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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 원점


BY 박예천 2009-01-02

 

원점

 


남편의 학교가 방학하니 크게 선심이라도 쓰듯 나에게 특별휴가를 준다고 한다.

자신은 보충수업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며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산뜻하게 다녀오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꼭 데리고 가라하니 혼자 훌훌 떠나는 꿈은 아예 꾸지도 말아야한다.

그래도 좋았다.

거대한 일상탈출을 시도하게 된 나는 며칠 전부터 갈 곳을 정하느라 고민하고 있었다.

일차적으로 친정 행을 선택하고 결혼 전 근무했던 유치원에도 다녀오리라 계획을 세웠다. 막상 며칠 집을 비우려니 할 일이 태산처럼 눈앞에 다가온다.

작년겨울. 

사나흘쯤 혼자 여행을 떠날 적에도 지금처럼 이것저것 챙겨 놓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남편은“집 떠나는 여편네가 보리방아 걱정 하냐?”면서 알아서 다 할 테니 맘 편하게 다녀오라는 말을 했다. 걱정은 가시지 않아 집안일을 평소보다 더 많은 양으로 한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불빨래를 시작으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 않을 사람처럼 밑반찬 해놓고 남편의 셔츠도 여벌로 다림질 해 옷걸이에 걸어둔다. 속옷과 양말은 찾기 쉬운 욕실 앞 상자에 담아 놓았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보이는 이런 행동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인지 아니면 포기한 것인지 부산을 떠는 나를 향해 남편은 일언반구 말이 없다.

고집 센 내 성격을 알기에 멀찌감치 피해서 지켜보고만 있다.   


일단락으로 집안일 끝내놓고 하루 전에 떠날 준비를 한다.

간단하게 아이들 옷 몇 가지와 속옷만 담으면 될 것을 쑤셔 넣다보니 가방의 배가 자꾸 불러온다. 두 아이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 할 것이라고 큰소리 쳤는데 이렇게 짐이 커졌으니 난감해 진다. 꼭 필요한 물품만 골라 넣었건만 풍선이라도 들어 간 걸까.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는 동생이 마침 방학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미리 접한지라 친정으로 전화를 건다.


피서인파로 도로사정 염려한 동생은 새벽 세시 넘어 친정을 출발했고 오전 일곱 시쯤 속초에 도착했다.

출가외인인 주제에 아직도 장성한 동생을 와라 가라하며 부려먹으니 나는 참 밉살스러운 누이다.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가방 몇 개를 차에 실어주며 조카들까지 자리 잡아주고 동생 차가 속초를 벗어난다.

함성 지르며 여행기분을 느끼기 위해 내 목소리는 한 옥타브 높은음으로 공중분해 되고 있었다.

자동차 소음 탓에 동생이 못 들을까 고조된 음성은 거의 고함에 가까워진다.


한심스런 여자 같으니.

아이들 줄줄이 달고 뭐가 그리 좋다고 나불거리는지 모르겠다.

죽어도 엄마 떨어져 잠들지 못하는 아들은 혹으로 달고 딸아이는 원주 시댁에 맡기게 되니 조금은 짐이 가벼워지려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새로운 공간으로의 발걸음은 모든 피곤을 잊게 한다. 오래 전 꿈꾸던 일상탈출이 겨우 이 모양새를 한 것에 조금은 불만이지만 그저 내 살던 곳을 떠난다는 한 가지 사실에만 벅차있기로 한다.


사실은 남편과 잠시 떨어져 지내보고 싶었다. 골탕 좀 먹어보라는 음흉한 속셈이 내재되어 있음을 남편에게 들키지 않으려 태연자약했다.

퇴근하여 집에만 들어오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서재에 배우처럼 길게 드러눕는다.

무슨 영화촬영이라도 하려는 폼이다.

거실을 오가며 정신없이 바쁜 나를 어쩌다 남편이 부를 때는 절대로 다급한 일이 아니다.

“얼음 있나? 냉커피 한잔 타 와라.” 이런 것이거나 “이방에 휴지 없다 가져와라” 그뿐이다.

차라리 나를 소리쳐 부르지 말고 방안에 버튼 한 개 만들어 놓고 원할 때만 누르라고 하고 싶다. 부르는 목소리에 희망찬 발걸음으로 달려가다 실망하여 돌아오는 내가 싫어서라도 그렇게 할 걸 그랬다.

어디 나 없는 동안 잘 살아보라지.

이번의 외출이 아내의 부재를 절절히 실감하며 반성의 계기로 삼아보라는 원대한 뜻 섞여 있다는 것을 남편은 모를 것이다. 

뼈저리게 몸소 체험하고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들로 아내의 어깨에 잔돌들을 올려놓았는지 알게 하고 싶었다.


딸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날개를 단 듯 가벼운 몸짓으로 친정으로 향한다.

출발하기 전에는 여러 행선지를 계획했었는데 막상 친정에 도착한 그날부터 몸이 흐느적거리며 잠 속으로 빠져든다.

꼼짝하기가 싫었다.

겨우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에만 몸을 일으켰을 뿐 하루 종일 잠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머릿속으로는 엄마 도울 생각으로 가득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엄마, 나 어쩌지? 도와드려야 하는데 자꾸 잠이 쏟아져요.”

“다 그렇더라. 나도 예전에 친정가면 잠만 쏟아졌어.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걸 어쩌겠냐? 쉬어라.”

도대체 이렇게 깊은 잠을 얼마 만에 자보는 걸까. 꿈을 꾸다 깨다하면서 이틀을 꼬박 잤다. 먹는 일도 귀찮아지고 몇 날이고 잠 속으로만 빠져들고 싶었다.


밤에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남편에게서 오는 전화.

잘 먹고 입고 다니는지 사실은 조바심 나게 궁금했지만 처음 먹은 마음대로 절대로 먼저 전화를 하지 않았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퉁명스런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주로 아이들 잘 지내느냐는 평범한 말만 남기고 끊는다.

이제 슬슬 혼자 지내는 일이 힘들어 질 것이고 빨리 집에 좀 오라는 말을 듣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이라 여겨져 자꾸 웃음이 나왔다. 

못이기는 척 속초로 갈까. 아니면 퉁겨 보듯 며칠 더 버텨볼까 하는 궁리로 잔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집을 떠나 홀로 여행하는 즐거운 상상으로 기대를 해오던 나는 엄청나게 즐거운 기분일줄 알았다. 절대 아니올시다 이다.

당일 밤부터 남편의 식사와 빨래 청소 등이 걱정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입으로만 괜찮다고 외치며 둔해지려 하는데도 온 신경은 속초로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하나에서 열까지 내 손이 거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이제는 내가 초조해지고 있었다. 다음날 전화에서도 남편은 마음껏 쉬다오라고 말한다.

나 몰래 집에 우렁각시라도 숨겨놓았는지 오히려 편안한 목소리다.

아침에 알람시계를 맞추어 놓아도 일어나지 못하는데 제대로 학교는 가는지 다시 걱정의 잔가지들이 고개를 내민다.


드디어 참지 못한 내가 전화를 한다.

이럴 수가.

아내 없는 틈을 타서 마음껏 해방감을 맛본 이는 바로 남편일 줄이야.

삼척 사는 친구를 만나 일박으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다.

아이들 전부 나한테 맡기고 가뿐히 떠난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다.


부랴부랴 일정을 단축하여 속초로 향했다.

집안 꼴이 엉망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나의 추측은 빗나가고 오히려 아이들과 뒹굴 때 보다 더 깔끔해져 있었다.

남편표정은 덤덤한데 괜히 나 혼자 반가운 양 들뜬 목소리로 명랑해진다.

별수 없이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와 퇴근하는 남편이 좋아할 두부전골을 준비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지치고 곤한 육신을 반겨준 나의 원점이 그대로 있어주어 고맙다.

그래. 이곳이 바로 익숙하고 편한 내 자리였구나.

집안 곳곳에 묻어있는 나의 손때들이 고물거리며 밀려나와 반기는 것 같아 쳐다본다.

언제든 탈출했다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2003년 9월 13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