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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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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작.....


BY *콜라* 2010-03-30

3남매를 둔 집안의 아들 딸 서열을 물어보면 대개 딸-> -> 아들 순인 걸 많이 본다.

이런 서열 구조를 가진 집의 부모들은 대부분 셋째가 딸이어도 상관없었고, 두 딸로

만족했는데 우연히 임신해서 낳았더니 아들이라고 우긴다. 하지만 특별대우 없이

  키운다고 주장한다. 

 

좀 더 솔직하게 아들 낳으려고 애썼음은 인정하는 사람들도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키워야 한다'는 등 아들에게 올인하지 않고 딸 아들 차별없이 키우고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가게 직원인 희진이와 혜영이도 딸 셋에 막내 아들, 딸 둘에 막내 아들을 둔 집안의 맏딸들이다. 양쪽 모두  금쪽이 아들 교육 때문에 이민을 감행한 케이스로

여동생과 남동생을 둔 혜영이는 올해 대학 1학년을 마친 후 휴학하고 두 곳에서 아르바이틀 하고 있다.  

 

매일 저녁 7부터 다음날 아침 7까지 팀 호튼 커피전문점, 주4일간 12부터 4까지 우리 가게, 그리고 그 사이 또 네 명의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과외를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들 하지만 어려서 하는 고생은 조실부모했거나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 보낸 40대 이후 우리세대에 통용되던 전설.

낯선 땅이긴 저나 나나 마찬가지인데 스무 살짜리에겐 너무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   

 

밤낮 일하느라 밥이나 먹고 다니는지 신경이 쓰여 웬만한 잔일은 시키지 않고 

좀 쉬게 해주려 마음을 쓰지만, 일요일인 어제 저녁 남친이랑 스시 부페를 갔다가

갑자기 많이 먹고 체했다면서 오늘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아 더 걱정스러웠다.

 

“혜영. 약 좀 먹을래?

아뇨. 어제 먹었어요.

너 잠은 언제 자니?

짬짬이 자요

 

자도 자도 끝없이 잠이 오는 나이에, 밤낮 일하다가 짬짬이 잔다는 혜영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과 캐나다로 이민 와서 중등과정 없이 하이스쿨로 진학하는 이곳 학제로인해 스무 살에 대학2학년이 된 소위 바나나.

 

바나나란 껍질을 벗겨도 똑 같은 노란색의 과육이 나온다고 해서

외모는 한국인인데 일찍 이민을 왔거나 이곳에서 태어나 실제 내면의 사고방식은

캐네디언화 된 이민 2세들을 일컫는 은어다.

 

미술에 뛰어난 재능가진 혜영이는 처음부터 미대 진학을 원했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인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었지만, 도저히 미술을 향한 열정을 접을 수가 없어 입시를 6개월 앞둔 시점에서 단식투쟁으로 미대 진학을 이루었단다. 설마 그 짧은 기간 레슨을 받아 합격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아빠의 실수였다. 그만큼 아이의 재능이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은 해내고야 마는 의지라고 할 수도 있다.

어쨋든 중학교 졸업 후 용돈 한 푼 주지 않으며 자생력을 길러 준 그 아버지, 딸을 몰라도 한 참 몰랐던 거다.

 

면접 하던 날, 오는 9월 직업칼리지 입학금 마련을 위해 일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었다. 화가라는 확실한 미래목표가 있는데 왜 미대를 휴학하고 요리사가 되기위해 학비를 벌고 있다는 걸까 궁금했지만 프라버시라 입을 다물었다.    

 

외국서 살다보면, 자식공부 위해 이민해서 정작 자식의 미래보다 자신들의 놀음에 더 바쁜 부모도 있으니 궁금하긴 해도 넘어갔던 일인데, 월요일인 오늘 손님이 뜸한 시간 재료 준비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혜영아 부모님께 학비만 좀 달라고 말씀드리지. 그렇게 잠도 안자고 어떻게 사니일하는 시간에 빨리 대학을 졸업해서 전문인으로 취업하는 게 더 경제적이고 현실적이지 않니? 지금은 너가 일을 아무리 잘해도 아르바이트로 파트타임밖에 할 수가 없는데, 휴학 복학 반복하는 건 시간낭비가 되지 않을까?"

 

혹시 부모님 직업이 변변치 않아 어려운 형편이라면 상처가 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게 말을 했더니 뜻밖에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건 아니란다.  

 

이민 후 햄버그 전문점을 운영하며 넉넉한 형편에서도 중학생인 딸에게 용돈을 주지 않고

대학입학금부터 등록금도 론(학자금 대출)을 얻어 입학, 최근에는 동생과 자취하며

서브웨이와 한식당 서빙, 학생들 영어 튜터(개인지도)로 학비와 생활비까지 해결하며 살고 있다는 것. 한국에도 진출한 그 햄버그 브랜드는 웬만한 자본력으로 체인점 하나 내기도 어려운 규모의 사업체다.  

  

아이는 남의 이야기 하듯 담담하게 말 하는데, 나는 '앵벌이라도 하라는 거냐'고

그 부모를 향한 분노가 살짝 치민다. 

 

혹시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아 미움 받은 건 아니냐고 물었다. 중학교 때까지 학원이나 개인과외 등 사교육비를 많이 쓰지만, 고등학생인 여동생도 그랬고 지금 중학생인 막내 동생도 아마 중학교 졸업하면 끝일거라는 말끝에, 혼잣말 처럼 "막내는 남자라서 어떨지 모르지만......"한다. 

아들은 딸과 어떻게 다를 것 같으냐고 했더니, 대답대신 피식 웃으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 아버지가 막내 남동생을 뭐라고 부르는 지 아세요?

“?????.........

불후의 명작이랍니다.

 

살짝 일그러진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비웃음이, 아이가 그간 딸로서 받은 상처가 꽤 컸음을 짐작하게 했다. 같은 어른으로 뭔가 교훈적이면서 아버지의 행동에 적절히 동조하며, 그러나 아이에겐 또 위로가 될 말을 해야하는데...... 적당한 말이 없다. 그래도 부모니까 학비는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아이편에서 위로를 했다.

 

우리 아버지는요. 학비는 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면 우린 캐네디언인데 캐나다에서 누가 만17세 이후에 자식에게 용돈주고 학비 대주냐고. 캐나다 식이었다가 필요할 땐 한국식으로 돌아가요. 등록금 대줄 것도 아니면서 회계사나 변호사하라고 윽박지르다가 때려도 굽히지 않으니까 6개월 만에 합격 못할 줄 알고 허락했는데 합격해버린 거에요. 그러니까 또 너가 원해서 갔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해서, 저 혼자 공부하면서 돈 벌어서 비싼 재료비까지 감당하기가 너무 벅찼어요. 그래서 장기적인 계획으로 일단 요리사로 돈을 벌면서 평생 하고 싶은 미술을 하는 것으로 진로를 정했어요.

 

, 내 딸이었음 딱 좋겠다 싶다.

 

아버지가 책임질 일엔 캐네디언이라고 모른 체 하시고, 통행금지 시간을 여름엔 6 겨울엔 8 정해서 툭하면 여자는... 여자는... 이라고 해요. 그래서 시간을 줘야 일을 할 것 아니냐고 캐네디언 누가 대학생 딸에게 통행금지 정해서 간섭하냐고 항의 하면 또 우린 한국인이니까 그래야 한다고 해요. 이럴 땐 캐네디언, 저럴 땐 한국인으로 아버지 기분에따라 캐나다, 한국  오락가락 해요.

ㅎㅎㅎㅎ

 

지금이 60년대도 아니고, 더우기 부모라 해도 자식을 절대 때릴 수 없으며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이 생명만큼 존중되는 이 나라에서, 일관성 없는 훈육을 고집하는 그 아버지가 궁금해 한국에서 직업을 물었더니 권투 선수였단다.

ㅎㅎㅎㅎ

 

딸에게 몹시 인색하고 엄한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들의 사고방식과 편리한 캐네디언식 방식 중, 편리한 대로 차용해 살고 있는 그 아버지는, 그러나 불후의 명작 은 불굴의 의지로 설 수 있게 부모가 힘이 되어 줘야 한다는 의지대로, 오늘도 학원으로 과외선생 집으로 길과 사교육비에 돈과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고 했다.

그 딸은 하루 4시간의 쪽잠도 요일따라 자면서 '불우의 명작'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당신의 불후의 명작은 누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