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며느리 이야기2
참 조화로다. 두 며느리가 저리 꿍짝이 잘 맞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역시 젊은이는 젊은이와 맞는가. 사실은 일본의 막내며느리가 온다 해서 큰 걱정을 했다. 별로 사교적이지 못한 큰 며느리에게는, 더욱이 살림을 하는 그녀에게는 식구가 더 는다는 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을 터. 하여 혹시 내색을 하면 오는 사람들에게도 썩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니까.
그런데 그런 걱정은 내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둘은 그들만이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시댁을 섬기는 며느님의 입장이라는 것이 동지애로 통하는 것일까. 아니면…. 딱히 짚어지지는 않지만 아무튼 둘은 죽이 아주 잘 맞는다. 울그락 불그락 눈 붉히는 것보다는 보기에도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내 손자들 키우는 이야기며 해산하던 날의 이야기며 그날의 제 남편들 이야기로 끊이지 않는 이야기가 재미스럽다. 내 두 아들이 극과 극이어서 이야기에 흥미를 더하는 것 같다. 아직 미혼인 막내 딸아이까지 합세를 할라 치면 접시가 뒤집힐 지경이다. 여자가 셋이니까.
어느 한 며느리만 후대하거나 홀대하게 되지 않으려는 내 노력도 필요이상의 기우다. 하여 차라리 아예 자리를 피해주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좀 더 그녀들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그리고 자유스럽게 해 주고 싶다. 혹 시어미 때문에 더 진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끊길라 싶어서다. 내 손자들이 어려서 들쳐 업고 나서자 하기에도 아직은 바람이 차다.
“내, 산에 다녀와서 자장면 시켜주마. 점심 준비는 하지 말아라.” 이건 삼시 세끼 밤을 챙길 큰며느리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아주 먼 거리를 나서야 자장면을 사 먹을 수가 있다는 작은며느리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일석이조(一石二鳥)로 그녀들이 앗싸~!를 외칠 일이 아닌가 싶다.
아차차. 등산로 초입을 들어서며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직감한다. 내 산행이 너무 늦은 시각에 시작을 해서, 자칫하다가는 두 며느리와 딸아이의 점심이 늦어지겠다. 아침식사를 거르는 큰며느리와 젖어미인 막내며느리, 그리고 오후 강의를 나갈 딸아이. 돌아선다. 자칫하다가는 그녀들 모두를 배곯게 하겠는 걸. 발걸음을 재촉해서 집으로 go go.
“으~흠. 너무 맛이 있으요. 오랜만에 자장면 먹어요.” 짧은 한국어 실력의 그 표현이 재미있다. 내 막내며느리는 일본녀다. 상냥하기로 으뜸이고, 시댁과 남편에게 순종 잘하는 전형의 일본녀다. 아무렴 어때. 내 아들이 지극히도 사랑하는 그녀이니, 내가 조금도 탓할 이유는 없지. 과연 녀석의 말대로 날 실망시키지 않는구먼.
큰며느리는 하늘이 낸다 했던가. 실로 놀라운 우리 조상님들의 진언(眞言)이다. 제 아랫동서에게 하대하는 법도 없거니와 설거지도 안 시킨다. 그리 말고 서로 나누어 하라 하니, 제 집에 가면 일을 많이 할 거란다. 그건 그래. 입국하기 전 동서가 제일로 먹고 싶은 걸 알아내서는, 나와 영감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간 사이에 잡채를 해 내는 그녀. 것도 아기를 데리고. 엄마 맘에 잘 맞을 거라는 아들의 예견이 결코 빗나간 건 아니로구먼.
큰며느리는 시장엘 가야하고, 막내며느리는 은행에 볼일이 있다 한다. 뼈지게 마른 큰며느리와, 작은 키의 시어미보다도 더 작은 막내며느리가 대문을 나선다. 금지옥엽(金枝玉葉)의 내 귀한 손자를 하나씩 안고 업고. 좋다. 보기에 썩 좋다. 이제는 둘이 잘 조화를 이루라 하고 나는 좀 멀리 서야겠다. 이 며느리 눈치 보고 저 며느리 눈치 살피는 건 그만 두자.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저희들 몫이라 하자. 지나친 간섭이 그녀들에겐 속박일 수가 있다는 말씀이야.
나는 무슨 복에 이리 행복해야만 하는고. 누구 나보다 행복한 사람 있음 나와 보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나는 가진 게 많은 사람도 아니거니와, 먹을 게 없어서 배곯는 사람도 아니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남들에게 크게 빠질 만 하지도 않구먼. 건강에 너무 크게 자만했더니 조심하라고, 조물주는 내가 이겨낼 만큼의 시련을 주시지 않았는가. 그 또한 감사할 일이지. 더 큰 욕심은 내지 말자. 지금의 이 대로에 만족하자. 그러니 행복할 수밖에.
그러나 내게 단 한 가지 흠이 있다 한다. 지례짐작으로 너무 앞서 나간다는 게다. 그 지례짐작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게다. 설령 옳은 짐작이었다 하더라도, 너무 지나친 전개의 소설을 쓰는 게 문제라 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혼자 속을 썩이고 분노하고 서러워하는 건 하지 말란다. 아무도 내 속을 썩게 하거나, 분노하게 하고 서럽게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 맞다. 그래서 내가 이리도 행복하달 수밖에. 나, 시방 D지게 행복하다구~ ㅋㅋㅋ.
질투를 할 땐 하더라도 나는 아가의 누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