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나를 살리다
속초사람들이 말했다. 십년 만에 오는 더위라고도 했고 머리털 나고 처음 당해보는 폭염이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 올라가 봐도 이토록 극심한 더위를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나는 후자를 택해야겠다. 아무리 여름태양이라 지만 며칠씩 이글거리다가도 잠시의 누그러짐이 있었고 펄펄 끓는 용광로 기운도 밤에는 잘 틈을 주었었다. 헌데 이번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다. 연일 기상예보에서는 그날의 최고기온을 알려주었고 막상 수치로 확인되는 순간엔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이 대견할 정도이다. 의복과 식량도 떨어지고 교신마저 두절된 무인도에서 처절히 버티는 전쟁용사가 바로 나인 듯 했다. 실로 더위와 싸우는 나의 자세는 어느 훈련장의 병사와도 다를 바 없었다. 지구 온난화 현상이니 해서 이미 세계적으로 이상기온을 보인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건만 막상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속초 땅에서 불볕더위를 만나게 될 줄이야.
불과 한 달 전도 채 안 되는 그 어느 날. 초여름 극성더위를 푸념하는 친구를 비아냥거린 적이 있다. 그늘에 있으면 오스스 소름이 돋을 정도로 한기가 느껴지게 속초가 시원하다 말했으며 어찌 너는 그런 곳에서 여름 지낼 생각을 하느냐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수화기 너머로 좋겠다 부럽다 감탄사를 늘어놓는 친구 목소리에 더욱 핏대 세우며 선선한 기온을 자랑했다. 선택된 부류의 인간이라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착각에라도 빠졌던 것일까. 후텁지근한 날이 계속되어 숨이 턱에 차도록 헉헉대고 있노라면 불쑥 친구얼굴이 떠오른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인 것을 뭐 그리 자신만만했느냐고 확성기에 입을 대고 외치는 것만 같다. 분명히 쌤통이다 할 것이다.
사람 몸에 수분이 많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눈으로 절실하게 확인한 셈이다. 세끼 밥을 지어 먹여야하는 일이 이토록 고역인 줄은 몰랐다. 생식주의자라면 날 채소를 어적어적 씹으면 그만이고 한줌 생쌀을 집어삼킬 것을. 이글거리는 화기 앞에서는 아득한 현기증마저 생긴다.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들이 행여 요리에 함께 버무려지기라도 할까 조심을 해본다. 엎드려 걸레질을 하다보면 바닥에 떨어지는 물기들이 있다. 이것이 진정 내 몸에서 나온 수분들이란 말인가. 유난히 땀이 많은 체질이기도 하지만 턱밑으로 뭔가 주렁주렁 달린 기분이다. 포도송이 훔치듯 손바닥으로 훑어보니 세상에나 찻숟가락으로 하나쯤 될까. 짭짤한 소금물이 고인다. 피 같은 내 땀방울들이여. 내 어느 한날 이 나라의 독립이나 통일을 위해 안간힘쓰며 손안에 땀내를 끈적이게 한 적이 있었던가.
불쾌지수까지 높아져 작은 일에도 짜증 섞인 말투로 가족들을 대하게 되었다. 마음을 다스리며 더위를 이겨보자 다짐했다. 극기 훈련쯤으로 여겨보자 하기도 했고 힘든 상황이 닥쳐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의 키를 돌리려 노력했다. 추위보다 더위를 참지 못하는 나의 체질로 최악의 상온이 계속되는 나날을 버티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구토에 어지럼증까지 겹쳐지면서 식욕도 없었다. 찬물에 밥을 말아 고추장에 풋고추만 찍어먹었다. 그 와중에 아들이 열병을 앓게 되니 더욱 기진맥진 하늘빛만 노래졌다. 불굴의 투지를 지닌 대한민국 어머니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가 보다. 갑자기 가을을 그리워하기로 마음먹었다. 더위가 있기는 할진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부여잡고 바라볼 것이 있다는 것은 생의 커다란 희망과 위안이 된다. 눈을 감고 황금들녘과 설악산 단풍의 절경들을 그렸다.
그래. 바람을 소망하기로 하자.
허나 속초바람은 지난 봄날 내 앙칼진 외면에 고개를 돌려버렸는지 호흡을 끊어버렸다. 황사먼지 끌어안고 시도 때도 없이 불어대는 꼴이 밉살맞다 함부로 중얼거릴 일이 아니었다. 어디 당해보라는 식으로 길가에 강아지풀 잎새 조차 흔들어줄 기미가 없다. 아니면 국제화의 물결을 타고 단체로 해외여행이라도 떠난 것일까. 오뉴월 고추장을 풀어 부쳤는지 시뻘건 장떡만 하늘에서 지글거리고 있을 뿐이다. 아! 어느새 내 얼굴에도 날마다 장떡이 부쳐지고 있었다. 밤이면 화끈거리는 볼 살을 긁적이고 얼음 덩어리에 대어보다가 말갛게 새벽을 맞는다. 바람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설악산에서든 청초호 앞에서든 불어 달라 손을 비비고 싶었다. 비릿하게 생선 썩는 냄새를 끌어안고 창문을 넘나든다 해도 황송하게 머리 조아릴 수 있겠다. 낮 동안 달구어진 베란다바닥은 깊은 밤에도 펄펄 끓는 온돌방이다. 알토란 두 아이들이 교대로 칭얼대며 밤잠을 설친다. 잠들기를 포기하고 연거푸 부채를 들썩이지만 맥 빠지게 뜨거운 바람만 머리맡에 겨우 머물고 만다.
이대로 얼마간을 더 버틸지 모를 일이다. 가만있을 수만은 없었다. 따끈해진 베란다 바닥을 맨발로 딛고서서 울산바위 쪽을 내다보았다. 낮 동안엔 곡식도 여물어야하고 진초록 잎새 들은 광합성작용을 해야 하니 깊은 밤에만 이라도 바람을 정중히 초대하는 의식을 치르고 싶었다. 어미인 나는 자식들에게 편한 잠을 재워야한다. 듣든 말든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표독스럽게 몰아댔던 봄날에 속초바람을 밤마다 불러댔다. 바람아 불어다오 우리 집 쪽창으로 넘어오렴.
아! 드디어 실 줄기 가느다란 굵기였지만 코끝을 스치는 바람의 냄새가 느껴졌다. 저녁나절 아이들을 씻기고 베란다의 빨래를 걷는데 손등의 솜털들이 미세하게 드러눕는다. 간교해진 내 속내는 천연덕스러운 자세로 봄날의 속초바람 비난했던 표정을 감추었다. 일편단심 바람 너만을 지조 있게 기다렸노라고 속삭였다.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산다고 했던가. 바로 그 꼴이었다. 속초바람이 지긋지긋하다며 그것만 없다면 더 없는 천혜의 자연환경이라 떠들고 다녔는데 작금의 상황은 바람만이 나를 살리는 위치가 되고 말았다.
밤이 되면서 깊어진 바람이 축축한 목덜미를 휘감는다. 그 작은 서늘함에도 등골이 오싹하다 말하고 싶다. 항구도시 달구어진 건물들의 열기를 휘돌며 식힌다. 아파트 숲을 넘다들다 남은 바람자락이 내 머리를 기특하다 쓰다듬는다. 더위 며칠 견딘 것에 비하면 넘치는 칭찬의 손길이다. 멀리 하늘에 걸린 여름 조각달이 부는 바람결에 파르르 흔들린다. 바람 한줌에 갑자기 지극한 감사가 밀려온다. 수분을 모두 토해내고 쓰러져 기운 잃기 전에 찾아와 준 바람이다. 고진감래 깊은 뜻을 그렇게 또 알려주는구나.
떨고 있는 조각달을 베개 삼아 오랜만에 밀린 잠이라도 자야 할까보다.
꿈도 없이 깊은 잠.
2004년 7월 24일