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습 찾아와라
야금야금 빼내올 것이 이제는 없다.
헛간이며 뒤란까지 눈을 부릅뜨고 돌아봐도 건져질 물건이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슬쩍 빼내어 엿 바꾸어 먹은 일이 열손가락 다 꼽아도 모자란다. 반쯤 들어있던 비료를 함지박에 쏟아놓고 빈 포대 만들어 갖다 주기도 하였다. 뒤축이 조금만 달아도 못 신게 된 것인 양 고무신짝도 여러 번 내밀었지.
아지랑이 모락모락 신작로 입구에서 피어오르던 어느 해 봄날.
삽살개도 꾸벅꾸벅 졸고 있을 마릿골 공터에 찰찰 가위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기차역전 사는 엿장수 허씨아저씨가 등장한다는 알림뮤직이다. 대단한 확성기 없고 이장님의 안내말씀 스피커가 아니더라도 쇳소리 마찰음은 정확하게 귓전을 때리는 법.
일곱 살 내가 일찍이 터득한 소리이기도 하다.
언제나 범행엔 공범이 있어야 스릴이 있다. 나보다 여섯 살 더 먹은 막내고모의 말은 황금법률이다. 거역했을 시 응분의 조치가 있을 만큼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ㅇㅇ야! 뒤꼍에 가면 말이지, 너 할아버지 쟁기 알지? 거기 밑에 쇳덩이 있어 그거 허씨아저씨 갖다 주고 엿 받아와라!”
“응! 알았어. 근데, 몇 개 달라고 해?”
“그냥...., 많이 달라고 해. 그리고 그거 못 쓰는 쇳덩이라고 꼭 말해야 돼. 꼭!”
고모가 ‘꼭!’이라는 말에 힘을 주며 말한다. 입 오므리고 인상구기며 하는 그 말. 코밑 인중에 잔주름이 가득 생긴다.
바쁜 농번기철 어른들이 죄다 논 삶고 밭 갈러 가셨으니, 달랑 빈 집에서 막내고모는 가락엿의 유혹 못 이겨 선량(?)하기만한 조카를 꼬드기고 만 것이다.
고사리 손으로 쇳덩이를 챙겨든다.
넓적 가위 찰찰 거리던 허씨아저씨 앞으로 삐죽한 쇳덩이를 내밀었다. 헌데 표정이 얼씨구나 좋은 색이 아니다. 고개를 갸웃하는가 싶더니 한마디 한다.
“이거 정말 못 쓰는 거여? 나중에 딴 말 해도 다시 안 바꿔 준다!”
“맞아요! 울 고모가 못 쓰는 거래요!”
허씨가 안 바꿔준다는 말에 재확인을 받으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 멀쩡한 물건을 가져왔다가 어른들께 혼쭐이 나서 되 바꾼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엿으로 줄까, 비누로 줄까?”
당연한 걸 물어보는 허씨다. 아무렴 내가 비누를 달라 하겠는가.
가락엿 서너 개를 들고 사립문 안으로 들어오자 고모가 얼른 받아 챙긴다. 한 개만 먹고 떨어지라는 식으로 나에게 주고는 냅다 나가버린다. 이용가치가 떨어진 나는 손에 쥐어준 가락엿이 녹을까 닳을까 차마 씹지도 못하고 아끼며 빨아먹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외양간 누렁이 암소가 질펀히 퍼져 앉아 되새김질에 여념이 없다. 갓 낳은 송아지와 얼굴 부비는 걸 보니 오늘은 녀석의 특별 휴일인가보다.
할아버지는 흙물이 잔뜩 들어 벌겋게 된 옥양목 잠방이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쇠망치를 두들긴다. 가끔 나사를 풀고 조이고 한다. 아까부터 마당 한가운데 쟁기를 세워놓고 낯익은 쇳덩이들 떼었다 붙였다 농기구 점검시간이다.
잠시 뒤란을 다녀오는가 싶더니 얼굴에 물음표가 잔뜩 붙어있다.
말끝마다 자꾸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를 붙이며 허겁지겁 헛간문도 여닫고 행랑채 마차 간에 연장통을 열기도 한다.
몇 번이나 집 안팎을 살피다가 더 이상 참지 못 하겠다는 얼굴로 소리친다.
동네사람 다 들어야 마땅하다는 크기의 목소리울림이었다.
“누가 뒤란 굴뚝 옆에 세워 둔 보습 못 봤냐?”
툇마루에 앉아 공기놀이하던 어린손녀는 용의자목록에서 과감히 제외시킨 채 그 외 다수의 가족들을 향해 목청껏 외친다.
그날, 내가 팔아먹은 쇳덩이가 쟁기 보습이라는 사실만 알았던들.
막내고모의 만행을 낱낱이 고해바쳤을 것이다. 모르는 척 안 그런 척 딴청 하는 고모를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동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장조카를 얼마나 수족같이 부려먹었는지 만천하에 까발릴 수 있었던 금쪽같은 순간을 놓쳐버린 것이다.
천진난만, 순진무구한 영혼 맑기만 했을 일곱 살 조카를 범행의 도구로 가차 없이 이용했던 막내고모.
훗날 그 사건 회상시켜주자 시치미 떼며 청문회 나온 정치인들 흉내를 낸다.
“야! 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얘는 별걸 다 말하네!”
음력 삼월스무날 할아버지 생신이 곧 돌아온다.
쟁기보습이 겨우내 마른 밭에 흙길 내었듯이 할아버지도 거친 집터에 새길 내셨다지.
보리쌀 서너 말과 솥단지 한 개, 수저 몇 벌 지게지고 살림나셨다 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길 가신지 다섯 해가 되어간다.
가락엿 쭐쭐 단물 빨던 손녀딸 생일도 삼월스무날 당신과 같은 걸 잊지 않으셨겠지.
아! 봄날이면....., 해마다 음력 삼월이면, 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뵙고 싶어 가슴이 펄렁펄렁 깃발 질을 해댄다.
금방이라도 내게 호된 소리 외치실 듯.
보습 찾아와라, 냉큼!
2009년 4월 9일
돌아가신 할아버지 지독히 그리운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