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시어미의 변(辨)
“엄마. 문 좀 열어주세요.”
아들이 잠겨진 현관문 밖에 와 섰는 모양이다. 들어서는 아들 손에 프라스틱 용기가 들려 있다. 보나마다 반찬통일 게다. 그랬다. 식탁 위에 얹고 뚜껑을 연다. 에구~. 가지나물, 호박나문, 삶은 브로컬리, 토막을 내서 껍질을 벗긴 오이의 중심에 양념 된장이 들어앉아 있다. 한 눈에 보아도 시어미를 위한 식단이다.
틀니를 새로 해 꼈더니 요새로 딱딱하고 질긴 걸 씹기가 힘들다. 더욱이 가게를 열고나서는 일이 바쁜 것도 아닌데 주방일에 부실해진다. 영감은 먹여야하니 긇이고 주물러서 식탁을 채우지만 맵고 얼큰하고 짭쪼름한 게 태반이다. 그이의 입맛에 맞추기 때문이다. 멸치에 되장을 끓여도 좋으련만 도통 나를 위해 시간을 내는 건 아깝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며칠 전.
예고도 없이 아들 네 식구가 왔었다. 그날 따라 양념도 하지 않은 새우젓을 달랑 올려놓고, 혼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들이 올 줄 알았더라면 그리는 먹지 않았을 것이다. 먹지 않더라도 이것저것 내놓았겠지. 아니, 아예 밥을 먹지 않고 굶었을 수도 있었겠다. 이렇게 부실한 밥상을 아이들에게 보이는 것은 내게 큰 마이너스다. 머지않은 훗날에 이런 대우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터이니 말이지. 아무튼 며느님에게 못 보일 꼴을 보인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시어미가 시답지 않은 일로 풀이 죽어 있는 오늘. 며느님이 아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보낸 것이다. 그런데 마냥 반갑고 고마운 생각만 드는 게 아니다. 역시 나는 완숙된 시어미는 아닌가 보다. 언젠가 양념한 고기를 무국에 넣으며,
“내 국엔 안 넣어도 된다.”했더니,
“어머니. 그러지 마세요. 왜 아버님 국에만 고기를 넣어요.”하던 일이 생각난다.
보림아~!
할아버지는 입이 짧아서 자시는 게 정해져 있쟎여, 할미는 암 거나 잘 먹으니께 한 끼니라도 할아버지 더 드리려구 아끼는 것이재~. 할아버지가 아실거나? 오히려 할아버지보다 니 에미가 내 편인 거 같구먼 ㅎㅎㅎ. 그라고, 할미도 저~ㅇ 먹고 싶은 거 있으믄, 때로는 혼자서 몰래 사 먹기도 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