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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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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BY 로미 2000-11-13



그와 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우리는 둘다 서로 사랑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어 말 한 적은 없지

만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모두 다 알고 있

었고,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느끼는 것 만큼

그도 느낀다고 나는 믿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였고

나는 막연히 그와 함께 할 내 미래를 떠 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

다.


입학 후 첫 겨울 방학때 나는 그를 위해 목도리를 짰다. 그는 내

가 떠 준 목도리를 겨울 내내 목에 두르고 다녔고, 그 덕분에 옥

색목도리의 왕자 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와 늘 함께 였기에 친구도 별로 없었던 나는 그가 왜 내게 사

랑한다고 말하지 않는지 늘 궁금해했다.

-나한테 뭐 할말 없어?

라고 물으면 그는 늘 엉뚱한 얼굴을 하고 내게 물었다.

-뭐? 오늘 무슨 일있어?

나는 서운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인가 술 자리에서 그가 친구에게 사랑이란 입밖으로

소리 내어서 말하는 순간 날아가 버리는 거라면서

자기는 절대로 사랑하는 여자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고 말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사랑이란 눈동자로 느끼는 거야...

나는 적어도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리라,,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

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첫눈이 내린 이학년 겨울방학의 어느 날.

그는 군대에 가게 되었다.

그의 입대를 앞두고 그 흔한 첫키스조차 나누지 못한 서러움으

로 나는 그를 기다릴 것인가 말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구

들과의 송별식을 한다고 매일 같이 술 타령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도 그는 항상 옆에 있던 내게 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나는 화가 나서 그가 입대하기 전날 저

녁 그에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내일 나 안 나갈께. 잘 다녀와라.

그는 술 오른 멍한 눈길로 나를 바라 보더니만

-그래 추운데 뭘 나오기는, 편지 쓸께.

라고 했다.

-편지 하지마, 내가 답장 쓸거 같냐? 내가 니 애인이냐?

나는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나는 의정부로 향해 떠났다.

지나간 이년의 시간이 너무나 억울하고 가슴아파서

그렇게 그를 보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그가 훈련소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그에게 대답을 들어야 했다. 사랑했느냐고, 기다려도

되겠냐고, 그렇게 꼭 그렇게 물어야 했다.

많은 인파가 몰린 의정부 훈련소앞에서 그를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멀리서도 옥색 목도리를 두른 그를 쉽게 찾아 낼 수 있었기 때문

이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놀라워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줄 알았다

는 듯이 태연히 나를 맞이 했다.

-추운데 뭣하러 나왔냐?

나는 그 말이 서운해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쌓인 눈위로 눈물 방울이 떨어져 폭폭 패이는 게 보였다. 다들

조금씩 우리 주위에서 멀찌기 떨어져 갔다.

조금씩 서럽게 흐느끼는 내게 그는 가까이 다가왔다.

-울기는 왜 울어. 잘 다녀 올께..

어깨를 토닥이며 그는 그 말만을 남기고 돌아섰다.

나는 그 소리에 더욱 울음이 치 받쳐 올라 자리에 주저 앉아 엉

엉 울기 시작했다.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던 그가 내게로 다시 돌아섰다.

-그래 너도 아마, 이런 나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겠지...

그는 주저 앉아 울고 있는 내 앞에 서서 한 참 나를 내려다 보았

다.

씩씩 거리는 듯한 소리가 이상해서 나는 올려다 보았다. 그랬더

니,험악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던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냅

다 소리를 질렀다.

- 누가 죽으러 가냐? 왜 울고 불고 그래! 뚝 그치지 못해!

물론 나는 뚝 그쳤다. 그는 내게 목도리를 풀어서 매 주고는 돌

아서서 담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어떻게 집으로 돌아 왔는지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가 언젠가는 내게 사랑하다고 말 할 날이 꼭 오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