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과 그 부모를 대상으로 일종의 심리치료를 해주는 일을 1년정도 한 적이 있다-정확히 얘기하면 일종의 두뇌개발 프로그램이었는데 뇌개발과 더불어 심성교육, 인성교육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심리치료라 해서 그들이 특별히 문제가 있었던 가정들은 아니었고 어떤 가정은 겉으로 보아 단란해보이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스스로 평온할 정도의 완전한 성인이 되지 못한 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는 것으로 보아 어느 가정인들 문제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가장 두렵고도 섬칫한 일은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처음에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거나 혹은 아이들에 대한 교육적인 열성이 대단한 가정의 아이들을 지도하게 되는데 점점 아이의 문제를 통해 부모의 문제가 뚜렷해지고 부모를 직접 만나 경험하게 되면 그것이 확실해진다.
슬픈 것은 부모들이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공감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차단시키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남매를 맡게 되었는데 둘 다 굉장히 신경질적이고 거칠었다. 원래 아이들은 곧잘 웃는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이렇게 잘 웃지 않고 신경질적이며 난폭한 것이 내게는 충격이며 슬픔이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아버지를 뵌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아이들에게 웃음이 인색하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얘기하거나 꾸중하기보다 거칠고 단도직입적으로 꾸중하고 명령하는 모습을 자꾸 보게 되었다.
한 아이는 두통이 심해 내게로 오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가정상의 불화로 아이에게 지속적인 손찌검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주 심각한 정도도 아니었고 그 어머니가 겉으로 보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로 인해 심한 계속적인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자기가 무조건 잘못했고 자기가 너무 못났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착한 아이들이 오히려 내면에 분노를 삭이며 감정을 쌓는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긍정의식이나 자신감을 많이 잃는다. 두통도 그에 의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물론 미안해하고 속상해했지만 그렇다고 그 일을 아이만큼 심각하게 생각해 주지 않았다. 아이의 감정을 생각해 주기엔 어머니 자신의 불행이 너무 컸던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대부분 아버지보다 어머니와 접하게 되므로-가 아이의 어둡고 슬픈 얼굴을 인정해 주지 않을 때이다. 그러면서 집중력이나 이런 것들에 오히려 중점을 두고 아이들에게 여유를 주고 웃음을 주는, 아이가 자신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인성, 심성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나는 울고 싶다. 아이를 대신해서.... 아이와 함께...그리고 그 부모를 위해서...
아이들은 그 가정의, 그 부부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엄청나고 두려운 사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부부는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