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댓바람부터 남편과 감정 다툼이 있었다
요즘 며칠 째 하는 말마다 가시가 들어있고, 상대방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며 상처를 준 것도 아물지 않았는데....
말이 그냥 생각없이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속 생각이 말로 표현되는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는 특히나 상대방의 말에 민감한 반응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나 보다
아니,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넘길수도 있었겠지만 어제는 정말
화가 나서 조목조목 남편 말에 대해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었다
내게 대한 억하심정이 있지 않고서야 이해되지 않는 남편의 말과
행동이 화근이었다
결혼식을 할 때 신랑이 연미복을 입는 게 격식있는 집안의 모습이라
보기 좋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 날라리란다
그말 끝에 내가
"우리 사위들도 결혼식 때 정장 입었는데 그럼 날라리에요?"
남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다 날라리야"라고 말을 한다
내 생각엔 그건 당사자의 선택의 문제이지 연미복을 안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한순간에 수준낮은 사람으로 매도되는 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편견이라 여긴다는 말에 벌컥 화를 내며 내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안 좋은 것까지 일방적으로 감싸려 드는 당신은
편견에 가득 찬 사람이야!"라며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을 하며 언성을 높인다
그런 남편에게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상대방의 기분이 어떨지 생각이나 하고 하는 말이냐, 내가 당신
아들이나 며느리에 대해 함부로 말 한 적 있느냐"며 맞받아쳤다
과연 내가 일방적으로 감싸기만 한 것인지, 내 입장에서는
행여 남편의 아들,며느리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면 듣기 싫을까봐
말 한 마디도 조심스럽기만 한데, 어떻게 거침없이 그런 표현을 하여
아무 잘못도 없는 사위들까지 욕을 먹히는가 싶으니 더 속이 상했다
내 생각에 그런 말을 하는 배경에는 절대로 나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아니구서야 그렇게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싶으니
그 상태로 계속 집에서 얼굴 마주보고 있으면 화가 더 날 것 같아
어디 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어 어디 가냐는 물음에 대꾸도 없이
집을 나섰다
막상 집을 나서니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내 발걸음은 방향을 잃었다
그러다 나처럼 혼자 되어 딸 셋 얼마 전에 다 출가시킨 언니가
생각났다(사회생활하면서 서로의 공감대로 친하게 지내게 된 인생선배)
혼자 살면서 힘들때면 만나 서로의 얘기도 나누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었기에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언니였는데
내가 남편을 만나 재혼을 하고 부터는 거리감이 생긴 게 사실이다
모처럼 옛날 생각을 하며 자식들 다 떠난 빈둥지 같은 언니집에서
오랜만에 밤막걸리를 나누며 속을 달랬다
남편에게서는 계속 전화가 오는 듯한데
"어디 한 번 오늘 골탕 먹어봐라!"라는 심정으로 그냥 다 무시해 버렸다
재혼의 어려움이란 이런 것인가?
내 자식, 니 자식에 대한 선은 분명 그어지는 탓에 서운한 맘이 들 때 있어도
어지간하면 내색 안 하고 넘어가려는데 기어코 내 눈에서 눈물을 빼고야 마는
남편의 고집불통같은 성격이 오늘따라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 하나로 결정한 일인데 이럴때면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어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서로 어렵게 한 재혼이니만치 서로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닐까?
말 한 마디라도 상대방이 싫어한다면 굳이 내 성격이 원래 그러니
니가 이해해라는 일방적인 태도보다는
그렇게 기분나쁜 줄 몰랐으니 미안하다고 사과 한 마디쯤 하면
어디가 덧나는가?
언니도 아침에 일찍 출근을 해야 하니 집으로 돌아오는데 발걸음은
무겁디 무겁고 마음은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아득하기만 하여 현관을 들어서는데 무척이나 낯설게만 느껴지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