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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스<1>-안 나오면 짜 먹인다.


BY eheng 2001-03-03

그렇다. 몸부림스!
흑 장미, 팔색조, 암코양이, 꽃배암... 그 딴 것보다 우리의 정체성을 한 칼에 야무지게 지칭하는 것은 역시 <몸부림스>다. 원래는 수업은 빼먹어도 고고장엔 꼭 간다는 우리 동창생 멤버들의 명칭이었으나 이제 늘어나는 뱃살을 슬금슬금 감추면서도 있는 끼는 못 감춰 밤이면 밤마다 몸이 달뜨는 우리 아줌마들 모두의 정체성이다. 아! 그 이름 몸부림스.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 살며 몸을 지키기 보다는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살려고 부단히 용썼던 내가, 이제 어두웠으나 한 치의 왜곡 없이 그 역사를 밝히고자 한다.

조용한 산책로, 이름 모를 산새들은 지지배 지지배 지저귀고 향긋한 꽃 향기가 콧구멍을 간지럽힌다. 한줄기 바람이 볼 따귀를 스친다. 바람에 머릿결이 흩날린다으다으. 에잇! 그냥 무릉도원 비슷한 곳이라고 상상하면 간단하다. 그때 홀연히 작은 연못이 슬로우 모션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그 연못 속을 들여다보니 형형색갈의 탐스런 잉어들이 떼를 지어 노닌다. 금색, 은색, 형광색, 똥색, 사이버틱한 발광체... 펄떡펄떡 뛰놀며 관능적으로 춤춘다. 한 여인(!)이 물고기 밥을 주니 그 수많은 잉어들이 품으로 뛰어들듯 몸부림(!)친다. 가슴 속으로 뛰어드는 잉어를 덥석!

이건 경옥이의 첫 아이 태몽이다. 암튼 내가 듣기론 그랬다. 그리고 정말 열 달 후에 잉어처럼 싱싱하고 이쁜 딸이 태어났다.

그리고 또 삼년 후...

신도시의 어느 아파트 출입구.
적잖이 수상한 아줌마들이 자꾸 12층으로 올라간다. 애 밴 아줌마, 갓난 아이 들쳐 업은 아줌마, 보행기 들고 올라가는 아줌마, 애 없이 홀 가분히 들어가는 아줌마, 양 손에 하나씩 달고 들어가는 아줌마...
졸업 후 아마도 첫 동창회가 열린 것이다.
다 모인 동창의 수가 열 두어명, 그 동창의 애들이 이십 명은 족히 됐으니 다른 건 몰라도 자식농사 하난 기차게 지었다. 교양 과목 학점은 씨였지만 자식농사는 에이 뿔이다.

난장판이다. 아이 눕혀 똥귀저기 갈고, 우유 먹이고, 박박 기어다니고, 보행기 타고 울며불며 다니고, 아장아장 걷는 아그들, 레고 불럭 갖고 쥐 터지게 싸우는 아이들,...

경옥이가 소리지른다.
"옥자는 왜 안 오는 거니? 시집 안 간 X이 빨리 와서 애라도 봐야 할거 아니냐."
그때 아이들 서넛 모아놓고 재미난 옛날이야기도 할 주변머리 없던 노처녀 옥자가
똥 싼 아이에게"똥은 왜 냄새가 날까?"
싸우는 아이 말리지 않고"꼭 싸워야 할 때는 언제지?"
우는 아이 눈물도 안 닦아주며"슬플 땐 왜 눈물이 나오는 걸까?"
과자 사달라고 하자 사주지도 않으면서 "먹는다는 건 뭐지?"
하면서 황당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하도 황당해서 물끄러미 듣고 있자 자기 말에 약 발이 있다고 굳게 믿고 여기서 착안하여 지금의 논술교실을 시작했다. 위의 질문들을 구체화하여 논술의 주제들로 삼았는데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 <전쟁과 평화> <기쁨과 슬픔> <돈과 먹기> 등등의 주제들이다. 지금도 논술교사하며 써 먹고있다.
이 와중에도 오랜만에 만난 아줌마들은 울부짖는 아이들과는 별개로 태연히 앉아 의연하게 비빔밥을 먹었다. 먹기 전에 집사인 은미가 식기도를 했다. 그때 눈 살짝 뜨고 보니 태옥이만 씨씨거리며 먼저 먹고 있었다. 밥 먹을 때 기도 안하는 태옥이 분명 채플시간 빵구 났을게다.
그 비빔밥! 그래서 나중에도 모였다 하면 나물 한가지씩 만들어와서 무조건 비빈다. 고추장만 넣으면 나물이야 어찌 되었건 맛이 똑같다. 싹싹 비벼서 한 그릇씩, 아니 두 그릇 먹은 아줌마도 있었다. 근데 밥 많이 먹기로 소문난 경옥이가 순간, 보이지 않았다.

"어딨니?"
"밥 먹여"
"...?..."
작은 방에서 떡 하니 퍼질러 앉아 작은 놈 젖을 먹이고 있었다. 난 지금도 그때를 너무나 생생히 기억한다. 쉐타를 벌렁 들어올리고 젖을 먹이는 그 모습! 관능적이다 못해 본능적이었다.
"내가 이렇게 하루종일 젖통을 내놓고 산다."
젖을 물리며 태연하게 말하는 경옥이.
누군들 젖을 안 먹이고 싶었겠냐? 아이 낳고 오로지 모유를 먹이겠다는 집념에 불 타서 살이 익어버릴만큼 뜨거운 타올로 두 젖통을 얼얼하게 두드리고 문지르고 꼬집어 뜯어도 나오라는 젖은 안 나오고 젖소부인처럼 부풀어 오르기만 한다.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합동으로 고아주는 꼬리 곰탕에 돼지 족발 국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들이 마셔도 오르는 건 배와 엉덩이의 살들 뿐. 죽어도 안 나온다. 팅팅 불은 가슴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다. 아이는 빽빽거리며 울고, 애타는 모성은 천길 만길 찢어지는 가슴으로 분유가루를 타기 시작한다. 아이는 송아지마냥 소젖을 잘도 빨아댄다.....
허나, 경옥인 달랐다. 역시 몸부림스의 주 멤버답게 끝까지 몸을 쥐어짠다. 안 나와도 억지로 짜 멕인다. 그렇게 하기를 한달 두 달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젖몸살에 시달리던 어느날 드디어 젖줄이 튼다. 콸콸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처럼 젖이 줄줄 흐른다. 아이가 삼키다 사래가 들 정도로 쏟아진다. 먹이고 남아서 짜버릴 정도로 나온다. 세상은 이래서 진짜 불공평하다.
그 장면을 내가 목격한 것이다. 워찌나 샘이 나던지, 여자의 본능적 육감으로 피가 꺼꾸로 솟았다. 자책과 죄책이 혼합하여 썰물처럼 밀려든다.
일단은 아이 젖부터 먹여 놓고 비빔밥을 고추장 없이 비벼서 두 그릇 먹는다. 젖먹일 때 매운 거 먹으면 안 된다며 유난을 떤다. 인스턴트 음식도, 기름진 음식도, 커피나 술도, 다 금기다. 오직 신선하고 품질 좋은 젖을 생산해 내려는 젖소부인의 눈물겨운 노력.
하지만 너무 부러워하지는 말자. 분유가루 타먹고 자란 우리 아이들, 경옥이네 아이들보다 더 실하다. 실하다 못해 뚱뚱하다. 하지만 만만친 않다.
젖으로 두 살까지 키웠다고 하면 이유불문하고 존경한다. 위대한 모성이다. 그렇게 몸부림치며 아비규환 속에서 애새끼 키우던 때가 까마득하다. 아직도 아이가 하나인 은수가 그때 말했다.
"그러길래 누가 그렇게 싸질러 애 낳으랬어? 으하하하."
진짜 싸질러 애 낳은 우리들, 열 받아 뚜껑 열렸다. 그 말 듣고 셋째 낳으려다 포기했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 동창 중에 아이 셋 낳았다는 말 못 들었다. 있음 알려다오.
그날 그 난리 브루스를 떨고 갔지만 경옥이 딸이 싼 오줌 치우며, 은경이가 놓고 간 기저귀 치우며, 벽에 그려진 아이들의 낙서 지우며 마음만은 그득했다. 왜냐구?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