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일거리가 늘고 직원도 늘어나면서 업무는 산더미가 되어, 때때로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그때마다 너나없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몸이 힘든건 하나도 불쾌한게 아니었다. 노동의 맛있는
댓가를 즐길줄 알았고 그에 따른 찬사도 누릴만큼 누렸으니까.
남편과의 일은 힘들었지만 어쨌든 매일 출근을 했고 사무실에서는 티내지 못한채 언제나 묵묵히
그의 뜻을 따랐다.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몸과 마음은 지쳐갔지만 일을 안하고
하루를 넘길수는 없었다. 고객을 관리하고 제품을 상담하고 전시로 매출을 올리고 기사를 쓰고
새로운 아이템으로 신상품을 탄생시켰다.
서로의 일이 바빴지만 성실한 직원의 능력을 따를 수는 없었다. 내 자리의 위협을 느꼈다. 직원에게
밀리는 기분이 이런거였나.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일에만 전념한다면 나도 잘 할수 있다고 내 역할이 너무 분산되고
가중된 책임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남편은 정체되고 발전없는 나에게 수시로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나는 몇해전 총탄을 받을때의 기억으로 돌아가 비수를 꽂아대는 남편을 원망했다.
일처리가 빠른 성실한 직원에게 일이 몰리고 나는 그것을 경계했다. 남편의 신의가 한명의 직원에게
점점 기울었지만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직원은 잘 수행했다.
겉도는 느낌.
아니 정확히 내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둘만의 공간이었을때 받았던 모욕감은 직원앞에선
배가 되었다. 면박을 주는 거침없는 행동에 견딜수가 없었고 무시당하고 소외당하자 배신감과
억울함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회사가 작을땐 불도저처럼 겁 없이 밀어 붙였지만 직원도 생기고
일이 많아지니 슬슬 뒤로 빠지며 내 역량을 키우지 못했다. 남편 옆이라 방심한 내 부족함이었다.
어쩌면 직원을 방패삼아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눈치챈 듯 남편은 출퇴근길 차안에서 애사심이니, 열정이니 훈계했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니 속이 울렁거렸고 그의 말을 듣기 싫을때면 연결되지 않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안해도 될 말까지 알뜰하게 뱉어버리고 최선을 다한양 나의 반응을 살피는, 그 옆에 있다는건
정말이지 힘들고 고단한 일이었다. 직장 상사라면 퇴근 후 볼일 없겠지만 집에와서까지 남편을
봐야하는 나의 하루는 참으로 길고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