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20
바람이 몹시불고 추웠던 지난 금요일 아침,
작년 12월31일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공원에 모시고
항상 금요일이면 집 옆에 있는 절에서 아침마다 2시간동안 제를 지냈는데
그러면서 1월을 보내고 2월을 맞이하면서 꾸준하게 금요일마다 지냈습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49제가 되는날이라서 평소 2시간보다 조금 늘어간
2시간30분동안 아버지 49제를 지내는데 아버지 좋은곳에 가시라고..
이런저런 행사를 하면서 끝이 났는데 그동안 정말 어떻게 보냈는지..
추운날 아버지를 부산 사람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는 영락공원에서
아버지 보낼때도 엄청 추웠고 감기 때문에 고생하면서 하늘로 보내드렸는데
지난 금요일도 정말 추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제 어머니 형제로써 단 한명 남아계시는
외삼촌과 사촌들이 참석했는데 그동안 다들 얼마나 고생들을 했는지
작년 31일 새벽 12시에 돌아가셨을때 사람의 죽음이란 과연 어떤것인지
숨을 가늘게 쉬고 계시면서 맥박과 체온을 재는 기계예 연결된 것을 보면서
사람의 죽음에 있어서 가장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것이란
아프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돌아가시는것이 좋은것이라고 여기지만
그러나 그렇게 편안하게 돌아가시는것이 많이 없기에 사실 아버지는
저희들에게 유언한번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8년동안 누워계시면서 절반은 정신이 또렸했고 옷 갈아입혀 드릴때는
눈을 번쩍 뜨고는 어머니가 마실 갔다오면 있는 힘으로 어머니를 떄렸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루종일 누워있으면서 식이용 음료를 배줄로 드렸고
사람은 걸어야하는데 그러지 않다보니 몸이 더 허약하고 7년이 지나면서는
제가 배를 만져봐도 닥닥한것이 있었는데 예상대로 대장암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움직이면 몸속의 장기도 원할하게 돌아가는데 기계도 그렇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녹슬게 되는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허약하게 되면서 온갖 질병에 노출되고 돌아가시기 한달전
어머니는 결심을 했는데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가자고 했습니다.
사실 요양병원에 가면 많은 환자들이 계신데 집에서처럼 하루에 2번 정도는
훨체어를 태워드리고 대소변을 일일히 신경을 쓰지만 요양병원에서는
노력을 기울이고 잘한다고 하여도 2~3명의 간병사들이 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봐야하기에 집에서 식구들이 하는 것처럼 노력을 기울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주일을 남겨두고 초창기에 다녔던 병원에 갔는데
이때부터는 아버지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일후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해라고 헀고 그 기계를 몸에 부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호흡은 점점 가파졌고 저녁에는 점점 더 느려지고 그 기계에서
길게 보이던 파장이 어느새 줄어들고 호홉숫자도 내려가면서 길게 한숨을
조용히 쉬다가 결국 돌아가셨는데 그것이 유언없이 돌아가신 8년동안 고생하셨던
말을 못하시니까 유언없이 돌아기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12시 넘어서 공원으로 모시고 가셨고 집으로 가족들이 왔는데
갑자기 돌아가신것도 아니고 8년동안 고생하시면서 언제인가는 돌아가신다는것을
짐작했기에 담담 했습니다.
이제 명절이되면 추모공원에 가야하는데 정말 8년동안 저 몸 부수어지라고
온 친척들하고 친구들이 알지만 사실 여동생은 해외여행을 4번 했지만
저는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저의 낭만보다는 아버지가 우선이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