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사랑
한참 통화중이었는데 잠시만 기다리란다.
부드럽게 이어가던 방금 전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손자들을 향해 호통 치는 설악동 오권사님.
쩌렁쩌렁 수화기너머 할머니가 엄청나게 뿔났다.
“야! 이느무 새끼들아, 언능 안 나가? 혼나볼래? 엉?”
“왜 그러세요?”
“아휴, 말도 마! 조용하게 통화하려고 딴 방으로 왔는데, 저 녀석들이 여기까지 따라와서 싸우고 장난질이잖어!”
말인즉, 아들만 셋 키우는 딸이 수원 사는데 그중 위로 외손자 둘이 방학을 맞이하여 할머니 댁에 놀러왔다는 것이다.
돌이 채 되지 않은 막내는 엄마 곁에 있고 형들만 외가에 온 거라 한다.
평소 노인네 두 분만 살던 집에 아이들소리가 들려 사람 사는 것 같겠지만, 없던 일거리가 생겨 힘들다는 푸념이다.
그래도 말끝 마다 꼭 빼놓지 않는 것은 손자들 자랑이다.
기발한 행동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웃게 했다느니, 나이답지 않은 야무진 말솜씨가 대견하다면서 말이다.
개구쟁이들의 난리법석을 제지하는 일이 때론 힘에 버겁기도 하겠지만 손자들 재롱에 금세 스르르 녹는 모양이다.
“녀석들 다 도망갔어! 내가 묘약을 썼거든.”
“그게 뭔데요?”
“성 추행범이 됐다구. 말 안 들으면 꼬추 만진다고 했어. 그걸 젤 싫어해. 막 도망가는 거 있지. 히히히!”
얘기를 듣다보면 어째 손자들보다 할머니가 더 짓궂은 장난꾸러기로 여겨진다.
내게도 외가가 있었지.
방학이면 한 보따리 옷을 챙겨들고 삼남매가 놀다 오던 곳.
남한강 줄기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시골마을이다.
어디 우리 삼남매뿐이랴. 오남매이던 어머니의 형제자매 자손들이 전부 집합되던 방학이다.
외사촌, 이종사촌, 고종사촌들이 바글바글 외할머니 댁에 모였다.
지금생각하면 참으로 염치가 없을뿐더러 눈치코치도 없는 철딱서니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방학식과 동시에 출발했다가 개학이 낼 모레인 날 돌아왔으니.
선물꾸러미하나 들고 가지 못했건만 돌아올 즈음이면, 할머니는 새 옷이며 새 가방을 챙겨주셨다.
집에서는 누려볼 수 없었던 호사였다.
끼니마다 맛깔스런 음식들도 맘껏 먹을 수 있었고, 특히나 외할아버지의 구성진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약주라도 한 잔 드신 날엔 무릎에 날 앉히고는 ‘아이구..., 이느무 새끼...이뻐 죽겠네. 허허허!’ 하며 따가운 수염을 비벼대셨다.
친가에선 아들인 두 동생만 귀여움 받아서인지, 유독 외손녀를 아끼시는 외할아버지 품에 안겨 응석둥이가 되곤 했다.
지난 해 할머니 장례식 때, 긴긴 방학동안 시조카들 치다꺼리를 해주셨던 막내외숙모가 조문 차 오셨다.
오십이 코앞인 조카 앞에서 아직도 수줍은 미소를 보이는데, 나이는 나 혼자 다 먹었는지 외숙모는 예전처럼 곱기만 하다.
넉살 좋게 어린 시절 얘기를 꺼내는데, 상복을 입고도 낄낄 웃음이 나왔다.
“외숙모! 그 시절 우리들이 얼마나 귀찮았을까요. 아궁이에 불 지펴서 밥 때마다 힘들었을 텐데..., 거기다 저는 오줌싸개였잖아요!”
“아녀, 힘들지 않았어!”
다소곳한 말투는 회갑지난 연세를 읽을 수 없게 했다.
세탁기도 없었는데 한겨울 오줌 싼 이불까지 빨게 했으니, 대단한 철면피가 아닌가.
엊그제 친정에 전화를 넣었더니, 마침 외할머니 기일이라 서울 큰외삼촌 댁에 다녀오셨다는 어머니.
“떡하고 도토리묵 좀 쑤어서 가져갔더니 맛있다고 다들 좋아하더라!”
지난 날 오줌싸개 외손녀의 신세를 떡과 묵 한 점으로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내 어머니의 어머니인 외할머니 기일 맞아 친정나들이에 싸 갔다는 보퉁이 얘기가 흡족하기만 했다.
친손자들과는 별도의 사랑이 외손자에게 향하는 것을 본다.
예전 울 할아버지는 ‘외손자를 귀여워하려거든 차라리 방아깨비 귀여워하라는 말이 있느니라.’며 내 아이들 예뻐하는 어머니에게 핀잔 주셨다.
성씨 다른 외손자가 뭔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허나 친손자는 내 자식 아닌 며느리가 낳았고, 외손자는 내 딸이 배 아파 낳아서 더 애틋한 것이었을까?
울 시어머니의 각별한 외손자 사랑을 지켜보노라면 이해가 되는 듯도 하다.
그나저나 설악동 오권사할머니는 오늘 하루 손자들과의 전쟁을 잘 제압했을까.
극성맞은 녀석들 일찍 잠들게 하려고, 낮이면 외할아버지 일하는 산에 데리고 가 뒹굴며 놀게 한다는데.
친가, 외가 조부모님 사랑 충분히 누려 본 나는 기똥차게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는 생각에 으쓱해진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추억의 한 공간에 갇힌 분들이지만, 어깨 움츠러드는 겨울이면 더욱 그립기만 하다.
모락모락 매캐한 나무 탄내가 금방이라도 밥 때를 알려줄 것만 같은 어스름 저녁.
멀리 사라진 기억조각들만 가슴속에서 훨훨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할미가 진짜 보고 싶다!
2013년 1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