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이후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트라우마 상태에 빠져버린 듯 하다.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울컥 치솟거나 멍하게 앉아있기,아니면 맥없이 잠만 자거나
하기가 일쑤이다. 심한 경우는 악몽을 꾸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나도 얼마전에 희한한 꿈을 꾸었다. 꿈의 앞 부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마지막 부분만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꿈의 내용은 삿갓을 쓴 남정네들이 무리를 지어 행군해 오는 모습이었는데 마치 화산석으로 만들어진 듯한 석조인간들이었다. 유령들이 떼지어 오는 모습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기이한 꿈이어서 세월호 사건을 상징하는 꿈은 아닐까 싶었다. 배가 뒤집힌 사고를 접하고 나서 앓아눕다시피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날이 많아졌다. 마음이 허둥거리고 일손을 놓고 있기가 태반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마음앓이들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뉴스를 볼 적마다 수시로 울었다고 했다. 밥을 먹을 때도 "내 자식 죽은 게 아니라고 목구멍으로 밥알은 넘기고 있네"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트라우마 상태에 빠진 건 다들 '내 자식, 내가 당한 것 같아서.."
그런 마음들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처참한 '지옥도'를 현실에서 보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정신과 의사도 있었다. 구조된 아이들 시신의 손톱이 빠지고 손가락이 골절됐다는 기사내용 배가 물에 잠길 때 창문 유리를 깨려고 몸부림을 치고 창에 기대어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모습도
있었다는데..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배 벽을 긁어대며 사투를 벌였을 아이의 모습에 엄마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이미 침몰한 뱃 속에서 구조되길 기다리며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는 아이, 선실에 반쯤 남아 있었다는 아기의 젖병, 그 어린 아기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부모와 형제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어린아이들.. 살릴 수 있었던 수 많은 생명이 그대로 생매장 되었다. 이 같은 참혹한 지옥을 한달이 넘도록 떠올리고,보고 있어야 하니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아니라 아직도 외상이 진행중이라는 얘기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상상 이상으로 후유증을 남긴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충격으로 가정이 깨지거나, 암 등 온갖 질병의 발병, 알코올 중독같은 경우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단다. 생존자들 역시 천형같은 삶을 살게 된다는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다. 죽음에 대한 생생한 실감은 어떤 경험보다 강렬해서 그 기억은 일생동안 집요하게 따라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치유되지 않으면 그 기억에서 도망치려고 사투를 벌이거나, 죽은 이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일생이 다 소모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유가족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동참해 줘야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었던 피해를 유가족들이 대신해서 겪고 있지 않은가. 진도 현장을 찾은 대통령에게 어느 피해학생의 어머니가 울부짖는 장면이 있었다. "대통령님 여기 죽어간 내 자식들은 대통령님의 자식이기도 합니다" 과연 대통령은 죽어간 어린 학생들을 그 엄마의 말처럼 '자식들'이라고 마음에 품었을까? 자식같은 그 많은 아이들의 죽음을 목도했으면서도 분향소든 유가족과 면담하는 자리였든,그 어디에서도 눈물의 흔적조차 내비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냉정해
보일만큼 담담한 모습에 보통사람의 눈물이나 슬픔을 함께 할 수 있는 대통령일까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어려운 형편에 그 흔한 브랜드 운동화 하나 사 신기지 못해서 시신의 특징을 알 수 없어 내 자식인지 알아볼 수 없다는
엄마들.. 그 가난한 엄마의 미어지는 가슴에 자식을 가진 엄마들 모두 같이
흐느끼고 있는데 말이다. 그동안 세상에 대고 목청깨나 높여왔던 무리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막말 시리즈로 유가족 가슴에 또 다시 난도질을 해대는 인간 부류들은 어떤 이들인가 배가 뒤집혀 삼백명씩이나 생으로 떼죽음을 당해도 보통사람들의 슬픔과 그들의 슬픔에는 가 닿을 수 없는 깊은 강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을 믿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 번 사고에서 여실히 보았지 않았는가. 그 누구도 우리의 아이들을 지켜주지 않은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윗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 이 나라에 더 이상 세금내고 살 수 없어 이민을 가겠다는 유가족들이 있었다. 이민을 간다고 그 곳에서 마음이 치유되고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선진국에서는 한 번도 일어나기 힘든 대형 사고들을 우리는 셀 수 없을만큼 겪고 있다. 해외에 사는 지인은 도대체 조그만 땅덩이에서 무슨 그리 큰 사고가 잊기도 전에 뻔질 터지느냐고 한다. 사고만 터지면 '총체적인 부실'이라고 떠들어 댄다. 그러고는 사건의 진상 규명은 희미해지고 시간을 끌면서 두리뭉실 넘어간다. 그렇겠다..너무 썩어서 통째로 내다 버려야 할 판이니.. 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가장 썩은 부위부터 도려내고 책임을 져야 하는데 가장 죄질이 약한 꼬리만 잘라내고는 덮어버린다. 그러면서 썩은 냄새가 지구 반대편 세상까지 진동시키는 건 모르는 모양이다. "한국 사람들은 영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거듭나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말씀이란다. 부끄럽고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이 마비된 나라.. 보통 사람도 부끄럽다. '윗선'이나 정치인들이야말로 해외에 나가서 정녕 부끄럽기는 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총체적 부실을 더욱 포장해 준 것은 국민의 충복이 되어 주어야 마땅할 공영방송과 언론이었다. 난 한달 내내 티브이는 손석희 뉴스에 채널을 고정시켜 놓았으며 그 외에 국민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몇몇
인터넷방송과 사실보도를 하는 언론들만 보았다. 그나마 이들 방송이 있어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게 천만 다행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바르게 전달해 주지 않는 공영방송과 언론.. 국민의 손과 발이 되어 사회 구석구석을 제대로 조명해 줘야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인데 그들은 대체 누구의 편에 서서 방패역할을 하고 있는가.. 피해자들 구조상황 보도에 대한 과장이 도를 지나쳤던 연합**의 기자 하나는 자신의 트윗에 이런
글을 남겼다가 지워버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사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따까리이고 사장은 대통령의 따까리..당신들도 연합**에 들어오면 그럴거면서..."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이번 사고를 통해 언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많은 국민들이 진실을 알았으면 한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나치 정권에서 유명한 앞잡이 선동꾼이었던 괴벨스가 한
말이라는 것쯤은 '기레기' 취급을 받는 이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글 한줄의 진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 쓰레기 기사를 남발하는 언론이 더 혐오스럽다. 보통사람인 국민들은 왜 유가족들과 같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가? 우리도 당할 수 있었던, 억울한 생떼죽음을 당해도 보통사람은 더 이상 믿을 곳이 없고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서일
것이다. 이제 보통 사람들은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보통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우리의 둥지를 지켜내는 수밖에 없다. 정치는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며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우리가 감시를 소홀히 하고 무심한 사이, 국민을 대변해 일 잘하라고 뽑아준 일꾼들이 저들이
주인인양 행세하고 큰 도둑질하고도 더 당당하게 큰소리치지 않는가. 작은 도둑의 죄질이 큰도둑보다 더 나쁜, 거꾸로 된 나라. 민주주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보통사람인 우리가 국민의 권력을 제대로 행사해 보기나 했던가? 세상을 바꾸려면 사소한 작은 것이라도 실천을 해야 한다. 선거에 꼭 참여하기, 같은 건 두말 할 것도 없다. 투표도 하지 않으면서 위정자들을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투표해본들 다 거기서 거기라고..? 그래도 그 중에 그나마 좀 나아보이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그 것도 미흡하면 차차선이라도 뽑아야 한다. 내 주권을 포기하는 순간 큰 도둑들에게 살림살이를 송두리째 그냥 내맡기는 꼴이니 말이다. 재력이나 학벌따위, 스펙이나 심지어는 말꼬롬한 외모에 점수를 주지 말아야 한다. 품성을 보고 선택할 일이다. 능력이야 똑똑한 보좌관들이 받쳐주면 되는 것이니 국민의 충복노릇을 제대로 할 일꾼을 뽑을
일이다. 그 인물도 부패하면 ? 또 잘라내고 또 바꾸는 수밖에.. 돈많은 기득권이나 잘난 지식인들이 정치인이 되어 국민의 편에 제대로 서 주었는지 곰곰 따져볼 일이다. 그런데 이런 당연하고 상식적인 말 조차도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좌파로 몰아대는 사람들이 있다.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 토대를 만든 프랑스에서는 좌파란'사회적 약자, 자본을 갖고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편에 서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미개한(?)' 우리는 좌파란 무조건 빨갱이라고 몰아 붙인다. 좌든, 우든 보통사람인 우리 국민들은 등따시고 배부르고 안전하고 평화스럽게 살 권리만 주어진다면 제발이지 사상의 굴레에서 좀 벗어나 살고 싶다. 전 인민을 앵벌이로 삼고 호화호식에 치받쳐 배 터지기 일보 직전인 북쪽 김씨 왕조를 꿈에서라도 추종해 본적이 없는데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기만 하면, 보수의 반대 편에 서기만 하면 좌파라는 딱지로 간단하게 입을 봉쇄하려는 단편적인 사고는
언제쯤에나 종말을 고할 건지.. 이 번 지방선거에서는 후보가 다 비슷비슷 도토리 키재기라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국민의 편'에 설 수 있는 충복을 선택할
일이다. 그것이 그나마 왜 죽어야 하는 지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빚갚음을 하는 일일 것이다. 죽을 땐 적어도 죽어가는 이유라도 알고 죽었어야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얘들아... 정말 미안하다. 너희들을 지켜주지 못해서 이 나라의 엄마들은 다 아프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