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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다녀오다


BY 만석 2014-02-28

지옥을 다녀오다

 

췌장에 뭐가 보이네요.”

여기를 보세요. 뭐가 있잖아요.”

교묘하게 아니, 징그럽게 생긴 벌건 사진 하나를 컴의 화면에 띄워놓고는, 주치의가 나보고 하는 말이다. ~. 내가 그걸 들여다보고 뭘 알아본다면 내가 의사 하지.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그동안 아픈 데가 없었느냐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아팠던 것 같고 또 저기도.

 

서둘러 내시경을 찍고 CT도 찍자 한다. 예약을 하고도 며칠씩 기다려야 했던 촬영을 하루에 강행군이다. 일은 크게 난 모양이다. 마침 정기검진 시간이 촉박해서 아침밥을 거르고 온 게 천만다행이다. 이젠 수술 6년차이니 혼자 병원에 다니는 일도 익숙하다 했더니만. 오늘은 누굴 좀 달고 왔으면 좋을 걸 싶다. 예약도 없이 검사를 하자니 가는 곳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다. 예약된 환자가 우선순위라 나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석 장의 촬영은 한 시간만으로도 족하겠으나 가는 곳마다 기다리다 보니 오후 6시에야 끝이 난다. 허기도 지고 쳐진 기분에 세상이 온통 노랗다. 그래도 먹어야 돌아오겠기에 터벅터벅 지하식당으로 향한다. 죽 한 그릇을 시켜놓고 앉았으니 여기저기의 눈길이 측은지심을 담는다. 내가 보기에는 이곳에 몸 담은 자네들도 적잖게 측은한 마음이 들거늘그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이다. 그래도 내가 더 처량해 보이는가 보다.

 

죽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으니 울컥 서러움이 목젖을 타고 오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것도 하필이면 예후가 아주 좋지 않다는 췌장으로 말이지.’

누가 말했어. 암은 5년을 버티면 완치라고!’

허긴. 처음 입원했을 때, 유방암 수술 10년 만에 재발해서 입원했던 애기엄마가 있었지?‘

이 와중에도 내 소설 쓰는 취미가 발동을 한다.

 

사람은 정말 간사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때부터 중병환자가 되어 드러눕는다. 하루 종일을 굶은 이유도 있겠으나 몸의 온 힘이 손가락과 발가락 끝으로 빠져나간다. 몸을 뒤척일 기운도 남아 있지 않다. 병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도 말하기 싫다. 그래도 영감의 저녁밥이 걱정이다. 전화를 걸어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오라 이른다. 내가 몸살이 났다고. 나는 검진 결과가 나오는 일주일을 그렇게 중병을 앓는다.

 

결과를 보는 날. 눈치도 없는 영감인 줄 알았더니 낌새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막내딸아이 내외에게 월차를 내어 병원으로 동행하게 한다. 오늘은 예약이 되어 있으니 수월하다.

, 괜찮은데요? 괜찮습니다.”

.”

나는 어안이 벙벙해 있고, 의사는 뭣 때문에 걱정을 하느냐는 듯이 오히려 나무라는 투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저는 암말 안 했는데요. 선생님이 췌장에 뭐가 있다고 하셨지요. 선생님이.”

하하하. 수술한 위가 한쪽이 늘어져서 췌장을 덮어서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 양반이 지금 웃어? 시방 웃는 겨? 나는 지옥을 다녀왔는데, 그리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한 마디로,

괜찮습니다?!”

이런 이런. 우리 모두는 의사의 무성의도 잊고, 우선은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선다.

 

보림아~!

할미 카드에서 월매가 나갔는디 시방 하하 웃음시롱 괜찮다고?! 선상님헌티 물어내라 헐 거나? 할매가 무신 갑부 사모님쯤으로 보이남?! 검사비가 한 두 푼 들었간디? 데끼!!!!!!! 그래도 암시롱 않다니께 봐줄까나? 이궁. 할미가 또 몇 년은 이쁜 우리 보림이를 더 볼 수 있게 생겼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