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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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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BY 박예천 2014-08-19

                                

                                             뒷모습

 

 

 

 

 

일요일 저녁부터 남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여름손님들이 연휴 막바지까지 찾아와 머물고 가는 통에 지쳐서 그런가보다 했다.

거실과 방, 이층 구석구석을 혼자서 청소했으니 몸이 피곤하겠지.

교회 간다는 핑계로 이불이며 부엌그릇들을 남겨두고 나는 쏙 탈출 해버렸다.

점심 때 돌아와 보니 집안에 반짝반짝 윤이 난다.

아내가 돌아오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곤하게 오수(午睡)에 빠져있다.

개수대에는 냄비가 거꾸로 반쯤 물에 잠겨있고, 라면 몇 가닥이 퉁퉁 불어 떠다닌다.

혼자 먹는 식사는 어제나 때우기 식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는지 쳐다본다.


 “언제 왔어?”

 “으응, 좀 전에. 왜 라면을 먹은 거야. 뭐 다른 거 해줄까?”

 “아니, 생각 없어!”


목소리에도 힘이 없다.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남편이 하는 말에만 경청하고, 먼저 묻거나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이 그를 편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그의 가슴과 입술이 열리고, 나는 그 때 성심 성의껏 들어주며 맞장구 쳐주면 된다.

속으로 짐작해보건대, 늙으신 시아버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의 모습을 대하고 오는 날이거나, 배웅해드리고 오는 순간에 보였던 무거운 기운이 남편을 감싸고 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빗속에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시겠다며 버스에 오르셨다.

 

자꾸만 쪼그라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아들의 마음이 옥죄고 쓰렸을 것이다.

침묵하는 남편 곁에서 나는 가만히 지켜봐주며 기다리는 중이다.

 

어느 날 말했었다.

 “몰랐었는데, 내가 예전 아버지 나이를 먹어보니까 아버지의 맘이 읽혀진다!”

자신의 청년시절, 중년이었던 아버지를 이해하며 남편은 그 아버지의 나이로 가고 있다.

피부의 기름기가 빠져 푸석해지고 등이 휘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처연하였었다.

시동생, 시누이네 모이는 자리에 함께 하자는 의견에 오셨다가 서둘러 혼자 떠나시는 터미널에서 남편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았을까.

 

밤이 깊어가도록 이어지는 침묵이 미안해서인지 어렵사리 한마디 내민다.

 “아휴! 벌써 개학이라니, 싫다!”

 “그러게, 한 달이 금방 가버렸네. 앗싸! 나는 내일부터 방학이다!”

분위기 전환해보겠다고 내민 대답에 또 다시 답이 없다.

 

그렇게 한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출근준비를 하는 남편의 기분이 전날과 다를 게 없다.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먹고는 옷을 챙겨 입는다.

 “구두라도 미리 깨끗이 닦아 놓을 걸 그랬나?"

내 말에 심드렁하게 말한다.

 “괜찮어!”

신발을 신으려고 현관 앞으로 가는듯하더니 갑자기 우뚝 멈춰 선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숨처럼 내 뱉은 말.

 “휴! 학교 가기 싫다!”

예전 같았으면, 잔소리꾼 마누라로 돌변해서 따발총을 쏘았을 거다.

당신이 애들이냐, 학생도 아니면서 뭔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주방문 입구에서 멍하니 바라본 남편의 뒷모습이 시아버지와 겹친다.

측은하다는 전류가 스멀스멀 가슴속에서 복잡하게 합선이 되고 있다.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어서 나는 말없이 다가가 뒤에서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힘들만도 하지. 고등학교를 25년이나 다녔는걸.

남들은 3년이면 졸업을 하는데 말이다.

 

나이 사십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지만, 뒷모습에 그려진 마음결은 어떻게 가리고 살 수 있는지.

속일수도 감출수도 없는 속내가 뒷모습에 각인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할 수만 있다면, 죽는 날까지 남편의 뒷모습 훔쳐 읽은 사실을 말하지 않을 거다. 가족들 앞에서 만이라도 당당하고 큰 사람이라고 천 날 만날 외쳐줄까 한다. 그것이 학교가기 싫다는 남편의 등을 떠미는 아내의 구차한 주문이기 때문이다.

 

당장, 졸업시키지 못해 당신한테 많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