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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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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비판....


BY *콜라* 2010-06-30

결혼 초, 무슨 이유였나 기억 나진 않지만

남편과 말다툼을 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꺼이꺼이 서럽게 울면서 

"엄마가 아무 것도 해 줄게 없으니 잘난 며느리한테 큰 소리 한 번 못 치고...."

 

한 밤중이었는데 엉엉 소리내며 우는 통에 놀라고 당황해서  

무조건 내가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빌며 달랬다.

지금 생각해도 무엇이 미안하고 왜 잘못이었나 기억나지 않을 만큼

특별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별 일도 아니었다.

 

그때 나는 크게 상처 받았다.

돈 없는 시어머니라는 느낌을 줄 행동이나 말을 한 적이 없다 해도

남편이 그렇게 느꼈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엄니를 대하는 며느리의 태도를 점검해보자는 돌이킴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 남편이 그렇게 슬프게 우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했다. 

 

두 번 다시는 남편의 마음에 고부간의 일로 아픔을 주지 말자는 다짐,

그 다짐을 지금까지 잊은 적도 없고, 어긴 적도 없다.

 

신혼 한 달즈음에 있었던 그 싸움은

나를 한 걸음 인간으로 성숙하게 만든 계기였다. 

 

이후 나만의 원칙을 정했다.

모든 일에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똑같이 챙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정엄마의 생신이라 돈을 보내면

아무 일 없어도 똑 같은 금액을 어머니께도 보내고

친정엄마가 금줄 시계를 해달라고 했을 때

엄니는 같은 금액의 현금을 드리고

엄마에게 가죽장갑을 사드랴야 하면, 같은 걸로 두 개를 산다.

만약 벅차다면 형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몇년을 지내다보니 엄니와 엄마의 물건 중에 같은 것들이 많아 졌다. 

 

엄니의 화장대 위의 화장품과 엄마의 화장대 위의 화장품이 같은 브랜드이고

엄마의 스카프를 엄니가 두르고 계시는 듯한 착각을 하기도 하고

앞에서 걸어가시는 엄니를 엄마인 줄 순간 헷갈리기도 한다. 

 

나도 인간이다보니 어떨 땐 살짝 내 합리화를 할 때도 있긴 하다. 

 

"엄니는 용돈 드린지 얼마 안되었으니 이번 엄마 생신때는 넘어가도 될거야"

 

얼마전, 엄마가 이를 하신다며 언니가 전화를 했다. 

임플란트를 한다기에 나는 얼마 보내겠다고 했더니

전체 금액이 얼마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꼭 그 금액을 이야기 하냐고 ... ㅎㅎㅎ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엄니 틀니 하시는데 그만큼 드렸기 때문이라고 했더니

남편이 시댁과 친정의 그런 거 따지냐고 묻는다. 

 

따지기는 커녕, 우리가 뭐든 부담하라고 찔러대서 문제다. 

남편 눈치보는 게 아니고

내 기준이 그렇다고...

 

며느리를 딸처럼 대해 주길 바란다면

딸처럼 행동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때문에

딸로서, 며느리로서

우로도 좌로도 치우치지 않고 싶다고

나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

 

내가 더 보낸다고 남편이 눈치 주는 것도 아니고

꼭 보내고 싶다면 남편 몰래 보내도 되는 일이며

친정에 더 기운다고 욕할 시누이도 없지만 

때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좌우한다고....

그래서 내 스스로 지키는 원칙이라고 했다. 

  

언니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래... 네 성의껏 해라... 니 남편한테도 잘 해라...한 마디만 한다.

 

언니도 며느리니까 며느리 마음 이해하고

언니도 딸이니까 딸의 마음 이해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동의해 주었다. 

 

내가 천사처럼 착하거나 심성이 고운 여자 였다면

오히려 이런 계획 세우지 않고도

잘 할 수 있었을 거다.

 

나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면서 감정에 따라 흔들리는 1차원적인 여자에다

결혼해서 시댁에 며느리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 할 자신이 없어서

세웠던 계획이니 어찌보면 근본은 나쁜 여자라 할 수 있다. 

 

더 잘 할 수 없다면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세웠던 그 원칙은

한국에서부터 캐나다에 살고 있는 지금까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ING~으로만 유지하기 위해  

나는 수시로 내 가슴을 열어 확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