서 목욕탕에서 공짜로 바르게 하는 로션 한 병 사서 삼 년 동안 얼굴에 바르고 사니 어찌 재벌이 안됐을까? 그래도 밥 한번 제대로 안 산다. 그래서 부자가 더 무서운 법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아마도 우리 몸부림스들 중에서는 첫번째로 집을 장만했다지! 그런데 그날......
또 한 명의 초대 손님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3대 불가사의 중의 한 명인 오여사. 그녀 역시 공부하는 남편 따라 미국에 가서 지내다 오랜만에 잠시 고국 방문을 한 경우였는데 자기 만나달라고 사방팔방 연락해서 드디어 같이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월월 월~메나 재미있겠는가? 졸업 후 10년 만에 지상 최대의 쇼가 펼쳐질 예정이었던 것이다. 왜? 삼대 불가사의가 다 출동하게 됐으니까!
우리 일산파 일당은 아침부터 되도 않는 얼굴에 회칠을 하고 옷장을 몽땅 뒤져 일단은 사이즈에 맞는 옷을 고르려다 시간 다 갔다. 일산에서 분당까지 전철 타고 버스 타고 꼬박2시간 27분 걸린다. 그래도 간다.
미경이네 아파트 상가에서 우리 뿜빠이해서 커다란 스펀지 케익 특대호로 사갔다. 일단 밥값은 했다. 현관문을 들어서자 호방한 미경의 웃음소리와 함께 거구가 된 미경이가 떡대처럼 서 있었다. 그새 몸이 두 배로 불은 것이다. 재벌이라 다르다! 억지로 꿰 입은 치마의 작크가 뜯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 느꼈던 부르조아 미경이 보다는 재벌이 됐지만 지금의 미경이가 훨씬 더 정겨운 까닭은 무엇인가? 그녀의 정스런 몸집에 있지는 않은 건지!...
미경의 집은 대책 없이 깔끔했다. 지금이야 인테리어가 난무하는 시절이지만 그 당시 꽃가라 벽지에 원목마루는 환상이었다. 특히!!! 원목마루 깔고 기스 갈까 봐 한시도 감시의 눈길을 놓지 못하는 미경이. 그녀의 식탁 의자들을 보았는가? 형광색 테니스 공을 십자로 잘라 의자다리에다 다 끼웠다. 실로 놀라운 발명품인 동시에 엽기적인 행동이었다.(그 테니스 공을 십자로 잘라 보아라. 절대로 인간의 힘으론 안 된다. 미경이니까 가능했다.)
감기몸살이 걸려 열에 들떠 있을 때면 왜 그 형광색 테니스공이 내 눈 앞을 얼쩡거리는 건가? 그래서 그 테니스 공 난 우리집에서도 종종 본다. 그리고 미경의 집 한구석에 있던 장식용 청동 촛대를 기억하는가? 누구의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난 조성모의 <가시나무>노래만 들으면 미경이네 그 청동 촛대가 즉각 떠오른다. 꼭 가시나무처럼 생긴 촛대다. 그 촛대의 형상이 머릿속에 둥둥 떠오르며 가끔 내 가슴을 사정없이 콕콕 찌른다. 아~! 아마도 나는 전생에 가시나무 새였던 것이 아닐까? 과학으론 입증이 안 되는 묘한 현상이지만 미경아, 그 촛대 진짜 주인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또한 오랜만에 듣는 미경의 육두문자! 너무 내츄럴하다.
미경이가 혜경이를
"혜경아. 이것 봐라"라고 하면 어색하다.
"이 기지배야, 니 새끼 쉬 깔긴다. 이눔의 쉐뀌!" 해야 맞다. 지 자식도 광민이란 이름보다는 <이눔의 쉐뀌>가 애칭이다. 광민아~ 하면 쳐다 보지도 않는다. 이눔의 쉐끼! 해야 달려온다.
어쨌거나 거진 다 모인 것 같았다. 회비 걷어서 밥 먹기로 했다. 왜 비빔밥을 안 먹냐고? 그건 미경이네 불문율이다. 자나깨나 청소와 빨래중독증상이 있는 미경이 하루 종일 쓸고 닦은 후에 밥하면 주방 더러워진다고 꼭 나가서 사먹는다. 진짜다. 집에선 우유와 커피만 마신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상가로 샅샅이 뒤져서 골고루 배달시켰다. 우선, 콩나물 쟁반 짜장 특대로, 매콤한 막국수, 그리고 돼지 족발, 탕수육, 순대... 아무튼 엄청 시켰다. 배달 온 음식을 차리려고 거실의 테이블을 옮기다가 유리를 왕창 깨먹었다. 그 바람에 테이블 유리는 박살이 났다. 그러나 유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유리때문에 미경의 원목마루에 크나큰 기스가 난 것이다. 미경이 얼굴색 금새 허옇게 변했다. 우린 순간 긴장을 했지만 미경이 자신이 옮기다 깼으므로 조용히 넘어갔다. 우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마 우리 간 다음에 욕 꽤나 했겠다. 시X시X이라고.
한식도 아니고, 중식도 아니고, 오묘한 음식의 조합으로 식사를 한 후에도 커피와 케익까지 다 먹은 후에도 오여사는 오지 않았다. 이상해서 웬일인지 서로 물어봤더니 알아서 오겠지 하며 서로 연락을 안 한 거다. 그 극성을 떨더니 몰라서 못 온 거다. 이거 우리 몸부림스 무덤에 갈 때까지 비밀로 하기로 했다. 후한이 너무나 두렵기에... 지금도 오여사는 미국서 뒤늦게 여성학인지를 맹렬이 공부하고 있단다. 박사 딴다고 한다. 교수 되려고 한단다. 오여사 교수 되면 난 총장한다. 이 놀라운 사실은 미국 뉴욕의 경희 특파원이 생생하게 전해준 뉴스다. 오여사가 못 오는 바람에 재미가 덜 했다. 다음엔 꼭 연락해서 같이 만나자. 지상최대의 쇼가 예정에 없이 미뤄졌다.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혜경이 딸의 전화다. 그때 나는 고단수의 자녀교육법을 혜경에게서 배웠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낮잠을 잔다. 왜? 주부는 만성 피로감에 시달리므로. 자고 있으면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그 현관문 따주기 귀찮아서 아예 열쇠를 현관구멍(신문 들어오는 작은 구멍) 앞에 놔둔다.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는 건 잠자는 사자를 건드리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므로 알아서 간식을 찾아 먹고 다시 학원에 갈 가방을 싸서 조용히 문 잠그고 나간다. 다시 열쇠는 구멍에 들여 놓는다. 이따가 다시 들어올 때 필요하므로.
아이는 훈련을 통해서 자란다. 잘 훈련된 아이만이 자기를 통제할 줄 안다. 아이 스스로 몸부림치며 살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우리는 이런 중요한 자녀교육법을 전수 받았다. 그래서 몸부림스 동창들의 자식들은 엄마가 챙겨주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지 스스로들 알아서 산다. 훌륭한 교육법이다. 제2의 몸부림스가 될 역량이 있다고 본다. 그 후로 내가 경옥이네 전화하면 그 당시 4살짜리 주영이가 2살짜리 홍준이를 보고있다. 엄마는 윗 층에 마실 갔단다. 은수 아들은 아침에 조용히 일어나 엄마 깨우지 않고 우유에 콘플레이크 타서 먹고 학교에 간다고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미경이 아들도 열쇠 목걸이에 차고 다닌다. 다들 이러고 산다.
자녀교육에 대해 일장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는데도 미경이 아까 남은 족발 계속 뜯고 있다. 쪽쪽 빨아먹고 손가락까지 ?는다. 역시 재벌이 되려면 뭐든지 아끼고 끝까지 이용해야 된다. 진리다.
가는 길이 멀므로 일어났다. 다시 만날 날 기대하며... 다음엔 혜경이네서 모이기로 한 것 같은데 여지껏 암말도 없다. 아무래도 유리 깬 것이 치명적 이였던 것인가! 맘에 걸린다.
일산파는 다시 모여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집에 왔다. 왔더니 깜깜한 밤이더라. 평소에 보지 못하던 별까지 봤다.
그날 재희는 우리집에서 잤다. 근데 그날 밤 사단이 났다. 경옥이의 <한 여름 밤 불갈비 사건> 못지 않은 <한밤중의 전화테러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사건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