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는 소리지만
“늘 이렇게 같이 다니세요? 나란히?”
은행에 볼 일이 있어서 영감과 같이 갔더니, 드링크의 뚜껑을 열어 권하며 묻는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과히 보기가 싫어서 하는 말은 아닌 듯. 영감은 말없이 웃지만 나는 한 마디 한다.
“집에서 할 일도 없구 심심해서요.”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지. 심심해서도 아니구먼. 영감이 병상에서 일어난 뒤로 난 영감이 늘 걱정스럽다. 그래서 다정한 척 곁에 붙어 다닌다. 영감도 대신 나서주는 마누라에 편한 듯하다.
따르르 따르르르릉~…♪♪.
“아, 그러세요. 금방 찾아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는 돌아서서 나에게 묻는다.
“정비소에서 전화가 왔네?! 같이 갈 거야?” 그건
“같이 갑시다.”의 뜻이다. 마스크를 귀에 걸고 썬그라스를 챙기고…. 웬만하면 그냥 혼자 걸음을 할 만도 한데 그이는 얌전하게 마누라의 차비를 기다린다. 차를 없앴더니 잔금과 서류를 가져가라는데 마누라가 왜 필요한 지는 나도 모르겠다.
원래 말이 없는 그이이지만 앓고 나서는 도통 입을 열려고 하질 않는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하루에 두어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는 일이 많아졌다. 영감은 내가 묻는 말 외에는 입을 떼지 않는다. 그동안은 어떻게 사업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무실을 접은 뒤로는 누굴 만나려 하지도 않는다. 전화도 사무실에서 오는 전화가 아니고는 받지를 않는다. 사무실에서 오는 전화는 운영상의 문제로 조언을 부탁해 오기 때문에 꼭 받아 줘야 한단다. 사실은 그런 전화도 내겐 신경이 쓰인다. 잘못하다가는 영감이 질타를 받게 되는 결과가 올까 싶어서다. ‘잘못된 일은 조상 탓’이라고 하질 않던가 말이지.
“이젠 차도 없앴으니 영감만….”
“…???.”
혼잣말로 구시렁거리지만 알만하다. 영감의 MRI 사진을 들여다보며 의사가 말했다.
“절대로 운전은 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손과 발 놀림에 이상이 있나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들었으니 걱정이 어찌 아니 되겠는가. 교회의 주차장을 쓰고 있어서 주일엔 차고를 비워야 한다. 해서 영감은 토요일이면 차를 뺐다가 주일 저녁에 다시 차고로 향한다. 것도 내겐 크게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운전은 하지 말라 했는데….’
“괜찮아.”
이쯤은 할만하다 하는 영감의 고집을 어찌 이겨내겠는가. 차라리 차를 없애야겠다.
“내가, 절대로 당신 운전은 못하게 할 텐데, 저렇게 차를 세워놓고 왜 돈을 드려요.”
1기분의 자동차 세금이 나오자 곧 보험료도 나올 것이라 닦달을 하니 영감도 동의를 한다. 허긴. 나도 섭섭한데 영감이야 오죽 섭섭하겠는가.
“내가 돈 많이 벌어서 기사 딸려서 좋은 차 다시 사 줄 겨.”
영감이 씩~ 웃는다. 다 부질없는 소리라는 걸 왜 모르겠는가. 씩 웃는 영감이 그저 고맙다.
보림아~!
감기 않느라고 못 왔다구? 웬만하면 좀 자주 다녀가그라. 할배가 니 지둘리느라 그 긴 목이 더 길어지셨다. 자주 오니라이~. 할배도 할매도 요만할 땐 그려도 봐 줄만 혔는디...ㅜㅜ.
미국의 <루레이 동굴>에서.
어찌나 장엄한지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들쳐보니 귀한 추억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