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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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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전,,파리에 갔을때


BY 박시내 2010-10-16

남편과 "살까 말까"로 항상 고민을 하던 때였다.

 

거의 극에 달해 난  프랑스에 사는 언니에게 전화를 했었다.

 

아무래도 이혼을 하고 아이는 주고 나와야할것 같다고,, 그러면 당분간이라도

 

언니한테 가있고 싶다고,,

 

언니는 식겁을 했을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생삶의 소용돌이에 언니도 함께하는것이니까.

 

언니는 몇날몇일을 달랬다. 그러면서 조심스러운 제안을 한다.

 

세식구가 놀러오라는 거였다.

 

여행을 하게되면 험악한 분위기도 잠잠해질것이고,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릴것이라고.

 

여섯살 아들과 부부는 난생처음 유럽,, 거기다가 프랑스 파리에 발을 딛었다.

 

언니의 아는사람이 유네스코에서 일하는데 한달간 본국(일본)으로 바캉스를 가게되어서

 

그 집을 한달간 빌릴 수 있었다.

 

남편은 여름휴가에, 월차등을 섞어서 열흘동안 같이 있었다.

 

언니역시 바캉스를 받았기땜에 우리를 끌고 관광가이드를 해주었었다.

 

언니가 처음 프랑스에 갔을때 관광가이드를 해볼까..해서 얼마동안 했었던 일이었다.

 

난 시차적응을 일주일간 못했다.  새벽 3시까지 잠이 안와서 눈만 말똥말똥,,그리고

 

낮엔 잠이 쏟아져서 유람선에서도 잠을 잤다, 정말이지 잠이와서 신경질까지 났었다.

 

여섯살아들은 큰 배낭에 비디오테잎을 잔뜩 갖고왔기때문에 집에 있을땐 비디오만 봤다.

 

우리가 있었던 아파트는 파리 15구였는데, 파리에서 유일하게 고층건물이 허락되는 지역이었다.

 

그곳엔 외국인이 많이 살았다  일본사람, 아랍사람, 한국사람.. 그동네엔 한국마트랑 한국식당이

 

있었지만, 마트라고 허걱,, 너무 작고 물건이 너무 없었다.

 

난 거의 이사수준으로 먹을거리를 갖고갔었다. 

 

왜냐하면 언니가 그 나라음식에 통 길들여지지 않는다고 했기때문이고, 돈도 많이 절약될수

 

있기때문이었다.

 

모노프리라는 마트가 그 동네입구에 있어서 자주 갔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띈게 치즈진열대와

 

와인진열대였다.  왠노므 치즈종류가 많은지..  어디엔 아예 치즈만 파는 점포도 있었다.

 

난 김(그외 김밥재료들), 골뱅이(그외 골뱅이무침재료들) 깻잎통조림, 각종 즉석국시리즈, 햇반

 

라면, 김치 등등을 갖고 갔는데, 도착하고 거의 20일동안은 먹은거같다.

 

언니의 프랑스 친구들도 초대해서 김밥과 골뱅이무침을 차려냈는데  미국사람처럼생긴

 

프랑스아저씨의 날렵한 젓가락솜씨에 놀랐고, 매운 골뱅이무침역시 너무 잘 먹어서 놀랬다.

 

깻잎통조림역시 너무 맛있다며 잘먹어서 돌아갈때 통조림한개를 선물로 줬다.

 

 

언니는 자기집에서 자고 오후 1시쯤 우리한테 왔었다.

 

우리는 아침을 해먹고 아파트 놀이터에 갔다. 

 

여름 방학때라 꼬마들이 놀이터에 많았는데, 모두들 얌전하게 노는게 인상적이었다.

 

좀 오버액션이 눈에 띈다면 아랍쪽 애들이었다.

 

울 아들역시 만만치 않았다.   놀이터에 비둘기가 많고, 열살정도 되는 아랍여자아이가

 

바게뜨빵을 갖고와서  바닥(딱딱한 시멘트쪽)에 대고 막 비벼대니까, 비둘기들이 모여들어

 

맛있게 쪼아먹는다.  

 

울 아들이 그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는지, 아랍소녀에게 다짜고짜 가더니 빵을 뺏는게 아닌가~

 

난 멀리있어서 모르지만 아마도 한국말로 '나좀 줘' 라고 하지않았을까?

 

덩치큰 아랍소녀가 울 아들어깨를 잡아흔들어 모래바닥에 밀어버렸다.

 

넘어져울던 아들놈이 양손에 모래를 잔뜩 움켜쥐고는 던질까말까  0.5초 생각하더니, 더 큰

 

우환을 고려해 도로 놓아버린다.

 

한국에서도 지랄(?)맞게 놀던 아들놈이 지구반대편까지 가서도 그버릇이 여전한거다

 

또 한쪽에선 예쁜 프랑스 여자애들 두명이 모래로 성을 쌓더니 그 꼭대기에 비둘기 깃털을

 

꽂고 놀고있었다.  멋진 성을 만든것이다.   우리나라 놀이터 모래보다 훨씬 부드럽고 깊이도 깊었다

 

그래서 조금만 파면 약간 습한 모래가 나온다.  그러니까 멋진 모래성을 만들수 있는것이다.

 

울 아들놈이 또 그쪽으로 뛰어가서는 비둘기깃털을 낼름 뽑아서 뛰어가는것이다.

 

난 언니랑 얘기하고 있어서 그 광경을 못봤다.  갑자기 여자애들 둘이 조용히 우리에게 와서는

 

숑숑숑 거리는거다.    언니가.." 야,,네 아들이 뭘 훔쳐갔다는데?"

 

우리나라 놀이터였다면 아마도 여자애둘이서 울 아들을 응징했을것이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함소리와, 울음소리로 아파트가 들썩이지않았을까?

 

그런데 거기 애들은 정말이지 조용했다. 

 

 

언니는 부지런히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을 시켜줬다. 

 

그 중에서 노틀담성당 뒷편의 작은 섬 구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쁜 샵들이 많고, 색다른 물건들도 많이 팔고, 아기자기하고..

 

몽마르뜨언덕은 실제로 보니 너무너무 작아서, 잘못온게 아닌가 착각이 들정도였다.

 

뭐야..화가들 몇명 못서있겠네?  왜 유명한건데?

 

유람선은 낮에도 한번, 밤에도 한번 타봐야한다.  경치가 달라보이기때문이다.

 

베르사이유궁전은 쓸데없이(?)넓다.  나처럼 걷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고역이다.

 

커다란 가로수 기둥위의 나무를 모두 사각형으로 다듬어놓은게 이색적이었다.

 

에펠탑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모두 세단계를 밟아야한다. 

 

세개의 엘리베이터를 타야하고 중간에 카페도 있었다.

 

개선문은 생각보다 무지하게 커서 깜짝 놀랐다.  아주 크게 상상하고 가도 그 상상보다 클것이다.

 

우리가 첨성대를 첨 보고 너무 작아서 놀랏듯이...

 

루블박물관은 너무나 방대해서 6개월동안 관람해야 몽땅 볼 수있다고 했다.

 

 

프랑스는 관광수입으로 먹고사는 나라라서 도시의 경관을 해치는건 나라에서 용납을 안한다.

 

건물의 개보수도 까다롭고, 땅바닥의 돌들도 중세시대꺼라니,,, 벽에 조각된것들하며..

 

그냥 박물관 자체인것이다.

 

 

도시가 너무나 조용했다.  그 분위기가 좋다며, 유학간 사람들이 눌러앉기도 한다지만,

 

난  한국으로 돌아오기 닷새전부터는 좀이 쑤셔서 죽는줄알았다.

 

밤만되면 "어휴 아직도 나흘이나 남았네,,어휴 지겨워,, "

 

빌려쓰는 그 아파트엔 여섯살 아들과 나만 남으니까,, 아들은 벌써 잠이 들고,

 

테레비젼을 킨들 숑숑거리는 말과,  - 그 나라는 왠노므 토론만 하고 사는지 - 그렇다고해서

 

아들이 가져간 뽀뽀뽀 비디오를 보고있을순 없지않은가?

 

 

난 그 나라에서 살고싶지않다.  여행은 또 하고싶다.

 

여행사 페키지보다는 몇명이 함께 다니는것이 좋을것같다.

 

케밥골목의 카페에도 앉아있어보고, 할아버지들이 장기두고있는 멋진 공원에도 앉아있어보고,

 

샹제리제거리의 카페에서 관광객들 구경하며 앉아있어보고, 마트에서 손짓발짓으로 생선사다

 

친구들과 음식도 해먹고, 코인빨래방에서 각종 인종들과 섞여 빨래도 돌려보고, 그러면좋을것같다

 

 

난 언니덕에 값진경험을 해본것이다.

 

그리고 돌아온 한국,,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지만,

 

그 뒤로도 수도 없이 '살까말까'의 갈등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