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반도체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155

며느님은 왜?- 어른노릇이 더 힘들어


BY 만석 2011-10-01

 

어른노릇이 더 힘들어


명절이 오면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다. 친정이 없는 며느님의 짠한 마음이 전해지지만 내색도 못한다. 내 큰딸이 명절에 다녀올 시집이 미국에 있어서 우리 집으로 올 때면, 그녀의 마음이 읽혀 눈치가 보였다. 올해는 큰딸 아이의 식구가 미국으로 출국 아니 입국을 했다. 하여 내 맘은 더 서늘하다만, 그래서 며느님은 친정 생각을 좀 덜 하려나. 


올 추석은 제가 맡아서 하겠다며 바쁘게 돌아치지만, 어찌 친정 부모님 생각을 하지 않으랴. 아들의 그녀를 생각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올 명절도 여전한 게 느껴진다. 올해도 추석이 지나면 일주일의 여행을 떠나겠다고 한다. 여름휴가를 쓰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음을 왜 진즉에 알아채지 못했을꼬. 혼자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리…쯔쯔쯔.


아내를 생각하는 아들이 가상하다. 동생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서 제 아들의 돌을 맞겠다고 입국한다는 바람에 여름휴가를 반납했었다. 그리고는 명절에 애쓴 아내와, 그녀 부모님 산소를 둘러 강원도까지 둘러올 계획이라 한다.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옥상에 올라 확성기를 틀어 온 동네에 알리고 싶다. 내 아들이 이렇게 속이 깊은  녀석이라고. 나도 딸을 둘이나 두지 않았는가 말이지.


한 주일을 비운다고 챙긴 짐을 보니 엄청나다. 바리바리 끌고 어깨에 메고 등에 짊어지고. 그러고도 며느님도 두 개의 가방을 들고 나선다. 모르는 이들이 보면 살림나는 줄 알겠구먼. 밥을 해 먹을 것도 아니니 반찬을 챙긴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아이들이 여럿이라 옷 보따리가 큰 것도 아닐 테고… 아, 산소에 쓸 과일이며 삼색을 아예 준비한 모양이로고.


정수기가 없던 그 옛날, 나도 아이들 넷을 데리고 유난도 떨었지. 끓인 물까지 챙기려니 짐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곳곳에 다른 옷을 입혀서 사진을 찍으려고 옷 보따리는 또 얼마나 컸던고. 또 네 녀석의 입맛이 제각기라서 밑반찬은 한두 가지였겠는가. 아들 며느리를 보내며 나도 다시 한 번 그때가 왔으면 싶으니, 이건 못된 시어미의 시샘인가.


복지관 강의가 있는 날이어서, 내가 먼저 집을 나섰기에 그들에게 배웅도 못했구먼. 집에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마저 돈다. 언제는 이리 적적하게 살지 않았던가. 그러나 적적한 내 마음보다도 차를 몰고 먼 길 떠난 세 식구가 걱정이다. 아들은 운전 중일 테니 며느님에게 전화번호를 누른다. 그러나 에구구~. 새로 장만한 손전화기의 번호를 모르네.


마침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며느님이 받는다.

“아침에 가는 걸 못 봐서….”

“휴게소 가면 전화하고…. 전화 좀 자주자주 해.”

“오빠한테 천천히 가자하고, 끼어드는 차는 전부 다 양보하라고 해라.”

걱정이 많으니 잔소리도 많아진다.


저녁엔 남은 식구들을 뭘 해서 먹일꼬. 밥 하는 일이 손에 설다. 그만큼 편했다는 이야기다.  냉장고 문을 여니 여느 때보다 더 써늘한 기운이 덤벼든다. 이~잉?! 속이 텅 비었구먼. 에구~. 멸치라도 좀 볶아놓지. 아니 시장이라도 좀 봐 놓지. 김치도 바닥일세. 과일이라고는 한 알도 보이지 않는구먼. 식용유도 없네? 어~라. 볶은 깨도 없잖아. 늘 상비해 있던 음료수도…. 우유도 한 병 없네. 당장 저녁을 어쩐다. 영감의 퇴근길에 마중을 해서 외식을 하자 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이런! 이런! 사다 먹으라는 겨? 굶고 있으라는 겨?! 생각이나 유추는 다음이고, 우선은 시장을 다녀와야겠다. 시장바구니를 챙기는데 내 손전화가 운다. 아들이다. 좀 전의 걱정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반가움이 앞선다.

“지금 막 휴게소에 들어왔어요. 아점 먹고 한숨 돌리고 가려고요.”

“오냐. 오냐. 천천히. 끼어들기 하는 차, 다 양보해라.”

“보림이 잘 지켜라. 저녁엔 추우니까 두꺼운 옷 덧입히고.”
“야간운전 위험하니 일찌감치 방 잡아라.”

으흐흐. 또 잔소리다. 아들은 그저,

“네.”, “네.”하지만, 그래도 어미는 걱정이 많다.


그새 달라진 건 없을 터인데,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선다.

‘시간이 없었던 겨?’

‘내가 너무 많은 걸 원하는 겨?’

‘욕심이 지나친 겨?’

‘이게 평소 며느님의 속마음인 겨?’

‘착한 내 며느님도 여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겨?’

‘아니, 내 아들도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겨? 짐 속에 좀 나눠 놓을 것들이 있던데.’


그래도 나는 당금 필요한 것들만 사들이지는 못하겠다. 그건 어른스럽지 못한 게지. 결국 한 달 필요한 것들을 챙기니 배달시킬 박스가 여럿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배달꾼은 금방 내 뒤를 따라와 대문 벨을 누른다. 냉장고를 채우고 나니, 것도 일이라고 힘이 든다. 누워야겠다. 무거운 짐을 들고 들어온 것도 아닌데. 이젠 다 살았구나 싶다.


갑자기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냉장고를 비우고 여행을 떠난 며느님이라면, 나는 존경받지 못하는 시어미다. 사랑받지 못하는 시어미인 게다. ‘얄미운 시어미’를 소리 없이 말하는 표현이기도 하겠다. 왜 그랬을꼬.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은 꼭 그러고 싶었던 걸까. 내가 뭘 잘못했는가 싶다. 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얼마나 부끄러운지….


존경은 아니어도, 적어도 사랑을 받는 시어미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지. ‘얄미운 시어미’란 상상도 못했으니…. 바보. 나는 정말로 바보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아니, 내색도 말아야 한다. 암. 그렇고 말고. 목숨같이 기른 내 아들의 사랑하는 아내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내 손녀 딸아이의 어미가 아닌가.


어이~ 며느님.

비워진 냉장고가 내 맘을 이리도 아프게 하는구먼.

어이~ 아들도 들으시게.

아버지가 자네들이 집 비운 엿새 동안, 막걸리를 아마 10병은 자셨을 겨. 자네들에게 말씀은 없었지만, 본가 산소는 들르지도 않고 처가 산소로 향한 게 섭섭하다고 하시네. 기왕에 떠난 여행이니 기분 상할라 싶어서 나도 말은 할 수도 없었네만.

 

그러나 큰 걱정은 마시게. 그래도 자네들 귀가하는 날엔, 아버지도 나도 아무 일 없는 듯이 보림이 안고,

‘어화 둥둥~’할 겨~.

어른노릇이 이리 어려운 것이라네. 그래서 시방처럼 아랫사람으로 있는 게 좋은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