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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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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BY 유금복 2000-12-27

님이시여!

또 다시 가을입니다.

뒤 돌아볼 겨를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시월의 막바지에 서서 자그마한 여유를 찾으렵니다.

숨가뿐 일상에서 벗어나 사색의 즐거움을 맛보렵니다.

어린시절 고운 단풍잎 모아 책갈피에 끼우던 그 순수로 돌아가

보렵니다.

석양무렵 산골 마을에 울려 퍼지던 교회당 종소리가 들립니다.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작은 동네가 보입니다. 키를 뒤집어 쓰고

소금을 얻으러 가는 조그마한 계집아이가 보입니다.

그 아이는 이제 그때 자기 보다도 더 큰 아들을 둔 여인이 되었지요.

20층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세상은 온통 화려합니다.

고개를 치켜세운 잘난체 하는 사람들로 꼭 차 있습니다.

저마다 즐거움을 쫓는 무리들로 가득합니다. 컴퓨터 앞에서 밤을

지새우며 쾌락을 쫓습니다. 왜 우리네들은 끝없이 달음박질만 치는

걸까요? 남보다 앞서려고 옆도 뒤도 보지 못합니다.

이제 누가 옆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겠습니다.

님이시여!

이 가을에 가슴아픈 사람들 가슴시린 사람들을 당신의 넓은 품으로

따뜻이 감싸주소서. 이 시간에도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들.

일거리가 없어 길에서 추운 밤을 맞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오는 겨울이 두렵지 않게 하소서.

움츠린 오늘 밤이 내일은 가슴펴고 살 수 있는 날 되게 하시고

사랑할 줄 알고 사랑도 베풀줄 아는 사람 되게 하소서.

당신을 아는 사람들 되게 하소서.

1998년 가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