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초로의 아빠가 계신다.
굽은 등으로 자전거를 타시고 한 다리를 절뚝이시며 논길을 걸으신다. 마당 한켠에 자리한 꽃밭에 앵두를 심어 점점 익어올 즈음이면 내게 전화하신다. "일주일만 있으면 앵두가 익응께 먹으러와라잉" 내가 오지 않으면 그 빠알간 앵두를 따서 냉장고의 신선실에 넣어두신다. 그래도 안오면 술을 담그신다.
뒤곁 장독대 옆에 무화과 나무 두그루가 크게 버티고 서있다. 무화과가 익어갈 즈음 내게 전화하신다. "삼일만 있으면 무화과가 확 벌어징께 와서 먹어라잉" 그러시며 익으면 바구니가득 따 놓으신다. 내게 안오면 뒷집 아줌마가 잼 만든다고 가져가신다. 그래서 그 아줌마는 해마다 무화과 잼을 만든다. 어쩌다 내가 익을 때쯤 가면 아버지는 바구니를 들고 앵두며 무화과며 따시느라 분주하다. 그런 아버지곁에서 난 나무에서 직접 따 먹고 있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타의반 자의반 상고로 진학해서 자격증학원이다 진학공부한다 하며 늦게 집에 다녔다. 버스가 8시 30분이면 막차가 가버리니까 공부하다 부랴 부랴 버스를 타고 우리 동네 입구에 내리면 어김없이 아버지가 나와 계셨다. 손전등과 자전거를 가지고. 우리 동네는 버스에서 내려서 산길을 따라 약 20분 정도를 걸어가야했고 우리집은 더 가야했다. 그 길을 비가 오면 우산이 내게 있는데도 비옷을 가지고 나오셨고, 눈이 오면 두꺼운 외투를 입었는데도 당신의 큰 외투를 가지고 나오셨다. 행여 당신이 안계신 날은 엄마와 남동생에 나가라고 하셨다. 그러길 3년! 난 진학공부를 하다 포기하고 3학년 말쯤 집과 가까운곳에 취업하고 집에서 다녔다. 그러다가 졸업하고 5개월 뒤 읍보다는 큰 도시인 직할시로(그 당시는 직할시였음)가게 되었다. 후에 엄마한테 들었다. 나를 도시로 보내고 아버지는 한동안 잠을 못이루셨다고. 그후로도 난 도시에 형제들이 있어 집에는 한번씩, 가끔 한번씩 내려갔다. 별루 보고싶지도 않았다. 약 한시간 반 거리인 우리집인데도말이다. 그러나 어느때인가 나이를 먹고 결혼하고 가끔 집에 갈때마다 느꼈다. 아버지는 등이 더 굽어가고 원래 말수가 없으셨는데 더욱 없어지고 들일 하시다가 잠시 쉴때면 한없이 먼곳만 응시하고 자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하고 여행가기를 좋아하신다. 이제라도 좋은 곳 가보고 싶은 모양이다. 내 시부모는 해외여행을 시켜드렸지만 내 친정부모는 해드리지 못했다. 시부모님 해외여행 준비하면서 한쪽 가슴이 콱 막혔지만.... 작년 가을쯤 이었을 것이다. 엄마 아버지랑 나와 내아이랑 넷이서 시골 어느 은행에서 일보고 아이와 나는 광주로, 엄마 아버지는 집으로 가야되는데 광주 표를 끊어주신다고 뒤돌아서 가실때 난 그때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가 하얗게 새고 등이 굽은 노인이 시집간 딸의 차표를 끊어주시려고 빠른 걸음으로 가시는 모습! 울컥 눈두덩이에 물이 가득 차듯 눈물로 부은 것을 느꼈다. 눈이 안보이게 웃으시며 아버지는 차표와 엄마는 과자와 음료수를 사가지고 내게 건네주셨다. 작년부터일 것이다. 난 엄마 아버지만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난다. 자식들에게 모든 걸 줘버리고 남은 거라고는 샌 머리와 거죽의 주름살과 희미한 두눈밖에....
늘 마음뿐인 이 막내딸은 전화해서 괜히 짜증만 낸다. 일 고만하라고, 이제 편히 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