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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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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BY 김명옥 2000-04-23

산불이 났던 날,
새벽 여명속으로 불꽃은 남실대며 타 올랐지.
우리들은 불안함으로 웅성거리며 아파트 옥상을 오가야 했지.
아주 가까이 이렇게 우리 가까이 불이 달려들줄은 몰랐지.
그저 텔레비젼 속 뉴스로 먼 나라 얘기처럼 아득해 하며 듣고 했지. 시뻘건 혀를 날름대며 온 도시를 삼켜 버리고 말것 같은 불은 정말 현실이었지. 신이 저주를 내리는 것 같앴어. 그 막막한
두려움... . 아침이 밝아오면서 다행히 도시로 내려오던 산불은
잡혔지. 우린 안도의 숨을 쉬었지. 이렇게 우린 모면했지만 그
불이 모든것들을 앗아가버린 사람들이 있었어. 그들의 아우성을
듣고 있는 것만 같아.
남편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만 챙겨 보라고 했을때 나는 아무것도 챙길 수가 없어 망연히 서 있었지.
무엇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일까?
한 참을 생각해도 어느것이라 단언 할 수 없더라.
모든것이 다 나는 버릴 수가 없었던거야. 며칠전에 산 새 침대보랑, 아이가 즐겨 입는 멜빵 바지랑, 사진첩, 아이가 쓴 일기장이랑... .
그 모든것들이 순식간에 눈물나게 소중해 지는거야.
모두 나를 향해 데려가 달라는듯 손을 내미는 것 같았어.
알게 모르게 정들었던 생활 속 작은 것들마저 이렇게 간절하게 다가올 줄은 정말 몰랐지.
삶을 이루는 그 모든것이 다 가슴저리는 거였지.
그걸 예전엔 몰랐지.
사람들의 아픔이 내게로 전해지더라. 아주 가깝게 말이야.
내가 이렇게 아픈데 그들은 어떨까 싶어.
타인들의 고통은 결국 그들만의 몫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들 모두 조금씩 나눠 가져야 하지 않을까?
4월이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그러나 잘라도 잘라도 죽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4월은 강한 생명력을 가진 달인거 같아.
불이 새카맣게 휩쓸고 간 자리에 파란 새순이 금새 돋아 난걸
난 보았어. 아, 거룩한 생명의 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