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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은...(아줌마에서 할머니로)


BY 남상순 2000-03-21


늙은이! 늙는다는 것!


늙음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세가지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첫째는 뜻을 두고 다 이루지 못하는 늙음이며,
둘째는 젊음을 즐기지 못하고 늙는 늙음의 서러움이고,
셋째는 죽음에의 공포일 것 같다.

실은 늙음이나 늙인이가 되는 것 자체가 두렵다기 보다는 늙
어감에 따라 일어나는 불유쾌한 특징들이 두렵다. 자기번민이
나, 불평, 쓸모 없어지는 것. 유치한 관심, 과거의 집착,등이
나를 오싹하게 만든다. 이른바 노추가 두렵다.

늙음이란 아주 젊을 때부터 시작해서 각 기관과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예외는 없다. 젊음과 함께있던 늙음인 것이다.
그것을 이겨보려는 것은 헛수고다.

15-6세기에 유롭에서 젊은 육체를 숭상할 때 '청춘의 샘'에 들
어가면 노인도 젊은이로 재생된다던 것도 몽상일 뿐이다.

선조 때 한음 이덕형이 당시 예조판서인 이호민을 찾아갔더니
"자 이 놈을 사형에 처한다" 하면서 거울을 보고 족집개로 흰
머리칼을 뽑고 있었다. "나이도 많고 큰 벼슬도 한 어른이 무
에 아쉬워 흰 머리칼을 뽑고 그리시오?" 물었다. 이호민은 껄
껄 웃으면서 "殺人者死라 하지 않았소? 용서할 수 없죠! 이 백
발이란 놈은 말입니다. 그동안 사람을 얼마나 많이 죽였소? 내
가 부득불 사형에 처할 수 밖에요" 라고 했다. 이덕형도 웃으
며 "그렇지요 백발을 이긴 장수가 없지요! 백발은 사형받아 마
땅하지요!" 했단다.

피할 수 없는 늙음이다. 하지만 늙어간다고 흥분할 필요는 없
다. 꽃잎이 떨어진다고 장미포기는 울부짖지 않는 법이다. 늙
음은 필요 이상으로 신속히 닥아오지만.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
이 늙음이요 죽음이다. 아기로 태어날 때 이미 상속받아서, 그
동안 잊고 살다가 백발 한가닥이 표연히 머리에 내려 앉으면
그제야 늙음을 느끼게 된다.

기왕지사 늙음이라면 늙음의 환희는 무엇일까?

베이컨(Bacom)은 '고목은 불 때기에 좋고, 오래묵은 술이 마시
기에 좋고, 오랜 친구는 믿을 수 있고, 노련한 작가는 읽을 만
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오래되고 낡아진 것이 좋다는 말이 아
니라, 오랜 시간을 시련과 곤고에서 이겨나서 숙달되고 노련해
진 것이 아름답다는 말일 것이다.

늙으면 사상은 더욱 명석해지고, 뿌린씨의 열매를 맺는 것을
보는 시기이다. 태양이 서산에 기울어지면 찬란한 밤, 빛의
나라로 초청되어 영광을 보게된다. 청년시절에 고학을 하고,
중년시절엔 고투하고, 노년시절에 감사의 수확을 즐길 수 있
다.

'神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최선의 것을 최후에 주신다'고 內村
鑑三은 말했다. 예술의 천재는 있어도 인생의 천재는 없는 법
이란 말이 기억난다.

고향 선산 어머니 무덤가에 느티나묵 고목이 있다. 구부러진
가는 가지마다 비바람에 휘갈김을 견디어 내고 많은 찬 서리에
굵어진 가지들이 울퉁불퉁한 가죽과 같은 껍데기로서 씌워지고
거칠고 딱딱한 껍데기들을 보았다. 괴로움과 슬픔의 정이 솟구
쳐 나와서 말라붙은 흔적이나 험루가 아닐까? 늙은 나무를 하
늘 높이 쳐다보며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본 적이 있다.

늙으면서 성숙해 지는 도리는 없을까? 늙음을 즐기면서 살수는
없을까? 성경은 말한다.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
로 새롭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