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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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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회 기념으로 저녁을 쏘다~!


BY 새우초밥 2013-08-06

2005-10-01

 

하늘위에 구름들이 잔뜩 몰려와 있기에 비가 내릴것 같은 10월의 첫날이자
첫째 주말 토요일 아침 11시,
작년 10월말경 새벽에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졌던 아버지가 새벽에 검사후
처음에는 몇일 못 산다는 의료진의 통고에 깊이 낙담을 했지만 올 10월이 1년인데
그동안 온 가족들이 정성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힘들어도 운동을 시켜드리고
끊임없는 마음으로 돌봐드리다 보니,
이제는 사람도 조금씩 알아보게 되었기에 아지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않았지만
재활훈련을 위하여 잘 아는 종합병원에 입원을 시켜드렸다.
그리고 오늘 잠시 물건 몇개를 전달할려고 병원에 잠시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마침,
가을비가 조금씩 내리는데 난 가방을 머리위에 올리고 지하철역까지 걷기 시작했다.

지하철타고 서면으로 그리고 2호선 타고 약 15분 정도 달린끝에 광안역에 도착,
지하도 계단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니 비오는 모습이 보이는데

 또 다시 가방을 머리위에 아까전처럼 올리고는 10분 거리에 위치하는 병원으로

 빠른 걸음을 재촉하듯이 비를 조금 맞아가면서 걸어갔다.

그리고...

오후 4시 넘어가는 시간,

옷 갈아입고 투석실로 다시 파리의 개선문을 통과하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히 들어섰다.
침대에서 차트를 정리하고 있던 30대 초반의 털털이 간호사 옆으로 살짝 다가서면서

    "저기 샘아~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우?"
    "무슨 날인데 생일?''''''''''''''''''''''''''''''''
    "아니..한번 마춰봐"
    "뭔날인데? 혹시 장가가는날?"
    "틀렸다 여자가 있어야 장가를 가던지 시집을 가던지 하지 사실 오늘은...
     나 투석한지 700회 되는 날이다 알우?"
    "어 정말이가? 아까 차트보니까 700회더라"
    "그래서 내가 오늘 투석 700회 한 기념으로 피자쏜다 피자집에 후닥 전화해라"

창밖의 풍경은 비가 그쳤는지 조용하지만 차량들이 질주하는 소리는
여전히 시원하게 들린다.
비가 조금 더 내렸더라면 빗소리에 스치는 차량소리도 좋을것인데 싶은

병원 앞에 피자 가게가 있다.
간호사들이 가끔 그 집에 전화를 걸고는 피자를 시켜먹는다.
작년에 나도 그녀들을 위하여 피자를 시킨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도 시켰다.
사실 난,
피자를 그리 많이 좋아하는건 아니다 아마도 5손가락정도 만큼 피자를 먹었을까
그래도 투석 700회가 되는날에는 피자가 먹고 싶다 내가 그동안 투석했던 시간
700회 그 특별한 의미의 숫자를 위하여 축하를 하고 싶기에

오랜만에 돈을 좀 쓸 기회가 있었는데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나갈때 전화가 울린다.
친구의 전화였다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오피스텔로 오라는 말에
이제 기회다 싶었기에 지하철을 타고 친구 집에 도착,
친구에게 난 선전포고를 하듯이 크게 외쳤다.

    "내가 투석 700회 기념으로 저녁을 살것이니까 아무도 돈 꺼내지마!!!!"

늘 고마운 친구들이기에 이상 망칙한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투석 700회도 어면하게 기념일다.

내가 투석한지 700회,
생활 환경이 다른곳에서 태어난 남자와 여자가 성장을 하고 청년들이 되면서
어느날 특정 장소에서 만나서 눈에 콩깍지가 쒸우는 사랑을 한다.
그런 남여가 특별하게 챙기는 100일 200일 그리고 300일이 있다.
그런 연인들처럼 특정한 날을 기억하고 경축하면 오죽 좋을까만은

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힘들게 투석하는 그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그러나 나에게는 힘들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는,
투석하러 병원가는 시간이라면 출근이라고 하고 투석 마치고 집으로 가는
그 시간이라면 퇴근이라는 말을 하면서 4시간동안 수업 받는다는 은어를 사용하듯이
즐거운 투석을 늘 하며 TV속의 재미있는 코메디 프로를 보면서 크게 웃는다.

그리고 없는 이벤트도 만들고 싶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생각못하는
몇백회 기념 이벤트를 난 재미있게 하고 싶어서 상상속에서 현실로 이끌어냈다.
뭐 어떤가 재미있게 살면되지

92년 군에서 재대하면서 알게된 신장병을 만성신부전이 되도록 8~9년 가지고 있다가
수술할 시간이 된거 같아서 내발로 병원으로 걸어들어갔다
2000년 봄 엄마 신장을 받아 이식수술을 하기전 잠시 15일 응급으로 투석을 하면서
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염려를 씻어주는
마치 아기를 낳을때 아이를 받아주는 산파처럼 난 그렇게 새롭게 태어나도 싶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하늘은 나의 편이 아니였다.

2월초 이식수술을 했지만 수술은 의사들이 말하지 않았지만 난 실패를 눈치챘다.
그리고 7~8개월후 이식받는 나의 신장은 너무 허망하게 망가졌다.
그러나 난 원망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받아들렸으며 순전히 그건 운이였으니까.

2001년 봄부터 다시 2005년 10월 지금 현재까지 설날과 추석

그리고 성탄절 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오나

 늘 한결같이 일주일에 3번 화 목 토요일레 간다.
늘 평소 좋게 몸 관리를 하면서 정겨운 오후시간 4시간동안 투석을 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흘러 투석 700회가 되었다

작년 봄 600회때 기념으로 피자를 샀었던 그런 기억이 있듯이 시간은 참 빨리 흘러간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700일이라면 더욱 의미가 남다르겠지만.

투석은 단지 생활의 일부분이요 전체가 아니라는,
친구 만나서 밥도 먹고 혼자 여행도 할 수 있다.
난 내가 가고자 하는 장소라면 마음대로 간다.
물론 일주일에 3번 투석을 하다보니 올바른 직장생활도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당신을 좋아한다는 표현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봄에 병원에서 가는 야유회가 기다려지고
어떤 특정한날을 또 기다리며 4년째 늘 성탄절이 되면

내 손으로 일일히 사연을 쓰고 그녀들에게 선물하는데 난 그 마음이 즐겁다.
그래서 병원 안에서 나의 미소 때문에 모르던 직원들과도 친구가 되는,
사람과 사람간의 교류도 알차게 하게되는 하나를 잃었지만 또 하나는 얻게된
그런 삶을 살아간다 가끔은 나도 좋은 사람 만나

내가 생각한 사랑을 펼치고 싶다는 무한의 다짐을 하고 있지만,

이 가을에,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또 결혼을 한다는 이 가을에
난 이식수술을 하고 새로운 직장을 가지고 생활하지 않는 이상,
결혼이란 나에게 철장속에서 노닐고 있는 새의 삶과 같다.

20대 시절,
그 시절 난 꿈을 가지기를 20대 중반 넘어 좋은 사람을 만나서

사랑과 연애를 2~3년 시간이 흘러서 결혼하게 되었을때 방 하나의 집에서 시작하며
기름이 묻혀진 작업복을 입고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라면
하룻동안 열심히 일한 냄새를 풍기면서 집에서 가장인 나를 기다리는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아이를 위하여 여름에는 수박을 겨울에는 군고구마를
신나게 가끔 가져가는 남들과 같은 정겹고 소박한 꿈을 가졌지만
투석이라는 녀석은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요즘 난 나를 이해하는 사람과 만나 사랑한다면 국물 요리는 못하지만
다른 요리는 잘하니까 내가 살림을 할 수 있다는 그런 방향으로 변했다.
그러나 투석하면서 살아가는 사위를 누가 좋아할까 만은.

내년 언제쯤 투석 800회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는건 늘 즐겁게 살면 된다.
나중에 물론 이식수술을 할 수 있겠지만
다음주 화요일, 난 다시 12시경 지하철타고 병원으로 출근을 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투석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보이는 간호사들을 보면 항상 그렇듯이
손을 흔들면서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 이제는 모든 일들을 혼자 처리하는
저 사람은 모든 일을 잘하니까 이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을 할 정도로,
TV를 보면서 재미있는 프로를 보면 신나게 웃게 될것이다.
한주일의 시작 화요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