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호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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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었다는 게 결코 자랑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리. 먹고 싶지 않아도 어느 새 칠순란다. 사실을 말하자면 내 칠순은 20013년이었다. 그러나 원채 큰 일을 많이 치르다 보니 칠순까지 챙기는 건 너무하다 싶었다. 시부모님의 환갑이며 장레. 사 남매의 결혼식. 큰 병을 앓아 병원 출입까지 하게 했으니 염치가 없었던 게다. 마침 막내 딸년이 아직 솔로였던 터라,
“네가 짝을 지을 때까지 유보.”한다는 핑계로 못을 박았으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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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의 성화가 약발이 섰을까 막내는 작년에 짝을 지었으나, 곧 따라온 내 생일에,
“뭐가 그리 바빠. 정신 좀 차리고 보자.”며, 이번에는 이웃과 친지들에게 알리기도 미안하다는 핑계를 이유로 삼았다. 결국 친지들과 지인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올해엔 미국여행으로 낙찰이 됐다. 그러나 것도 호사라고 영감이 병을 얻었잖은가. 장시간의 비행이 어려워 내심 잘 됐다 했거늘. 이젠 머리 큰 자식들이라 어미의 속내가 통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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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 마음은 접어두고 사 남매가 쑥덕공론을 벌려, 서울에서 가까운 곳으로의 가족여행을 계획했던 모양이다. 아이들 말을 빌리자면, 다행이 두 분의 생일이 하루 사이라 한꺼번에 치른다나?! 더 다행인 건 주말을 걸쳐서 직장을 가진 아이들에겐 아주 호재라 한다. 그럼 간단하게 밥이나 먹자 했더니, 예쁜 팬션에서 고기를 구어 먹기로 했다 한다. 얼씨구~!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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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그래요. ‘연로하신 부모님의 팔순은 장담하지 못한다. 환갑은 너무 이르고, 그래서 칠순은 꼭 챙겨야겠더라.’ 해서 강행해요. 교회도 하루 쉬시고 꼭 시간 비워두세요. 꼭 꼭요.”
옳거니. 나도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니 한 번쯤 모시고 여행이란 걸 제대로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거늘. 지는 척 아이들의 뜻을 따르리랐다. 영감이 병을 얻은 게 나도 그랬거니와 아이들도 ‘머지않은 이별’을 절감했기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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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큰딸은 일찌감치 출국을 포기하고는, 여름에 아빠가 더 건강해지면 근사하게 모시겠단다. 새벽에 입국한 막내 네를 기다려, 삼 남매 식구들과 간단하게 미역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은 중식으로 했다. 생일날 점심에는 긴 모양의 면을 먹어야 장수한다고 늘 일렀더니 내게도 해당이 된다, 배달음식을 먹어야 얼른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지론이다. 자동차 세 대가 움직이는데 짐짝이 많아 자리가 여유롭지를 못하다. 아서라. 무슨 짐이 이리도 많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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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아라뜰>. 바비큐장이 딸리고, 따뜻하고 예뻐서 엄마스러운 팬션이라더니 썩 마음에 든다. 아담하고 깔끔하고 편리하고 여유롭고…. 부족한 구석이 없다. 어련하겠는가. 영악한 내 막내딸년이 자판을 얼마나 두드리며 인터넷을 뒤졌을꼬. 몸 부실한 아빠 엄마를 생각해서, 도착 시간 전에 연락해서 보이라를 높이라 했다더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직은 조용하지만 내일은 주말이라 좀 어수선할 것이란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상을 차린다나?! 뭔 상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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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구. 럴 수 럴 수 이럴 수가. 아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작업을 분담해서, 삽시간에 칠순상을 제법 격식있게 꾸며놓는다. 병풍을 치는 녀석, 상을 차리는 녀석, 저녁밥을 짖는 며느님들. 이런 호사가 어디 있을꼬. 넋을 놓고 엉덩이를 데우며 입 꼬리를 세운다. 절로 올라가는 입 꼬리를 주체할 수가 없는지고. 난 무얼 도울까 물으니, 먼 길 왔으니 병만 나지 말라 한다. 사진을 찍어야 하니 한복을 준비하라더니, 저희들도 모두 한복으로 갈아입는다. 보림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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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품위 있게 마련된 상의 중앙에 붉은색의 장미바구니가 푸짐하게 들어앉는다. 백세까지 살라고 백송이의 장미를 꽂았단다. 케익에 촛불을 켜고 보림이와 화상으로 연결된 큰딸내외가 시차적응을 잘 맞추어 생일축가를 열창한다. 큰딸아이는 어느새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채다.
“꽃바구니 속에 엄마가 좋아하시는 거 들어있는데. 뽑아 가지세요.”막내딸아이가 함빡 웃는다.
“내가 좋아하는 거?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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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바구니 사이사이에 오만 원 권이, 투명한 세르로이드에 나팔모양으로 돌돌 말려 꽂혀 있다. 꽃 사이사이에 파랗게 꽂혀있는 건 ‘불노초’란다. 내 손에서 지폐가 뽑힐 때마다 아이들은,
“하나” “둘” “셋” “넷”을 외친다. “…열 넷.” 아무리 살펴도 열 넷으로 끝이다.
“어째서 열 넷이여?”
“열 넷이 문제가 아니라 ‘칠십’에 의미가 있어요. 호호호.”
아하~ㅇ.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구먼. 으하하 풍악만 올리면 어께춤도 나오겠는걸?!
“엄마. 사위 출근해야 하는데요.”하는 큰딸아이의 즐거운 비명이 들린다.
오~라! 그러고 보니 미국은 시방 아침이로구먼. 어르신들께 절을 해야 한다며, 기르던 수염까지 말끔하게 밀었다는 기특한 내 큰 사위. 생각도 없이 꽃바구니의 지폐를 찾는 데에만 너무 집착했구먼. 시방 생각하니 내가 너무 격조 없이 굴었던 게야. 좀 우아하게 처신했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없는 훗날에 동영상을 보면서 아이들이 채신없다고 낄낄거리겠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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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안고 두 늙은이가 정좌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예쁜 보림이가 영감 무릎에 안기자 카메라의 셔터가 돌아간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드라이라도 하고 올걸. 아들 며느님들과 찰칵. 딸 사위와 찰각. 삼각대를 뻗히고 온 가족 둘러앉아서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저녁 상은 큰며느님의 솜씨로 상다리가 휘겠네. 아구구. 우리 며느님은 어제 밤을 하얗게 샜겠구먼. 갈비찜에 샤브샤브. 갖가지 전에 생선구이. 각가지 사라다에 또…. 그렇잖아도 늦어진 식사에 모든 게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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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는 없고 모두 주인공만 있다. 우리 부부와 아이들 네외와 손자와 손녀. 아이들의 수고가 너무 커서, ‘누군가 좀 보아주셨으면 좋을 뻔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당신이랑 내 형제들만이라도 부를 걸 그랬나? 봉투는 안 받는다 하면 되잖아.”
“그런다고 그 사람들이 빈 손으로 오겠어? 우리끼리 모인 건 잘 한 거야.”
영감도 흡족한 모양이다. 나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영감. 오늘 같은 날엔 당신도 뭘 좀 준비했어야 하는 거 아녀? 아무것도 없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