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김영하의 글을 퍼왔습니다.
아래에 쓴 여러 관객 중 저의 시각이랑 딱 맞는 시각이 있더군요.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지요. 여러분은 어떤 시각으로 이 영화를 보셨는지요.
주유소 습격사건
관객 1 : 주유소습격사건. 왜 거 영화주간지에 영화제작 일정푠가 하는 데서 이 제목을 딱 보는 순간, 저하고 마누라는, 이야, 제목 무지하게 땡기는데, 이건 꼭 보러 가자고 말했었죠.
그리고 몇 달 후, 정말 그 영화를 봤는데요. 근데 생각했던 것 만큼 재밌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이름이 모든 걸 다 보여줘서? 그럴지도 모르죠.
영화는 말 그대로 막가는 인생들이 주유소를 습격하는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아요?
어라?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제목을 보고 영화를 보러 갔더니 주유소만 습격하고 끝이잖아?
이게 영화 종치고 난 후의 내 첫 감상이었거든요. 아, 이건 붕어빵에 붕어가 없어야한다는 이야기와는 좀 다른 얘깁니다.
안 그래요? 영화에는 제목 말고도 뭔가가 더 있어야하잖아요?
예를 들어 "설거지"라는 영화가 있다고 치죠. 근데 이 영화의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설거지를 하고 있다면 그건 좀 문제가 아닐까요?
"대부"에 대부만 나오면 그게 무슨 재민가? 대부가 되려다 총 맞아 죽은 놈, 대부한테 맞는 놈, 대부가 되기 싫은 놈. 자고 깨보니 갑자기 대부가 된 놈. 이런 놈들이 나와야하는 거 아니예요?
왜 주유소 습격사건엔 주유소 습격사건만 나오는 거야? 난 느와르가 좋은데. 이건 씨. 느와른줄 알고 봤는데 코메디잖아. 우이씨.(28세, 회사원 :東問西答)
관객 2 : 주유소 습격사건. 이거 죽여요.
전 말이죠. 길 가다가도 주유소만 보면 다 때려부수고 싶다니까요?
이유? 없어요. 사실 때려부수고 싶은 게 주유소만은 아니죠. 아 글쎄, 이유 없다니까요. 그냥 박살내고 싶다니깐요. 아 거 참, 이유 없다니까,
아 좋아요. 일단 주유소는 땅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어요. 지붕도 너무 높고. 그게 일단 기분 나쁘구요. 그리고 주유소 그 씹새끼들, 돈 많이 벌잖아요? 현찰 장사구.
에이, 아저씨. 카드도 현금이지. 은행에 매출전표만 갖다주면 바루 현금 주는데. 누가 3개월 짜리 어음 내고 기름 사는 거 봤어요?
근데 제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는데요. 거 괜히 어설프게 걔네들 과거는 영화에 왜 들어가 있는 거예요?
씨발 주유소 때려부수는 데 뭔 이유가 필요해? 뭔 과거가 필요해? 하나 같이 과거들도 우중충하구 말야.
돈 없어서 야구 못 하는 놈, 아부지가 줘패는 바람에 그림 때려친 놈, 빚쟁이 땜에 음악 못 한 놈. 머리 나빠 학주한테 줘 터진 놈. 뭐 과거라고 하나도 쌈빡한 거 없구 말야.
그럴 바엔 빼는 게 나았다구 봐요. 이건 뭐 테마게임도 아니구 말야. 뭐예요. 촌스럽게.
아니, 그리고 쌈 못하는 놈, 왕년에 천재 아니었던 놈은 주유소도 못 때려부신답니까?
난 씨발, 머리도 돌빡이고 잘 하는 것도 없지만 때려부시는 거 하나는 자신있걸랑요.
그치만 주유소 오는 새끼들은 더 기분 나빠요. 누구는 말야. 쌔빠지게 뺑이 치는데 차 샥 몰구와선, 야 만땅! 이러는 놈들 보면 아주 한 대 팍 쥐어박고 싶다니까요.
그런 거 보면 주유소 습격사건, 이 영화엔 내가 쥐어박고 싶은 놈들 다 나오잖아요.
존나 통쾌해요. 고 싸가지 없는 년들, 졸나 밥맛 없는 새끼들. 씨팔 새끼들. 아유. 팍(19세, 재수생 : 雪上加霜).
관객 3 : (모 신문 독자투고 - 실리지는 않았음) 얼마전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시내에 있는 극장을 찾게 되었다.
모처럼만의 나들이라 가족들 모두 들뜬 기분이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난 후엔 찜찜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주유소 습격사건"이란 영화였는데 극장 앞에는 십대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좀 어색하긴 했지만 요즘 인기리에 상영된다는 기사도 보았고 해서 그냥 표를 끊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곧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욕설과 반말로 일관해 기분이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영화가 버젓이 시내 중심가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영될 수 있는 걸까.
영화는 시종일관 주유소 사장과 주유소에 찾아온 손님들을 구타하고 모욕하고 경멸하는 내용 뿐이었다.
도대체 주유소 사장이 무슨 죄가 있는가? 그도 성실히 살아가는 이 대한민국의 시민이며 국가 에너지 공급의 기간망의 한 축을 당당히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또한 불우한 청소년들을 고용하여 일종의 사회안전망의 기능도 맡고 있다.
도대체 그가 그 뻬인튼지 무대뽄지 하는 놈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당해야 했는지 영화제작진들과 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주들과 문화부 관계자께 묻고 싶다.
그리고 그 재벌그룹 현대의 계열사 오일뱅크도 협찬한 모양인데 그들에게도 반성을 촉구한다. 명색이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 사업자로서 어떻게 이렇게 선량한 시민인 주유소 사장들을 모욕하는 영화에 돈을 댈 수가 있나.
관계당국의 적절한 조치를 바란다. (46세, 주유소 경영 : 悲憤慷慨)
관객 4 : 뻬인트 누구예요? 캡빵으루 멋있어요. 그 오빠 말이 맞아요. 어려운 말 하는 새끼들 다 죽여버려야해요(17세. 여고생 : 一波萬波)
관객 5 : 이거 영화 같지 않고 만화 같애요. 네 저 만화 매니아예요.
만화 안 보세요? 이건 설정 자체가 만화라구요. 일테면 이런 식이잖아요.
음악 무쟈게 잘하는 애 하나, 그림 천재, 좌절한 야구선수, 졸라 무식한 놈, 그런데 얘네들이 다 쌈에는 짱이예요.
왜냐구요? 에이 그래야 재밌잖아요.
그리고 얘네들 알고 보면 다 슬픈 과거가 있다구요. 왜냐구요? 아이씨, 질문 되게 많네.
만화는 무조건 그래야돼요. 울고 웃기고 그래야된다니깐요. 추천요? "오디션" 보세요. "오디션"도 그래요. 음감 천재, 춤의 귀재, 등등등. 근데 다 잘생겼어요.
왜 잘생겼냐구요? 이 아저씨, 증말 질문 많다.
못 생긴 애들 나오면 누가 봐요 만화를. 아저씨, 만화는 그냥 만화예요. 현실이랑 똑같음 누가 만화 봐요. 이 영화요? 만화가 더 나요.
아웅. "반항하지 마"나 보러가야쥐. 영길선생 기다려(22세, 대학생 : 漫畵第一)
관객 6 : 주유소 습격사건 - 주유소라는 설정부터가 의미심장합니다.
주유소가 뭡니까? 기름을 넣는 곳이죠.
기름은 뭡니까? 20세기 자본주의의 혈액이죠. 자동차와 기차를 굴리고 비행기를 날리고 전기를 만들죠.
그 전기가 불을 밝히고 전자렌지 안의 생선을 굽고 게임방의 테란과 저그와 프로토스들을 움직이고 DDR의 음악을 내보내죠.
다시 말해 기름은 현대 문명 그 자체라는 거죠. 현대가 곧 기름이고 기름이 곧 현대죠(현대그룹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유소가 상징하는 건 세기말의 한국사회 더 나아가 자본주의문명입니다.
이걸 습격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명비판이 수행되는 겁니다.
저는 대학교 때 이미 동지들과 함께 서울의 주유소 지도를 작성했었습니다.
왜냐구요? 혁명의 그날이 오면 주유소를 습격해서 기름을 탈취, 그리하여 전국적인 무장봉기로 발전시키려고 그랬죠.
아,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어쨌든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주유소를 습격하는 영화가 나왔다는 건 주목할만한 일입니다.
혁명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레닌이요? 아니, 이건 제 말입니다.
아마 21세기의 혁명은 지각되지 않은 대중, 새로운 전위, 즉 날나리들로부터 시작될 거라는 게 제 예측입니다.
이들은 끊임없는 사보타쥬로 학교를 교란하고 사회의 기능을 마비시키며 종국엔 주유소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연결고리에 비수를 꽂을 겁니다.
벌써 학교 붕괴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지 않습니까? 이거 저는 이미 90년대 초반에 예언했던 겁니다.
이제 직장 붕괴도 멀잖았습니다.
아, 혁명의 그날이 가까웠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오, 주여(33세, 무직: 首邱初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