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친구 J 에게서 오랜만에 메일이 왔다. 미시간에서 플로
리다로 이사간 후에 한동안 연락이 뜸하더니...긴 편지가 온 것
이다...
98년 봄......사람들이 인터넷이란 것에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
작했던 그 무렵.....두달 코스로 인터넷을 배우고자 학원에 등
록을 하고...검색부터 Homepage 만드는 것까지....인터넷이라
는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은 봉급생활에 대한 회의와 어느정도
안정된 결혼생활에서 오는 일상의 권태로움에서...가히 충격...
그 자체였던 것 같다...회사관련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결
국 Homepage 제작과정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끝났지만...그래
도 나에게 새로운 기쁨을 안겨준 것은 e-mail 보내기였다...2년
전이기도하지만..내주위엔 e-mail 주소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
어서...나는 컴퓨터를 켜면 펜팔란을 주로 기웃거렸다. e-mail
친구를 만들려고.....
"2살된 한국 남자아이를 입양하여 기르고 있는 미국여성입니
다.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습니다. 알려주실분은 연락바랍니
다. "
이런 정도의 짧은 글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이 글을 보고...간
단한 내소개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무역회사 수준의 짧은
영어만 구사하던 나에게 매일매일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에 버
금갈 정도로 영어편지 쓰기에 열중하게 만들었고...우리는 마
치 연애라도 하는 기분으로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는 시간들을
가졌다...1살된 한국 여자아이를 더 입양하기 위하여 그해 6월
말 J는 그의 어머니와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땅을 밟았고...가상
의 인물인 것 같이 느껴졌던....J와의 첫만남...그녀는 마음만
큼 외모도 아름다운...금발의 멋진 여성이었다...민속촌도 가
고...시부모님을 포함한 우리가족과의 만남..또 친정어머니집
방문...인사동 전통찻집에서 오미자차를 마시며...함께 나
눈 시간들......지금도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J가 한국을 떠나는 날...입양되는 아기를 보기위해 나도 J가
아기를 만나는 장소로 갔다...그 아기의 실제 부모는 둘다 16살
이라는 얘기를 들었고,마흔 정도밖에 안되신 그 아기의 외할머
니는 아기와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아기의 발을 잡고 엉엉 우셨
다면서....J는 아기를 입양해가는 것이 마치 죄스럽기라도 한듯
이....울면서 내품에 안겼고 우린 함께 뜨거운 눈물을 쏟았
다...
그후 J는 그 아기의 돌잔치를 한국식으로 해주기 위해...나에
게 많은 질문이 섞인 편지를 보냈고...떡과 수정과를 준비하느
라 몇시간씩 차를 타고 먼곳으로 장을 보러가기도 했다. 지금
은 다정한 오누이가 된 그 아이들....J는 그 아이들을 잘 키우
기 위해서 본인의 아기는 낳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나는 J가 사랑으로 그 아이들을 키우며 아주 작은 사소한 아이
들과의 경험에도 감탄과 기쁨이 가득한 편지들을 보내오는 것
을 읽으며....그 아이들을 낳았던 부모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
고 있을까 가끔 생각한다...그리고...축복받지 못할 탄생이
란 있어서는 안된다고................고작 그 아이들의 이모
가 되겠다는 최소한의 약속밖에 못한 부끄러운 한국인으
로................
J 는 인터넷이 나에게 처음으로 준 커다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