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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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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쟁이 집 포도서리


BY 풀씨 2001-01-08

서리 알지예

떼를지어 주인몰래 훔쳐먹는 장난 말임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자의건 타의건 서리란걸

해 보았을깁니다

여자들도? 그라모예 장난끼가 철철 넘쳐나는 열 ?p?p살 계집애들도

사내애들 못지 않게 서리를 했었지예

어른들은 주로 농한기에 사랑방에 모여서 심심파적 으로 누구네 집

씨암탉이 살이 오동통하게 올랐다거니 누구네집 동동주가 대밭

어디쯤에 묻혀 있는데 술익는 냄새가 난다거니 이러구들 은근슬쩍

서리하자는 쪽으로 대세를 몰고 가지예

아줌씨들은 아줌씨들 끼리 이른 저녁 먹고 양말뒤축에 알전구 끼워서

떨어진 양말이나 헌 옷 나부랭이 깁는다고 들 앉았다가 누구네집

동치미 가 맛있다느니 누구네집 밤 고구마가 달고 맛있다느니 해가며

출출해진 김에 행동을 개시 하지예

오늘 야그는 바로 아그들 서립니다아~

때는 청포도 익어가던 늦여름 초가을 사이 였지예

우리동네 제일 위 쪽에 위치한 방구쟁이 할배 집은 초등학교 다닐때

등,하교,길이었지예

양철지붕 이었고 집 뒤에 울울창창 대나무도 있었고 대문 앞 쪽은

우리가 두명이 나란히 걸어다닐수 있는 길이고 길 양옆은 논 이었지예

왜? 방구쟁이 라는 별명을 그 할배가 얻었능가 하면요 경로당에서

할배집 까지는 약 300미터 정도 되거등요

경로당 출발서 부터 "부릉,뿌뿡 뽀옹 뽀뽀뽕 펑" 등 각양각색의

화음으로 집 까지 간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지예

우쨌든 방구쟁이 할배집 담 안쪽에 포도나무가 한나무 있었는데

알이 여물고 투실투실 해서 여름방학 인 팔월엔 푸른빛이지만

고것이 추석이 다가올때쯤엔 머루같이 검어지면서 우리들 입맛을 자극 시키고 했지예

그란데 여름방학이 오면 농수로를 내어 놓은 폭포밑에서 신나게 물장구 치다가

그집 앞 을 지나갈려면 자연스레 커다란 잎사귀 밑에 주렁주렁 알이

굵은 포도송이 에 저절로 눈이 가게 되지예

멱 감고 아침 한 숟갈 먹은것이 벌써 소화된 시간 오후 2-3시

까치발을 해가며 담장 너머 마루께를 훔쳐보이 방구쟁이 할배는

허연 수염이 드문 드문 난 얼굴을 위로하고 반쯤 벗겨진 머리를

목침에 고이 고서 낮잠을 자고 있는기라예

아마도 아들,며느리,는 논에 갔나 봅니더

이 절호의 차안스를 놓치면 안되지예

그 때 우리 가스나들이 다섯명이었거든예

집안으로 갈수 없고 할수없이 벼 가 자라고 있는 논으로 갔지예

담장에 박힌 돌멩이들을 잡고서 조심 조심 세명이 들어 갔지예

그때는 올벼가 없었기 때문에 논에 물들이 벼 뿌리께에 찰랑 찰랑

거리고 있었고 흙을 쳐 올려 가장자리는 꽤 미끄럽거든예

남은 두 가스나 중 한명은 집안 할배 망 보고 한 명은 아들,며느리,

망 보고 신호는 손뼉 두번 치는걸로 하고 갔지예

미끌 미끌 무논을 써래질 하며 포도가지가 넘어온 곳 에서 우리는 그만

황홀해졌심니더

송이도 탐스럽게 시퍼런 포도가 씨알도 굵었지예...

각자 치마들을 걷어올려 보자기 처럼 펼치고 포도송이 따느라 정신이

없었심니더

서리하는게 아니었다면 포도넝쿨 상하지 않게 조심해서 딸 것이지만

마음은 급하고 눈 앞에 시퍼런 포도는 유혹하지예 들킬까봐 가슴은 뛰지예

그만 앞,뒤,생각없이 따고 있는데 난데없이 할배 고함소리가 담장

안쪽에서 쩌엉 울렸지예

"이 노무 가스나들이 지금 뭐하노 으잉~"

우리는 혼비백산 했지예

뒤쪽 대 숲쪽으로 뛰면서 미처 치마폭 을 움켜쥐지 못해 아까운 포도를

흘리기도 했지만 날랜 들 짐승마냥 다섯명이 윗 배미 논으로 마구 달려 갔지예

할배가 담뱃대를 쥐고 훠이 훠이 따라 오드니 안보이데예

들 가운데 봄에 보리 탈곡하고 쌓아둔 보릿대 낫가리가 있었지예

그기 옹기,종기 모여서 일부 흘리기는 했어도 제법 굵은 송이가

?p 송이 있었지예 망보던 가스나들 보고 뭐했냐고 따져보이

오줌 누러 갔다오니 할배가 없드라네요

박수 두번 칠라꼬 보이 할배 고함소리가 터졌다꼬 미안타 해 가며

우리는 풋 포도알을 시고 텁텁했지만 맛있게 먹었다면 얘기 끝인데예

막 입으로 가져가서 우물거리는데

할배가 담뱃대를 처억 들고 우리가 앉아있는 언덕위에 서서

"요놈의 가스나들 너거 누구집 딸 내미 들인고 다 안다마

이리 못 나오나"

하이고 다 먹어보지도 못하고 우리는 누구집 딸인지 다 안다 쿠는

바람에 다 나갔지예

포도를 양 손에 들고 말임다

할배는 담배대로 머리통을 한번씩 치시더니

"요놈들 포도알 만 따가지 덩쿨은 왜? 상하게 하고 가노

그라고 모 를 망가뜨리고"

끌 끌 끌 혀를 찹디다

우리는 미안해서 "잘 몬했심다" 를 연발하며 할배를 쳐다봤더니

"됐다 고마 가거라 다시 한번 이래 하모 너그 집에 알릴끼다"

이러시더니 뽕,뿌웅,빵,뿌붕,하시며 가시는 기라예

하이고 그때 처럼 방구소리가 아름다웠던 적이 없었십니더

그 할배는 이미 지금 고인이 되셨지만 그 많은 서리 중에 그래도 그 날처럼

진땀 났던 적은 없었심니더

밤이 긴 요즘 옛날 서리 해 먹던 그 시절이 불현듯 생각나네에

옛 인정이 그리운 건 나뿐이 아닐겁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