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볼 수 있는 둥근 벽시계.
장만옥이 입은 챠이나 칼라(목젖을 누르도록 빳빳하게
날이 선)의 타이트한 원피스.
양조위의 깔끔한 정장과 기름 발라 단정히 빗어넘긴
머리 스타일.
자욱한 담배 연기.
앙코르와트의 빛바랜 버려진 사원들.
영화 전편에 지뢰처럼 묻어놓은 자잘구레한
소품들과 암시들만 읽어도 금방 해석이 가능하다.
서로의 배우자끼리 불륜관계인걸 알고 시작된
두 남녀의 사랑...
엄밀히 말해 이루어 낼 수 없는 불륜인지라
그들의 옷처럼 못내 갑갑하다.
"우린 그들과는 다르니까..."
"우린 절대 잘못되어선 안돼요"
서로 주문을 되뇌이지만,
사랑이라는 최면요법은 항상 우리의 다짐을 능가한다.
우리가 사람에게...
혹은 사물에게...
가슴을 열어 '만남'을 일구어 내지 않는 이상,
벗어내 던져 버리고 싶은 외투같은게 우리네 일상일 것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둥근 벽시계가 가리키는
무의미한 시간과 그 무엇이 다르랴!
우리가 서로 만나지 않는다면...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은 욕정으로 뒤섞이지 않고,
결국 '순간'을 봉인하여,'영원'토록 서로를 추억한다.
희미해지는 옛 사랑의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만개(滿開)란 한껏 만발한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개 바로 직전을 말함이 아닐까?
피어있는 꽃을 한 번 유심히 들여다 보라!
만발한 꽃은 속절없이 스러질 일만 남았을 뿐이다.
사족 : 영화 음악 선곡에 관한 한 왕가위는 탁월하다.
나는 <중경삼림>에서도 'California Dreaming'보다는
오히려 '몽중인'이 좋았었고,
<화양연화>에서도 넷킹 콜의 'Quizas,Quizas,Quizas'보다는
전편을 흐르는 첼로와 바이올린이 뒤섞인 선율
(아쉽게도 제목은 모르지만)이 더 마음을 짓이겼다.
답답하고 느린 사랑을 더 아련하게 만드는 음악들...
왕가위의 음악은 더 영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