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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들에게 고(誥)함


BY 박예천 2010-06-24

 

 세입자들에게 고(誥)함



그렇다. 여긴 엄연히 내 집이다.

법적인 소유자로 내 이름 석 자가 문서에 기록되어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땅히 주인으로서의 권리행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여, 나는 감히 내주거지에 무단침입 일삼고 건물훼손 및 주택미관 해치는 일부 세입자들을 향해 경고하는 바이다.

아래 내용에 해당된 세입자들은 작금의 벌어진 상황 인지하고 대책을 세워주기 바란다.

긍휼한 마음이나마 베풀어 그동안 기거했던 집세를 감면 해주고자하니, 며칠상간으로 현 거주지에서 떠나주었으면 한다.


첫 번째, 왕개미일가에게 고하노라.

일찍이 너희의 근면성실함을 알고 있던 터, 자녀들에게 교훈으로 예화삼곤 하였다.

땀 흘려 일하고 저축하는 것만이 가난을 후대에 물려주는 수치를 면하는 것이라 가르쳐왔다. 개미처럼 부지런 하라, 철저한 미래계획을 세워라. 이것은 생활구호가 되어 우리 인간들 삶을 지배해 왔었다.

허나, 너희 개미들이여!

참으로 몰지각한 행동을 일삼으면서까지 재물만 모으고 있으니, 이기적인 모습에 기가 찬다. 인간들의 영역을 무참히 훼손하면서 얻어낸 경제적 축적이 과연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

식량을 운반할 것이라며 사방 거칠게 파놓은 흙더미로 인해 나의 잔디밭이 짓밟히고 뭉개졌다. 땅속줄기로 퍼져가던 잔디 뿌리가 너덜너덜 밖으로 삐져나와 말라죽어갔다.

차마 살생은 죄라며 어금니 앙다물던 집주인 남자는 결국 참지 못하고 파리약까지 분사하는 범행을 저질렀다.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을 실행에 옮긴 셈이다.

목숨을 내건 주인의 응징에도 굴하지 않고 너희들은 일말의 양심조차 내비추지 않았다. 오히려 집단이주를 감행해 꽃밭 경계용으로 세운 나무판자위에 새로운 물류이동노선까지 설치했다. 보란 듯이 최첨단 행로 개발했다며 꽃밭을 쑤셔놓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세입자들에게 전한다.

쥐며느리, 파리, 모기, 꿀벌들아! 귀 있거든 들어라.

특히 혐오감 주는 생김새로 음지에 숨어있다 천연덕스럽게 나타나는 쥐며느리 떼의 뻔뻔함을 어찌 말로 할까. 푸성귀 거둘 때마다 꽥꽥 질러대는 나의 비명을 환호성인양 착각하다니.

집을 비우라고 외친지가 언제부터인데 묵묵부답 그러고 있는지 속이 터진다.


파리와 모기들도 그렇다.

너희들의 입주를 단 한 번도 허락한 적이 없건만, 어찌하여 마당이나 배회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집안에 들어오는 것이냐.

무슨 시식코너도 아니고 애써 차려놓은 음식을 기미상궁마냥 맛보는 무례함이라니.

불결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을 저질러 놓고도 미안한 기색이 없다. 소리치며 파리채를 휘둘러대는 주인여자 앞에 의미 없이 손바닥만 죽어라 비벼대고 있는 꼴을 본다.

진정 네 잘못을 뉘우치고 하는 짓이냐.


모기 너도 들어라!

이미 우리 아이들은 모든 예방접종 말끔히 끝낸 것을 모르느냐.

환한 대낮 두고 컴컴한 밤에 침질 해대는 이유를 모르겠다.

어떠한 의료기관에서조차 확인되지 않은 너의 돌팔이침술을 믿을 수가 없다.

또한, 침을 맞고 잠들어야 할 만큼 우리가족들이 불면증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네 무차별적인 공격의 침들로 인해 단잠 빼앗기는 숱한 밤들이 더 많았음을 아는가.


꿀벌들도 마찬가지다.

내 마당 안에 염치없이 왔으면 네 할 일만 하고 나가라.

암꽃 수꽃 정답게 혼인시켜주고 단꿀 뽑아 챙기며 열매 맺게 할 직분 다하면 그만이다. 가뜩이나 맘 약한 내 딸아이 너만 보면 기겁한다.

얘긴 들어 대충알고 있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절대 쏘지 않는다고 말이다.

너는 존재 자체로 공포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기만 해도 내 자식들은 방안에서 꼼짝을 않는다.

갈수록 아들 녀석의 배가 볼록 나오며 비만지경에 이르러, 행동반경이라도 넓혀 줄 셈으로 이사를 했다.

너의 출현으로 인해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책임져라.


명단에 없던 여러 새들 무리도 이참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이토록 침 튀기며 비장의 발표하는 지금도 정숙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짹짹거리는 구나.

우리집 옥상은 필요에 따라 농작물 건조장으로 사용할 요량이었다.

새떼들이 비상착륙을 일삼는 활주로가 되는 일, 사업계획서에 전혀 없는 내용이다.

좋다. 오며가며 쉬어 갈 수는 있다. 알고 보면 나도 비정한 인간은 아니다.

북향집 할배와 개자식들(?)의 부모들도 이해하고 사는 마당에 미물인 새들을 포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함부로 내갈기지 말아다오. 나는 이미 거대한 배설물들에 질린 사람이다.

옥상에서 나불거리며 하강하다가 왜 아무데나 발사를 하는 것이냐. 시원하게 싼 네 뱃속은 편해지고 뒤처리 내 몫이니 억울하고 분하다.


이런저런 사유들로 인해 나는 너희 무단세입자들을 향해 공포하노라.

사흘간의 말미 줄 것이니 내 집에서 퇴거해 주기를 바란다.

주인으로서 명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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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문을 전해들은 입주자대표들이 작성한 문서가 드디어 오늘아침 동해바다통신으로 도착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원길 앵두나무집 옆에 사는 오동통한 인간여자의 통보, 잘 들었다.

그대가 서두에 밝힌 ‘법적인 소유자’라는 말에 심히 유감스러움을 표한다.

법이라는 것은 대체 누가 만든 것이냐.

인간들 자체에서 구성해 놓고 너희들끼리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 세상엔 법이라는 말조차 없다.

그리고 분명히 알아둘 사항이 있다.

오동통한 인간여자 네가 태어나기 수 억만 년 전부터 이곳은 우리 땅이었다.

자손만대 이어가며 유지해가려던 자연그대로의 터전이었다.

우리 공간에 허락 없이 들어와, 본질의 순수를 훼손한 것은 너희들이다.

너의 어이없는 발표를 듣고 협상할 가치조차 없다 사료되어 우리 쪽에서 내린 결론을 밝히는 바이다.  

조속한 시일 내에 대대손손 간직하고 누려온 우리 땅에서 집을 빼주기 바란다.

당장 집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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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길 그 여자가 벌떡거리던 가슴을 쓸어내린다.

졸지에 세입자 꼴이 되어 각종 주인(?)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지금이다.

 

내쫓기지 말아야지.


 

2010년 6월 24일

주인(?)들 눈치 보는 한낮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