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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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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얼굴!


BY 남상순 2000-04-03

☞ 내 얼굴!


내 얼굴



내겐 얼굴에 관한 슬픈기억이 있다. 충격을 받은 것은 5세경으로 기
억된다. 결혼식에 화동을 세울 때였다. 친척 중 한사람의 말 한마디
가 내게는 비수처럼 꽂혀 일생깊은 상처가 되었다. "이 아이는 너무
예쁜데, 이 아이는 너무나 못생겼다"라는 말이었다. 예쁜아이는 안아
주고 꽃바구니도 만져주었다. 하지만 나는 무관심속에 던져진 채 따
돌림을 당해야 했다. 그 때 내 일생 최초로 '나는 못생겼구나' 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못생긴 것은 무시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는 것도 배웠다. 일생동안 나는 얼굴을 평가받는 자리에서는 남모르
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고, 못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억울한 대접인지
를 절감했다. 내가 내 얼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
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 때부터 나는 얼굴이 못생긴 것을 보완하기
위한 처절한 내면의 투쟁을 치르며 자라왔다. 보상받을 길이 없는 심
한 열등감으로 가슴앓이를 경험해야만 했다.

얼마전 오랜만에 남자동창들과 함께 만났다. 어떤 친구가 "많이 쪼
그라졌군! 남편이 잘 못해준 모양이야!"라고 했다. 남편과 나는 캠퍼
스 커풀인지라 남편 동창들이 내 동창생들이기도 해서 농담을 편하게
한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는 애정표현인줄을 알면서도 나는 과민
반응을 했다. "무슨 인사가 그래요? 나 쪼그라지는데 보태준거 있수
?" 정색을 하며 댓구를 하자, 그는 너무나 무안해 했고, 남편은 인색
한 내 인품을 아쉬워했다. 이 부분에 아직도 예민한 것을 보면 이 나
이가 되어도 열등감이 해결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런 나 자신이 섬칫
부끄러웠다. 나는 화장하는 것 마져도 거추장스럽고 귀찮케 생각한
다.속칭 아이들 말로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될리가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못생긴 얼굴을 자인하면서 좀더 낫게 보이려는 시도가 무의
미하고 자존심까지 상하는 거다. 화장하는 것으로 못생긴 것이 보상
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화장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화장 안하고 사람을 만나는 경우, 어디 아픈가
? 반드시 확인을 받게 되는 것이 미안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염려
를 끼칠까봐 화장을 한다. 화장발이나 조명발로 사람가치를 높여보고
싶은 의도가 내겐 처음부터 없다. 못생긴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인품
에 구김살을 준다는 것은 피치못할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반드시 약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잘생겨서 쓸데없이 질투를
받거나 적대감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잘생긴 사람이 주는 향그러움
이야 있겠는가만, 쓸데없이 타인을 긴장시킬 필요는 없다. 지금도
여전히 내 얼굴에 대해 불만은 있지만, 내면세계를 위한 자기투쟁의
대가를 얻게된 것에 감사하기도 한다. 약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보상
될 때 묘한 쾌감마져 느끼기도 한다. 못생긴 사람의 장점은 만날수
록 정이든다는 점이다. 처음에 실망을 해버리는지라 만날수록 장점이
부각된다. 얼굴에 눈, 코, 입, 귀가 붙어있다. 눈, 코. 귀는 자의로
어쩔수가 없지만 그중에 입만은 내 자유로 조절할 수 있다. 얼굴 중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입 뿐이다. 말 잘하는 강점을 드러내고, 바
른말 고운말을 위해 남모르게 애써왔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입의
기능을 강화시킨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내 얼굴을 내가 볼 수 없으
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내 얼굴이 입증될 뿐이다. 누군가와 맞대
어야 비로소 내 얼굴이 알려진다. 나는 어쩌면 타인에게 인정받을만
한 얼굴이 되기위해 무던히도 분투했다. 대인공포 때문에 어릴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얼굴이 되기위해 공부 잘하
는 아이가 될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요소들이 상승작용을 해서 원
치않는 리더쉽을 발휘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앞에 서야하는 위치에
서기도 하였다.

나는 종종 '사람은 얼굴 뜯어 먹고 산다'는 말을 들었다. 이는 얼굴
이 잘 생겨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얼굴에 그 사람의 팔자가 그려
있다는 말도 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 운명이 나쁘게 풀릴
것이라는 불행한 예감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못생겼으므로 팔자도
사나울것이라는 자기암시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대해 불신
한다. 나는 지금 세칭 행복한 사람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못생긴 내
가 어떻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행복이야 내면의 만족을 포
함하므로 외적인 요소로 간단히 말할 것은 아니지만, 나야말로 팔자
좋은 여자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남편이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모
범 가장에다가, 아들 딸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류대학을 나와 제 앞
가림 하고, 먹고 사는데 걱정없고, 사회적 지위도 적당해서 남의 존
경을 받는 위치에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행복하다고 스스로의
삶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못생긴 얼굴치곤 정말 신기한 일
이 아닌가?

때로 나는 얼굴을 보고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위치에 있을 때가 있
다. 남편은 직원울 채용하려고 인터뷰할 때 나를 꼭 심사관으로 참석
시킨다. 나는 예외없이 타고난 인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의 향기에 예민하다. 얼굴에 인품이 배여 나타난다. 행복해 보이
는 사람, 감사하며 살아온 사람, 자신의 컴플렉스를 극복한 사람등
나나름대로 평가하여 남편에게 조언하면 아주 좋은 내조가 되어왔다.
그리고는 어느샌가 내 주변엔 결점을 잘 극복한 사랑스런 얼굴들, 자
신감으로 벅찬 얼굴들, 감사로 운명을 다듬어온 얼굴들, 잘생기고도
겸손한 얼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에게 나는 희망을 주는 얼굴이라
고 자부하면서 오늘도 못생긴 얼굴 때문에 아팠던 상처를 싸매고 있
다.

얼굴은 인품의 표현이요. 마음의 그림이다. 그의 삶의 역사가 기록
된 모습이다. 변화시킬 수 없는 얼굴에 대해 속히 받아들이고, 변화
시킬 수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국의 문명비평가 웰즈는 링컨을 가리켜 '문명의 6대 불멸의 인물
중의 한사람'이라고 했다. 링컨이 얼굴을 성형수술했다면 어떻게 되
었을까? 악전고투 끝에 만들어진 그의 얼굴이 못생긴 나 같은 사람에
겐 희망이 된다. 내 얼굴도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만 있다
면 얼마나 좋을까? 거울속에 비쳐진 초로의 주름진 내 얼굴이 오늘따
라 정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