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하여 음악이 나옵니다. 천천히 감상하세요>
짝사랑! 그 모진 형벌!
요즘 나는 그 옛날 4살에 어미잃은 손녀딸을 키워내신 나의할머니에 대한 짝사랑의 형벌을 받고 있답니다. 25년만에 손녀딸이 태어나 온 집안이 새날이 되었지만, 나를 가슴속으로 울게해버린 아름다운 초상! 나의 할머니! 내 심장의 고동을 들으며 새근거리는 이현이! 나는 내 할머니의 자장가를 살려내었습니다.
늘 웃기만하셨던 할머니! 그리곤 반찬내음 후지근한 앞치마에서 보물처럼 내어밀던 삼치한토막! 그것도 하얀살만 골라 먹는다고 얼굴하얀 삼치장사에게 시집보낸다고 하셨다는데...그 때 할머니께선 온양온천 철도오텔 주방장으로 이승만박사께 탕평채를 맛있게 해드려서 악수한 손이라고 오른 손을 자랑하셨습니다. 김구선생님 밥숫가락이 소담하셨다고 그려내시곤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종종 할아버지께 몹시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랫집 심씨네 마실을 자주 가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역맛살이 낀 바람둥이라서 남의 집을 좋아하시는 끼 많은 여인인 줄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는데...? 궁금한걸 참지 못하는 내게 고모님이 알려주셨습니다. 삶이 고달픈데 며느리들 앞에 낮잠을 주무실 수 없어 심씨네 가서 한모퉁이에 주무시고 오신다고 들었을 때 나는 흥건히 고이는 눈가를 훔쳐내었습니다. 그 흔해빠진 민화투 한번 못하셨다고 하시더군요.
철없는 어린시절 군건질이 너무 하고싶은데 대책이 없었고, 마냥 할머니만 졸라대자 할머니는 견디다 못해 \\'할미팔아 사먹어라!\\'하셨습니다. 결국 동네 어구까지 할머니를 잡아댕겨 끌고 가서는 \\'우리할머니 사가요!\\'를 외치고 말았습니다. 이런 불효가 어디있었겠습니까? 할머니는 \\"에구 창피하다!\\" 하시곤 줄행랑을 치셨고 나는 해가 지도록 앙앙 거리고 울었었죠. 지금 할미가 된 내게 아직도 할미 팔아먹던 손녀! 라는 부끄런 애칭이 남아 있습니다. 전쟁후 정말 메삭 캐먹고 싱아 뜯어먹고 사금파리로 황토흙김치 담가 소꼽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할머니의 약손이 그리운 어젯밤에...나는 이현이의 엉덩이 마싸지를 해주었죠. 할머니의 노래곡조로 <할매손은 약손!먹고 싶어 먹었다. 쓱쓱 내려가라~>하면서...그리고는 간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이현이가 똑 떨어지게 <할매>라고 내 이름을 두번이나 불러주더군요.
짝사랑! 그거 참 좋은 겁니다. 짝사랑의 행복을 뉘라서 알겠습니까? 넘칠세라 솟아나는 말못할 응어리진 가슴에 혼자서도 마냥 설레이는 행복입니다. 둘이라면 부서질듯한 이 행복을... 마주치면 불타버릴 이 아까운 나만의 행복을... 엄마들 그리고 할매들 아니 여인들은 짝사랑에 오늘도 마냥 부푼 청춘이란걸 뉘라서 알겠습니까?
할머니가 그리운 이현이 할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