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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가는날


BY 햇반 2004-10-23

바닷가에서 태어나 강원도 산골을 누비며 살았던 십여년의 세월
내 기억 속에서 그 시절을 통 털어 보아도 노을처럼 발그래한 신비스런 단풍을
만나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무지일까
무심함일까

 

눈을 뜨면 바다...
어릴적 나는 그랬다
걷다보면 부딫히는 산과 물
눈을 들어 먼곳을 보면 끝없는 이어지는 수평선이거나 지평선
그것들은 본래부터 오랫동안 자동적으로 내 이웃처럼  함께 모여사는 풍경이었다
지루한 자연은 변화도 없어 보였고 어쩌다 봐도 지겹기만했다
망망한 대해를 바라보다가도 첩첩히 둘러쌓인 자연속에 갇혀 있다가도

나는  자연보다는
사람들이 많은곳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어릴적 자연은 내게 지질한 노인내의 잔소리처럼 낡고 지루했다

 

남편은 언제나 내게 자연의 순리대로 살라한다
산이 좋고 강이 좋으니 자연을 따르라 하며 자신과 동행하기를 원한다
나이 한 살 더 먹은 자신의 말을 듣는게 유익할 터이니 함께 산으로 들로 나가기를 권한다
나는 젊기에 사시사철 펼쳐지는 자연의 향연에 초대 받는게 부담 된다며
혼자서  경로당 잔치 즐기듯 다녀오라고 떠밀어 보기를 여러차례....

 

어제 모임에서 야외행사가 있는날이다
봉평가는날 아침의 기대는 가을햇살처럼 높고 풍요롭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은 "메밀 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다
때 지난 메밀밭에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안개다발을 연상시키는 메밀꽃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폐교로 만든 전시관 "평창무이예술관"에는 다양한 조각품과

문인들 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가 있다
일찌기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돌며 전업작가로써 문학에 심취하고 교수생활을 하며
모더니스트의 전형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 그는 젊은 나이로 죽기 얼마전 고향을 찾아
그의 대표작들을 쏟아낸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고향이다
고향은 그에게 매 작품마다 풍요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대표적인 그의 작품 "메밀꽃필무렵"에서 봉평을 만날수 있다
장돌배이로 살아가는 주인공과 또 다른 젊은 장돌뱅이와 여정에서 심상치 않은 그들의 인연

그에게 있어 그 당시 현실은 일제강점기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어디에서도
이데올로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자연속에서 그의 모든것은 이루어진다
그 마음은 어떤것일까
하고 싶은 말들을 드러 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현실
그 시대적 상황이 작가들에게 있어 또 다른 열정이 생기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한결같다
그래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내가 스스로 깨달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끝없이 나를 어루만지고 품어주기에

그러한 자연속으로 우리는 동화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는 남편의 말을 따라야겠다
그에게도 아내와 함께 자연을 사랑할 권리가 있음을...
함께  동행하여 이제는 산과 들을 벗삼아 나보다 더 자연을 아끼는
그에게 좋은 벗이 되어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