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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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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집 옆 그 아이(1-2)


BY 칵테일 2000-09-25


무당집 옆 그 아이(1-2)

아카시아 나무가 빼곡한 한켠에 그 아이의 집이 있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계신지 안 계신지 나는 한번도 뵌 적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엄마와 단둘만이 그 엉성하게 지어진 허름한 집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볼 때 그 아이는 언제나 말이 없었고, 어쩌다가 남들과 말을 하게 되는 경우라도 꼭 필요한 말외에 사족을 붙이는 일 또한 드물었다.

그러나 그 주변에 제법 용하다는 무당이 살고 있어서인지, 그 아이는 자주 그 무당집을 어슬렁거리거나 기웃거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카시아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계절이 되면 그 아이의 집은 하얀 눈밭에 둘러쌓여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생각난 듯 가끔씩 우리집에서 멀리 그 쪽을 올려다보면, 그 아이의 집 주위로 흐드러지듯 피어난 아카시아 나무들이 있었다.

그리고는 또한 가끔씩 그 나무 주변을 서성대며 혼자서 놀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아버지께 그 아이의 집에 대해 몇번씩 여쭈어보곤 했지만, 그저 모르신다는 대답을 들을 뿐이었다.

그것은 그 아이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의 엄마때문에 아버지께서 대답을 해주시지 않음에 분명했다.

모두들 그 아이 엄마의 거칠고 억센 말투, 급하고 무례한 성격으로 자주 동네사람들과 시비가 붙는 경박함을 느끼고 있는 까닭이었다.

웬지 알 수 없는 천박함과 거친 느낌이 그 아이의 엄마와 동네사람들을 갈라놓고 있었다.

어쩌다 말다툼이 생기면 어김없이 큰소리로 악다구니를 치며 동네사람들을 향해 화를 내는 그 아주머니는 어린 내가 봐도 무섭기만 했다.

그렇지만 어린 아이들, 특히나 그 아주머니의 딸 또래쯤 되는 아이들에게는 무척 잘해주셨었다.

그러면서 그 잘해준 끝에는 늘 당신의 딸과 사이좋게 잘 놀아야한다는 당부의 말씀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면서.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별반 눈에 띄게 친구가 없었다.
언제나 그 아이는 엉성한 그 아이의 집 주변을 맴돌며 혼자 노는 듯 했다.

글쎄, 논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 만큼 그저 서성대거나 집 안팎을 드나드는 정도의 움직임?

그랬다. 많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내 집 주변과는 달리, 그 아이의 집은 비교적 한적한 곳에 떨어져있었다.
그 주변에 이웃으로 있는 집조차 존재가 미미할 정도로.

가끔 굿하는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무당집때문에, 몰려든 구경꾼으로 그 집 앞까지 북적할때 빼놓고는 언제나 조용한 집. 그 아이의 집.

우리집 앞에는 쌍둥이오빠들이 있는 내 또래의 친구가 살고 있었다.
물론 그 아이와 나는 나이는 같았지만, 그 아이가 7살에 학교에 들어간 까닭에 학년으로는 나보다 한 학년이 높았던 아이였다.

말할 수 없을 만큼 활달하고 튼튼한 아이였다. 그 아이의 쌍둥이 오빠들이 늘 그 아이의 씩씩하고 건강함을 놀려댔다. 여자답지 않은 아이라고.

그러나 오빠들과 싸우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도 울기는 커녕,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나 기어이 오빠를 골탕먹여야만 직성이 풀리던 아이.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집 아이와 그 아이는 너무도 다른 느낌을 내게 주었었다.

그 누구가 더 호감이 간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전혀 연관없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호기심 따위.

하지만 나는 대부분 쌍둥이 오빠네 그 아이와 놀았다.
내집과 가까운 이웃이었고, 우리 부모님과 친한 집의 아이였으므로.

나는 대부분 그 아이네 2층의 볕 따뜻한 곳에 앉아 있거나, 엎드려서 그 아이랑 놀았다.

나는 그 아이를 좋아하긴 했지만 놀다가 싸우게 되면 내가 늘 졌다. 내가 아끼는 고무 인형을 망가뜨려도, 내가 그린 그림에 그 아이가 함부로 낙서를 해도 나는 그 아이가 하는대로 대부분은 그대로 내버려뒀다.

그것은 내가 마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중구난방으로 화풀이를 해대는 그 아이의 돌연한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자기의 오빠들에게도 거침없이 대하는 그 아이의 모습에선 아주 낯설고 거친 느낌이 강하게 배어있었으니까.
나는 아마도 그런 느낌이 싫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아이가 하는대로 내버려두면 모든 것이 재미있고, 다양한 여러가지 놀이를 하거나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점들 때문에 그 아이와 노는 것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변화무쌍한 여러가지를 나에게 보여주는 그 아이는 어쩌면 그 당시의 나에겐 일종의 부러움이 아니었을까.
고경주라는 아이에 대한 나의 경외감.


(2-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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